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미정 엄마에게서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함부로 휘둘리지 않으려는 결기가 느껴졌고, 나는 미정 엄마의 삶을 닮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는 삶. 어떤 사건에 휘말리더라도 그 속에서 꼿꼿이 허리를 편 채 눈을 부릅뜨는 삶. 그때 나는 미정 엄마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정말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가? 기어코 해가 되고 마는 것이 삶 아닌가. - P118

현수 언니와 함께 일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갔다. 그사이 할머니는 죽었고 나는 발인 다음날까지도 일을 했다. 그래서 그때는 마치 사는 것과 슬픔이 별개의 문제처럼 여겨졌다. 슬퍼할 장소와 웃어야 할 장소가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었으니까. - P121

내가 겪어왔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엄마도 당신이 겪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빤히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척하는 것. 서로가 떠안은 일들에 지쳐 상대의 상처에는 그저 눈을 감아버리는 태도. 우리가 그런데도 서로를 친밀한 사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인가?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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