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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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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영화감독 봉준호님이 작업하고 계신 SF 영화의 원작소설이라고 한다. 영화에 무지한 나도 아는 것은, 봉준호 감독은 '재미 없는 영화는 안 만든'다는 것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의 앞 20페이지를 채 읽기 전에 봉준호 감독이 왜 이 이야기에 눈독을 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Oxygen Not Included와 Outer Wilds등의 게임과 맥락을 함께 하는 우주 정착지가 돌아가는 모습을 담은 <미키 7>은 아이작 아시모브작가의 타계 후 진정한 SF에 목말라 하던 장르의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미키7은 바이오 재료로 '3D 인쇄' 된 '배양인간' 중 같은 모델의 일곱 번째 인스턴스로, 앞의 여섯 명의 미키가 개척지의 생존을 위한 탐험이나 인체실험 등에 동원되어 사망한 후에 그들의 기억이 업로드 된 저장장치에서 같은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 새로운 몸으로 미키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익스펜더블', 즉 '인간 소모품'이다. 그런데 미키7이 구덩이에 빠져 죽을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동료는 미키7의 손실을 보고하고 미키8의 제작을 시작하는데, 미키7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도플갱어 같은 미키7과 8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실 책을 받아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관계자분들께는 미안하지만 황금가지의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의 번역이 첫 장부터 너무 엉망진창이라 황금가지 출판사를 "영미유럽 번역서에는 믿을 수 없는" 출판사로 낙인 찍어 놓았던 참인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원작" 이라는 문구에 홀려 원 저자를 못 보고 서평단 신청을 했었나보다. 그런데 저자 에드워드 애슈턴이 워낙 문체가 기교없이 맑은데다 내용 자체가 매우 재미있어 끌어가는 힘이 굉장해서 영미유럽 번역서임에도 수월하게 읽히는 편이었다. 다만, 역자가 앞부분에 오큘러스라든가 익스펜더블 등의 개념을 굳이 괄호 안에 설명해 준 것은 친절하나, 이는 사실 영어권 사람들이 원문으로 읽었을 때 단어 자체로 어떤 개념인지 짐작이 되는 것들로, 적절하게 번역을 했더라면 그런 설명으로 흐름을 끊을 필요도 없었을 거고, 번역을 시도도 하지 않은 음차 용어로 읽는데 거슬릴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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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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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지금은 겨울에 가까운 같지만 이상기온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분위기 잡고 밀실살인의 대가 기시 유스케 작가님의 호러 신작 <가을비 이야기> 완독했다. 기시 유스케 작가는 호러, 미스터리, SF 아우르는 장르문학의 베테랑인데, 내가 처음 읽었던 <유리망치> 워낙 인상이 깊어서인지 (아직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제목이 스포일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을 분하게 생각한다) 책에 수록된 편의 호러 단편을 읽으면서도 기시 유스케스러운 미스터리 반전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필력이 어디 가나, 다음 장이 궁금해지고 다음 , 다음 , 의지와는 상관 없이 빨려들어갈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히 일본 괴담, 일본 요괴 문화(?), 일본의 전통 양식 등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더욱 좋아할 것이, 가을비 내리는 외진 신사의 마당에 나타난 기모노를 정갈하게 차려입고 종이 우산을 들고 있는 구미호가 붉은 빛내며 들려줄법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무섭고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으스스하고 초자연적이라 기괴한, 그런 소름 돋는 맛의 단편 모음이다.

 

🤍 아귀의

옛날 드라마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나올 법한 가볍고 유머러스 괴담류다. 회사 수련회에 주인공 미하루는 호감이 있던 남자 선배와 둘이 산책을 하게 되고, 선배는 연애를 하지 하는 저주에 걸렸다고 토로한다. 미하루는 선배의 저주를 자신이 풀어주겠다고 결심하는데, 결과는?

