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2014)

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에 관심이 갔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니 책장에서 자연스레 그의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국수`라는 소설집이다.

소설집은 다 읽었는데 막상 소설과 작가에 대한 평을 하기가 어렵다. 극사실주의인가 싶게 현실 저 아래를 보여주나 싶으면 스릴러인가 싶게 뭔지 모를 환상으로 마무리 짓기도 했다.
나랑 꼭 맞는다고도 그렇다고 저 멀리 밀어놓기도 애매한 기분에 다른 작품을 읽은 후 결정하기로 유예를 둔다.

막차
국수
옥천 가는 날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명당을 찾아서
그 밤의 경숙
구덩이
대기자들

`막차`는 병을 오래 앓았던 며느리의 죽음에 서울로 올라가는 막차에 오른 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는 한탄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낸다. 일방적으로 토해내는 못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그녀의 이야기. 휴게소에서 사라진 남편의 행방은 무엇이라 볼까? 환상을 배제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답은 도피이다.

`국수`는 새어머니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박하지만 새어머니의 사랑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국수를 이제는 그녀가 만들어낸다. 혀를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암이 퍼졌다는 새어머니를 위해서.
아이를 갖지 못한 새어머니와 나를 동일시하면서도 미워했지만 애정을 감출 수 없는 감정을 반죽을 치대며 쏟아내고 쏟아내 국수 한 그릇을 만든다. 뚝뚝 국수를 끊어내는 모습이 애처롭고도 다감하다.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한 느낌은 막차,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그 밤의 경숙, 대기자들에서 좀 더 강했다.

그 중 내 마음은 `그 밤의 경숙`으로 기운다. 이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생신에 참석하고 가족과 돌아오는 차 안. 도로에서 오토바이 운전자와 시비가 붙어 남편은 드잡이질에 나서고 여차저차 다시 차에 올랐지만... 오토바이를 치고 온건지 커튼 뒤의 누가 훔쳐봤는지... 혼란 가운데 콜센터 상담원 5번인 경숙은 남편과의 통하지않는 대화를 이어간다.
경숙의 전부가 그 밤, 차 안에 있는 가족이 아니라 전화통을 붙잡는 그 시간에 매여있다는 느낌이다. 무엇을 또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이유를 잃고 방황하는 경숙이 익숙해 아프다.

소설은 관계, 그 중에서도 가족이 주이다. 그러면서도 돈을 빼놓지 않는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이 그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는지 오리 뼈를 고아 국물을 마시는 시아버지는 사실 아들, 며느리와 사는게 편치 않다. 거금 8천만원을 주식과 펀드로 몽땅 날린 아들은 실버타운으로 가겠다는 아버지를 피해 늦게 들어오기나 한다.
의뭉스러운 노인네라고 말하는 시아버지는 사실 그냥 나이 든 양반일 것이다. 돈없는 가족관계는 그냥 이렇게 저렇게 씹기나 좋은 거리일 뿐이다.

누구 하나 완전하게 행복하거나 밝지 않은 김숨의 소설들. 속속들이 알아봐야 쓰리기만 한 모양새가 너무나 현실적이다. 환상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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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1988, 일본)

책 읽기가 막혀 책없이 한참 보냈다. 일부러 북플도 피했더니 많지 않은 친구들의 글이 쌓여 깜짝 놀라고 있다. 그냥 넘기려니 미묘한 불편함에 짬짬이 보기로 한다.

어렵거나 감정을 쏟아야 할 것같은 책은 배제하고 그냥 읽으려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오사카 소년 탐정단`을 선택했다. 1988년에 출판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이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들고 하루 안에 덮었으니 성공이겠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이번이 네번째이다. 갈릴레오 시리즈나 가가 형사 시리즈를 일본드라마로 봤으니 친숙함은 더하지만 말이다. 읽은 책들은 `나미야잡화점의 기적` 이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니었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은 별점을 준다면 3점 그 이상은 아니다. 오사카를 배경으로 시노부 선생님과 신도를 비롯한 형사들, 초등학생들이 어울려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한다. 형사들이 삐삐로 연락을 취하거나 25살인 시노부 선생님이 결혼 압박을 받는 장면에서 지금과 다른 생활감이나 시대적 분위기를 느꼈다.

