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게. 돌아와. 여기에는 아무리 희박하다 해도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와 새 주소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생존해야 할 이유였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독수리처럼 맴돌며 먹이를 기다리는 스투카가 있는 주요 도로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 P286

모든 어린애가 그렇게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태도로, 시간이 지나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회의를 갖지 않을 만큼 지독할 수는 없다. - P323

마을 끝의 집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앞에 펼쳐진 들판에 한 남자와 콜리 종의 개가 말이 끄는 쟁기를 따라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두 가게에서 본 여자들처럼 이 농부도 퇴각 행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삶은 계속되며, 전쟁은 전쟁광들의 취미일 뿐 심각할 건 없었다. 사냥개를 풀어 미친 듯이 사냥감을 쫓는 동안, 울타리 저 너머로 지나가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여자는 뜨개질에 여념이 없었고, 새로 지은 집의 휑한 정원에서는 한 남자가 아들에게 공차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다. 쟁기질은 계속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 농작물을 거둬들여 빻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그것을 먹고...... 모두 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 P332

오래 전, 전쟁이 터지기 전과 감옥에 가기 전에는 잭 탈리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기는 했어도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고 또 바꿀 수 있다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만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다.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를 원했고, 바로 그 때문에 아버지가 되기를 원했다. 지천에 깔린 죽음을 목격하면서 아이를 바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그래서 인간적인 이런 바람이 무엇보다 간절해졌다. - P341

기다림.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 P368

인간은 오만에서 나오는 자기 비난의 감정에 휩싸이면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으려 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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