 

🤍 푸가

의학적으로 "해리성 둔주" 혹은 "배회증"이라고도 부르는 정신질환은 주제와 주제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음악 스타일과 동음이의어이기도 하다. 해리성 둔주 환자는 일시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존재에 대한 지각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평소 생활 반경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한다. 소설 작가 아오야마의 연재 원고 마감을 기다리고 있는 편집부의 마쓰나미는 아오야마가 해리성 둔주를 겪는데,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영혼이 배회하고 몸이 순간이동하듯 이끌려 가며 차원이 뒤틀리는 것이다. 그는 둔주를 막기 위해 벽을 납으로 두르기도 하고 사람을 쓰기도 하는데 과연 성공할 있을까? 작품 초기부터 상당히 눈에 띄게 거슬리는 ' 물건' 결국 핵심적인 물건으로 드러났다.

 

🤍 백조의 노래

음악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노래를 ' 한다' 넘어서 '저런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지' 싶은 경험을 때도 있다. 몽골의 '후미' 창법이 그렇고, 노래는 아니지만 남아프리카의 Xhosa Zulu 등의 Click 언어가 그렇고, 단편에서는 미쓰코 존스라는 무명 가수가 개의 목소리로 동시에 노래하는 기법을 쓴다고 서술되어 있다. 목감기가 심할 평소의 목소리 이면에 그릉거리는 떨림이 따로 있는 것과 원리는 비슷한데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미쓰코 존스에 대해 조사를 의뢰받은 용역이 돌아와 같은 창법을 다른 가수를 찾았다며 발표를 하는데, 유작으로 남긴 오페라 <라크메> "종의 노래" 라는 아리아를 부르기 위해 어떤 사막을 찾아가서 악마를 만났다고 한다. 과연 악마의 정체는?

 

🤍 고쿠리상

고쿠리상은 일본의 미신이자 미신의 대상이자, 미신에 대한 행위다. 분신사바와 서양의 위저보드 (Ouija board) 합쳐놓은 같은데, 일본의 50음도와 숫자가 쓰여져 있는 위에 동전을 올려 질문자 여럿이 함께 동전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동전이 움직이면서 가리키는 글자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는 방식이다. 그런데 단편에서 제시한 고쿠리상의 '다크 버전' 인생의 끝바지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고쿠리상이 삶을 뿌리째 뒤집어 엎을 새로운 조언을 주지만 명은 반드시 목숨을 잃는다. 저마다 인생의 벼랑끝까지 몰렸다고 주장하는 명의 초등학생이 모여서 고쿠리상 의식을 행하게 되는 이야기.

 

기시 유스케 작가는 나에겐 '우선순위' 목록에 있는 작가 하나다. 항상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는지 눈여겨 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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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플라스티쿠스 - 2023 1회 이지북 초록별 샤미 SF환경동화상 대상 수상작 초록별 샤미 SFF환경동화 4
김진원 지음, 불곰 그림 / 이지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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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모르곘다. 물론 필자는 환경과 젠더 이슈에 관한 책에 편파적으로 좋은 평가를 주는 경향이 있지만 좋지 않다고 판단한 책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호모 플라스티쿠스] 어른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자주 접촉하는 교사와 지도자들에게 두루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극단적인 환경단체의 행보로 환경 보호 자체에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게 것은 페미니즘을 표방한 극단적 단체의 이슈와 다를 없다. 그렇기에 인간의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로인해 초래될 있는 미래에 관한 바른 정보의 홍보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곽재식 작가님의 같은 것들은 알차게 정보가 꽉꽉 들이차 있지만 아직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이미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벽처럼 느껴질 수가 있다. 그래서 로비스트나 사회운동가들이 많이 쓰는 기법인 "픽션 작품에 기대기" 효과적인데, 아쉽게도 한국에는 환경 분야에서 유익하면서 동시에 재미까지 있는 픽션 작품은 어른용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필자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 혹시 그런 좋은 책이 있다면 제보 부탁한다.

 

한국에서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필자는 사도세자나 명성황후 이야기는 역사 동화로 배웠다. 교과서의 나열식 암기 항목보다는 그게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니까. 무엇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는 과정은 무조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은 거의 들어 있지만 플라스틱의 남용과 그로인한 쓰레기 문제의 미래를 근거 있게 보여주는 [호모 플라스티쿠스] 재차 추천한다.