미야베 미유키의 덧붙인 글에서 오사카 지방의 분위기나 기백에 대한 애정이 표현되었는데 와닿지 않아 아쉬웠다. 일본에 발붙여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것일테다. 오사카 지역의 이미지를 타코야끼에서 봤으니 이 얼마나 촌스러우면서도 친숙하고 맛깔나는가.

책 이야기는 별로없이 주절주절 썼다. 후속 이야기가 `시노부 선생님, 안녕`에서 계속된다는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책이 나쁘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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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1991)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가가 딸에게 추천해준 책 중 한 권이다. 요리 레시피는 하나도 따라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집어들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미술이나 그림 감상 입문서는 아니다. 온전히 작가의 입장에서 말해주는 미술 순례이자 여행 에세이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림과 조각, 건축물을 보고 공감하고 어려워도 했다.
그림과 조각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스치는 배경이 되지 않게 찬찬히 눈길을 주었다.

작가와 가족들의 사연에서 기인한 고뇌와 혼란,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작가 서경식은 작품 하나하나를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았다. 먼 곳에서 온 이방인으로 여행 길 곳곳에서 나라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서양의 역사에서도 슬픔을 느낀다.

서양미술보다 책 곳곳에서 보이는 작가의 두 형에 대한 짧은 소회가 특히나 대한민국 사람에게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어볼 만한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 본래 미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그도 좋겠지만.

-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2002년 개정판으로 출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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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2014, 홍콩)

홍콩 소설은 처음이다. `13.67`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 제목만 보고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독자들의 좋은 평가에 읽기 시작한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3.67`은 홍콩을 배경으로 2013년부터 1967년까지 관전둬와 뤄샤오밍 두 형사의 사건해결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보여주는 경찰소설이다. 소재나 인물 설정이 새롭지는 않다.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형사와 파트너 형사가 핵심인물인 구성이 말이다.

관전둬의 죽음과 함께 시작하는 소설 전반부에서는 세세하게 사건해결과 트릭을 보여주는 장점 외에 미스터리 소설의 큰 매력은 없었다.
다만 소설 전반에서 사회파 소설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홍콩 반환이라는 큰 사회적 변화나 경찰 조직과 관료제를 통해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회 전반의 비리, 노동자 계급과 공권력의 무력 충돌과 폭탄 테러까지. 홍콩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겉과 속을 보여주며 정서까지 안내한다.

소설 중후반에 사건들은 큰 맥락이나 트릭을 맞추는 재미를 느끼며 읽어나갔다. 관전둬의 젊은 날 활약상이 펼쳐진다.

책의 마지막 사건인 1967년, 반전과 함께 작가의 치밀함을 느꼈다. 많은 콘텐츠에서 반전으로 뒤통수를 치겠다며 말도 안되는 충격 이외의 것이 없는 결말을 보여준다. `13.67`은 공감가는 반전으로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관전둬라는 인물의 생애를 보여준다. 뤄샤오밍과 관전둬의 관계와 관련된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크흠.

찬호께이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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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2005, 일본)

막 읽고 싶어서 막 집어 들었다. 날은 덥고 책은 빨리 완독하고 싶으니 일본 추리 소설로 손이 간다. 진짜 막 골랐다.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을 들어봤다는 이유로. 출판된지 10년도 더 된 작품인줄 몰랐다.

호쿠리쿠 지방의 K시, 명가 저택에서 잔칫날 벌어진 대량 독살 사건.

소설은 시점을 달리하며 그 사건과 관계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범인 자살로 종결된 사건 이면에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범인이 평소 온화하고 깔끔한 이였다는 소소한 증언부터 독극물이 든 음료수의 존재를 눈치챈 아이, 10년이 지나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다룬 책을 낸 목격자까지.

새하얗거나 붉은 백일홍, 푸른 방같은 색채 묘사나 바다, 둥근 창 집, 골목 풍경같은 이미지 보여주기에 작가는 능하다. 감각적인 묘사와 더불어 사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답은 회색이다.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눈먼 소녀. 신비롭고 아름답고 기품있고 오만한 그 집안의 상징같은 존재. 작가는 굉장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범인 알려주기에 소홀한 것은 아니지만 늙고 지친 중년여자가 된 그녀는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엄청난 악의가 아닌 어린 소녀의 소망, 우연과 우연의 맞물림에서 온 결과.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색된 느낌은 회색이다.
유지니아, 그녀는 어디로.

숨막히는 더위, 뻘뻘 흘리는 땀과 습한 공기의 소설 속 여름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딱 맞는다. `유지니아`는 여름에 읽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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