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2005, 일본)
막 읽고 싶어서 막 집어 들었다. 날은 덥고 책은 빨리 완독하고 싶으니 일본 추리 소설로 손이 간다. 진짜 막 골랐다.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을 들어봤다는 이유로. 출판된지 10년도 더 된 작품인줄 몰랐다.
호쿠리쿠 지방의 K시, 명가 저택에서 잔칫날 벌어진 대량 독살 사건.
소설은 시점을 달리하며 그 사건과 관계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범인 자살로 종결된 사건 이면에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범인이 평소 온화하고 깔끔한 이였다는 소소한 증언부터 독극물이 든 음료수의 존재를 눈치챈 아이, 10년이 지나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다룬 책을 낸 목격자까지.
새하얗거나 붉은 백일홍, 푸른 방같은 색채 묘사나 바다, 둥근 창 집, 골목 풍경같은 이미지 보여주기에 작가는 능하다. 감각적인 묘사와 더불어 사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답은 회색이다.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눈먼 소녀. 신비롭고 아름답고 기품있고 오만한 그 집안의 상징같은 존재. 작가는 굉장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범인 알려주기에 소홀한 것은 아니지만 늙고 지친 중년여자가 된 그녀는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엄청난 악의가 아닌 어린 소녀의 소망, 우연과 우연의 맞물림에서 온 결과.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색된 느낌은 회색이다.
유지니아, 그녀는 어디로.
숨막히는 더위, 뻘뻘 흘리는 땀과 습한 공기의 소설 속 여름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딱 맞는다. `유지니아`는 여름에 읽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