 

동화 플라스틱이 뒤덮어버린 세상, 플라스틱 쓰레기가 숨쉬는 섬에 어느 후에 '수지'라고 이름지어질 아이가 발견된다. 아이는 머리카락과 눈의 홍채가 투명하고 비에 강한 반면 햇빛의 열기에 약하고 화상을 입는 체질이다. 도시에는 '버클랜드 공장' 이라는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이 있는데 100% 재활용율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수장 빌레인이 여러가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하나가 그가 지하의 연구실에 숨겨놓고 있는 수지와 비슷한, 쓰레기 매립지에서 태어난 '로스'라는 아이인데, 대체 빌레인이 알고 있는 투명한 아이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책에서 필자가 가장 여겨 점은 플라스틱 '사용'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 초점을 맞춘 부분이다. 그렇다, 플라스틱은 종이나 나무 제품에 비해 내구성이 좋고 방수 방부 기능이 뛰어나 영구히 있다. 그런 플라스틱을 일회용으로 쓰고, 쉽게 사서 쉽게 버리고 매립지를 채우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등장한 물방울이 ' 곳의 물줄기가 되었다가 비가 되었다가 누군가의 피가 되었다가 다른 누군가의 눈물이 되었다' 대목에서 우리가 강에 버린 미세플라스틱은 결국 강물을 오염시켜 속의 피와 눈물이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렇듯 책은 내가 버린 쓰레기는 손을 떠나고 앞을 떠나면 끝이 아니라 인류에게 반드시 부정적 작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레이션도 아름답고 적재적소에 분위기를 아주 꾸며줬는데, 디자인 면으로 특히 세미매트한 표지 위에 수지만 글로시 처리하여 플라스틱 느낌을 더욱 살린 것도 훌륭하게 보았다.

 

사실 이번 달에 책에 예산이 없다시피 한데 [호모 플라스티쿠스] 읽고 나서는 동전까지 쥐어 짜내서 이지북 출판사의 SFF 환경동화 시리즈를 전부 구매했다. 환경 동화를 종이책으로 산다는 것이 어불성설 같지만 조금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 싶은 생각에 나만 있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주문했다. 프린세스 올리비아 1-2권도 샀는데 인쇄소에서 나무부터 베어와서 만들어 주려는 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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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부인
스테이시 홀스 지음, 최효은 옮김 / 그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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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포핀스가 우산을 들고 춤을 추던 장면과 <사운드 오브 뮤직> 마리아 라이너가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장면은 9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모두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 작품 속에서는 한결같이 희망적이고 강인한 정신력의 유모들이 나타난다. 반면 <잉글랜드 부인> 주인공 메이는 영국의 명문 유모 전문학교 "놀랜드" 졸업생이긴 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현실의 괴리에 흔들리기도 하고, 개인적인 가족사 때문에 울고 웃고, 사사로운 감정에 괴로워하기도 하는 한없이 현실적인 유모다. 이야기는 이런 메이가 잉글랜드 가족의 아이를 돌봐주는 하숙 유모로 취업을 하면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현대가 아니라 20세기 초중반쯤 되는 같다. 소설에 시기는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엿볼 있는 생활 양식으로 보면 그러하다.

 

문제는 번역이 말로도 되었다고 해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딸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my girl " 여성" 이라고 직역한 것을 필두로 명백한 오역이 1-2페이지당 하나 꼴로, 그리고 예를 들어 양모 산업을 굳이 산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어색해서 마치 부러진 손톱으로 손뜨개 스웨터를 긁는 턱턱 걸리는 지점은 없이 많았다. 일부는 해당 문화권에서 살아보지 해서 몰랐다손 쳐도 대다수는 번역사로서 의문을 가지고 1 미만으로 구글에 검색함으로서 해결할 있었던 것들이다. 번역서 감수는 역시 다른 번역사가 하는 것이 적절했을 하다

 

게다가 유모가 있는 부잣집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유모의 직업 세계를 엿볼 있다는 점에서 소설은 객관적으로 재미는 있었지만 애초에 책은 미스터리 장르소설로 홍보 분류가 되어 있다. 그런데 464 280 페이지 정도까지 도대체 소설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늘어짐이 심한 호주 소설 시대문학인 Ruth Park Playing Beatie Bow , 심리적으로 비슷한 V.C. Andrews 고딕 소설 Flowers in the Attic 이렇게까지 늘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를 졸음에서 깨운 점은 어떤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어떤 형편없는 인물의 등장으로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의사 자격이 없는 돌팔이에 가까운 의사였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인물에 예민해서 상황에 몰입이 되었던 뿐이 아닐까 싶다.

