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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부인
스테이시 홀스 지음, 최효은 옮김 / 그늘 / 2023년 10월
평점 :
메리 포핀스가 우산을 들고 춤을 추던 장면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라이너가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장면은 9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모두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 작품 속에서는 한결같이 희망적이고 강인한 정신력의 유모들이 나타난다. 반면 <잉글랜드 부인>의 주인공 메이는 영국의 명문 유모 전문학교 "놀랜드"의 졸업생이긴 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현실의 괴리에 흔들리기도 하고, 개인적인 가족사 때문에 울고 웃고, 사사로운 감정에 괴로워하기도 하는 한없이 현실적인 유모다. 이야기는 이런 메이가 잉글랜드 가족의 네 아이를 돌봐주는 하숙 유모로 취업을 하면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현대가 아니라 20세기 초중반쯤 되는 것 같다. 소설에 시기는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엿볼 수 있는 생활 양식으로 보면 그러하다.
문제는 번역이 빈 말로도 잘 되었다고 해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딸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my girl 을 "내 여성" 이라고 직역한 것을 필두로 명백한 오역이 1-2페이지당 하나 꼴로, 그리고 예를 들어 양모 산업을 굳이 울 산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어색해서 마치 부러진 손톱으로 손뜨개 스웨터를 긁는 듯 턱턱 걸리는 지점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부는 해당 문화권에서 살아보지 못 해서 몰랐다손 쳐도 대다수는 번역사로서 의문을 가지고 1분 미만으로 구글에 검색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번역서 감수는 역시 다른 번역사가 하는 것이 적절했을 듯 하다
게다가 유모가 있는 부잣집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유모의 직업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은 객관적으로 재미는 있었지만 애초에 이 책은 미스터리 장르소설로 홍보 및 분류가 되어 있다. 그런데 총 464쪽 중 280 페이지 정도까지 도대체 이 소설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늘어짐이 심한 호주 소설 중 시대문학인 Ruth Park의 Playing
Beatie Bow 도, 심리적으로 비슷한 V.C. Andrews 의 고딕 소설 Flowers in the Attic도 이렇게까지 늘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를 졸음에서 깨운 점은 어떤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어떤 형편없는 인물의 등장으로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의사 자격이 없는 돌팔이에 가까운 의사였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인물에 예민해서 상황에 몰입이 되었던 것 뿐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점부터 긴박감이나 사건을 풀어내는 힘으로 봐서 작가가 절대 실력이 없거나 아마추어는 아닌데 아무리 서양 소설이 인물과 배경에 살을 많이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앞부분을 오래 끌어도 너무 오래 끌었다.
생소하지만 궁금한 영국의 유모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좋은 말은 거기서 끝난다. 단, 어쨌거나 읽는 동안에는 즐거웠고 억지로 고문 당하면서 읽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으니 "읽을 만한 책" 이라는 평가는 할 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