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호혜라는 착한 말도 있습니다." 상호 호혜라. 이 남자는 확실히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 아니면 자기가 내게 접근했다는 걸 고의적으로 잊고 있든가. 일방적으로 뭔가를 떠안기고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상호 호혜라 하지 않는다. 강요라고 부른다. - P145
제이는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손의 느낌과 비슷했다. 생면부지 상대에게 갖게 되는 동물적 경계심을 단박에 허무는 힘이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봤다. 내 삶에 그가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 P151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 맞닥뜨린 현실을 정리하고 받아들일 시간, 남은 삶을 계획할 시간. 내가 원하는 건 일과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이미 닥친 일에 분노하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미리 떨지 않는 것이었다. - P155
잿빛 연기 뒤편으로 내 인생이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를 잃은 일곱살의 나에서 생태원 숲을 나돌아 다니는 서른두 살의 나까지. 나는 멍한 기분으로 수많은 나를 관객처럼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상황만 있고 나는 없는 시간 같았다. 그 시절에도 나는 분명 존재했을 텐데.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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