 

시점부터 긴박감이나 사건을 풀어내는 힘으로 봐서 작가가 절대 실력이 없거나 아마추어는 아닌데 아무리 서양 소설이 인물과 배경에 살을 많이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앞부분을 오래 끌어도 너무 오래 끌었다.

 

생소하지만 궁금한 영국의 유모 문화를 들여다볼 있어서 흥미로웠지만 내가 해줄 있는 좋은 말은 거기서 끝난다. , 어쨌거나 읽는 동안에는 즐거웠고 억지로 고문 당하면서 읽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으니 "읽을 만한 " 이라는 평가는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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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과 살인귀
구와가키 아유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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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현타' 느끼며 책의 정도를 다시 읽었다. 내가 순진한 걸까? 살면서 많은 사기꾼을 만났는데도 번도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 나인데 작가 구와가키 아유의 서술트릭에 보기 좋게 당해버렸다. 그래, 장면에 곰돌이 인형옷을 입은 사람과 그를 둘러싼 망치를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곰돌이 옷을 입은 시체가 ' 사람들' 죽인 ''라는 법은 없지. 하지만 이런 종류의 패배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레몬 치킨 소테처럼 경쾌하고 현대적인 이야기를 언덕 저택의 파티장에서 몰입해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가가 참석한 사람들을 거대한 고무 안에 쑤셔넣더니 그대로 언덕의 급경사를 향해 차서 굴려버렸다. 위가 아래고 아래가 위인지 분간 없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반전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고 언덕의 아래에서 겨우 일어나보니 거기에서 기다리던 것은 정말 뜻밖의 범인이었다. 페이지를 보니 10쪽도 남지 않았다. 안에서 쏟아진 소름끼치는 진실을 듣고 나니 비밀을 아는 시각으로 책을 다시 읽었어야 했다. 정말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1+1으로 소설을 즐긴 기분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선형적인 추리소설이다. 누군가 살해 당했고, 그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세간에서는 살해당한 여동생이 보험 사기 연쇄살인마라서 보복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왠지 주인공 미오를 도와주겠다고 다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상한 구석이 있다. 분명 범인은 연쇄살인마일텐데. 그리고 살인귀의 촉수가 미오의 앞까지 뻗어온 시점에 목가적인 풍경화 겉면의 물감이 말라 떨어지며 등장하는 인물들 저마다 내면에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욕망과 본능이 조명된다.

 

색깔과 향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사건의 중심이 되는 살인귀 이외에도 기괴하릴만치 비딱한 폭력성과 잔인함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섬뜩한 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양상은 많은 일본 소설에서 등장하곤 해서 정말 이렇게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심리를 가진 사람이 흔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방울 흘리지 않고 잔인하고, 일상적인 장면조차 괴기스럽다. 등장인물의 속이 드러나는 과정의 완급과 인물의 심리묘사가 [레몬과 살인귀] 가장 장점이라 하겠다. 가정폭력이 등장한다. 연인간의 뒤틀린 욕구가 고개를 든다. 누군가에겐 아주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다. 띠지에 "너를 날을 기다렸어" 라는 표현이 읽기 전에는 조금 어색하게 들렸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정확한 단어 선택이라는 것을 있었다. 베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살인귀. 사이코패스가 보기에 사이코패스의 정석 같은 인물이다. <심리죄> 주인공 팡무를 데려와서 살인귀를 인터뷰 하도록 시키고 싶었는데 책을 읽은 일요일처럼 이야기는 아쉬울 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주인공이 탐정이 아닌데 후속작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그리고 다소 웹소설 같이 가벼워 보이는 제목에서 '레몬'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줄거리를 끌어간다는 의미에서는 중요한 개념이 아니지만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중심적으로 상징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중요하다. 아쉽게도 현재 구와가키 아유의 데뷔작 포함 다른 저서들은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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