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내 속에서 한결같았다. 더이상 어머니 주변을 맴돌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열한 살 그때도 나는 똑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문 밖에 서서 대문 안쪽을 노려보며 어머니의 착한 딸이기를 포기했던 그때, 그러나 결국 시시껄렁하고 채신없는 짓만을 저지르고 다니게 된 그때도 나는 내가 더 강해지기를 빌었으며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고 믿었다. - P99
대문 밖에서 나는 눈이 빠질 듯 대문 안쪽을 노려보았다. 나는 절대로 착한 딸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윤아와 어울리면서 해수와 멀어지게 된 것이나 내게 도벽이 생긴 것이나 다 이즈음의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나쁜 것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독한 앙심을 품는 버릇이 생긴 것이었다. - P107
왜 불행은 가장 사심 없고 순결한 순간에 나를 습격하는가? - P115
바라는 것이 분명히 뒤에 있다고 인간에게 확고한 보증을 하고 그 대신에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돤다는 약속을 받아냈던 짓궂은 신들, 그들의 의도는 바로 이런 인간의 허약함을 악용한 사기였을까? 뒤에 의연히 버티고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은 애초에 제대로 앉지도 않았던 듯 재빨리 우르르 흩어져버렸다. - P131
사람이 눈빛에 어떤 감정을 담을 수 있고 상대방이 눈빛을 통해 그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전경과 나는 그 순간 진정 눈빛으로 교감했던 것이다. 전경을 바라볼 때의 내 눈빛에는, 비록 불타는 적의를 담으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실제의 내 눈빛에는 애원과 공포가 담겨 있었을 것이고, 전경은 그것을 제대로 읽었던 것이다. - P133
나의 가을에는 언제나 은밀한 배반이 준비되고 있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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