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삶의 목표는 엄마의 편지에 언급된 일들과 가급적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이 편지가 날아온 곳과 나 사이의 거리를 충분히 벌려놓을 수 있다면, 편지에 적힌 일과 나 사이에 다른 사건들을 많이 집어넣을 수 있다면, 모든 행동과 모든 말과 모든 얼굴에서 수백 년의 세월을 보는 대신 만사를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 P29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는 찬사가 주변에서 쏟아질 때마다 엄마가 자기만족감에 푹 빠지는 모습에 난 소름이 끼쳤다.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란 오롯이 나를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까닭은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분신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 P33
그녀가 실제 한 말이 ‘아랫것들minions‘이 아니라 ‘수백만millions‘이었을 수도 있다. 농담으로 한 말이 확실했다. 하지만 생선요리를 하는내내 난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랫것들‘ 그것은 나 같은 사람은 떨쳐버리기 힘든 단어였다. - P34
머라이어는 "내게 원주민 피가 흐른다"라고 했고, 장담하건대 그 말은 무엇보다 마치 전리품을 가지고 있다는 선언 같았다. 대체 어떻게 정복자가 동시에 피정복자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할 수가 있지? - P37
아이들을 대할 때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가능한 한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진실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동화는 유익하지 않다고 보았고, 긴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나는 식의 것들은 특히 그랬다. 그런 이야기는 아이들이, 모든 여자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릇된 기대를 갖게 만든다고 했다. 동화에 관한 머라이어의 주장이 내겐 늘 신기했다. 내 머릿속에는 세상살이에서 그릇된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의 긴 목록이 있는데, 동화는 거기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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