번역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투명해지면 번역도 번역가도 보이지 않는다. 원문이 훤히 보이도록 투명해지면 번역의 문학적 완성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 P28
번역가가 호명될 때는, 투명한 무존재로 취급되지 않을 때는 책이 마음에 안 들 때뿐이다. - P29
텍스트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나? 그것을 꿰뚫지않으면, 그것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번역은 불가능하다. - P31
인간이 바벨탑을 건설하려 했을 때 신이 내린 벌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자 사람들은 탑을 계속 쌓을 수 없었고 신의 뜻대로 온 땅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벨은 분열, 소통 불가능성,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하게 된다. - P40
그리고 그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인 번역도 바벨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겹쳐진다. - P40
바벨은 은유적 잉여다. 의미가 겹치고 겹치면서,기호는 한 가지 의미를 안정적이고 고정적으로 띨 수 없다. 의미가 벽돌처럼 하나하나 쌓였다가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바벨은 흰 고래처럼 모든 것을 표상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 공허다. - P50
번역은 신이 우리에게 지운 짐이자, 바벨 이전의 순수한 상태 -원초적 언어를 회복하고 다시 하나의 언어로 말하려는 노력이다. - P53
벤야민식으로 말하면 여러 갈래로 흩어진 불완전한 언어의 속박을 풀고 순수한 의미를 정제해내는 행위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기호도 거치지 않고 바로 우리 마음에 와닿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 P53
나보코프는 "가장 서툰 직역이 가장 예쁜 의역보다 천 배는 더 유용하다"며 ‘가독성‘이 좋은 번역을 ‘범죄‘, ‘악행‘, ‘횡포‘등등 심한 말로 비난한다. - P56
텍스트를 아무리 쌓아 올려도 진리에는 도달할수 없다니, 책의 시작 부분에서 되새기기에 신나는 명제는 아니지만, 번역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텍스트에 대한 믿음부터 버려야 한다. 번역은 그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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