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 보기 싫은 것과 무서운 것은 다르다. 꼴 보기 싫은 건 견딜 수 있다. 이를테면 옥희 씨 같은 사람. 한 개체가 어떤 것에 대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반응이 기질이라면, 나는 꼴 보기 싫은 걸 잘 견디는 기질을 지녔다.
견딜 수 없는 건 내 생존을 위협하는 무언가였다. 그것에 대한 내반응은 ‘무섭다‘다. 어제까지만 해도 칼잡이에 대한 내 감정은 꼴 보기 싫다와 무섭다 중간쯤에 있었다. 이제 ‘무섭다‘로 확실하게 넘어갔다. 무서우면 도망치는 게 내 해결 방식이었다. 해결하기로 결정한다면 굳이 이어폰의 의미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용히 사라지면 되는 일이었다. -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