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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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글이 만들어 지기 이전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함축적 의미를 지닌 문학이자 예술적 노래입니다. 그 자체로도 음이 있고, 리듬이 있고, 하모니가 있어서 그 자체로 엄청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시이죠. 그래서 그 자체로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 인기가 있는 시이든 그렇지 않은 시이든 그 자체로도 빛을 발하는 것이 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시들이 노래도 만들어 지거나 다르게 각색이 된다면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향수같이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져서 국민노래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새를 띄게 된다면 정말 볼만 하겠죠. 일 예로 윤동주 시인의 육촌조카인 윤형주 작곡가가 윤동주의 서시를 노래로 만들고자 아버지께 문의를 하려다가 아주 혼쭐이 났다고 하였다죠. 그 자체로도 훌륭한 최고의 노래를 그 잘난 작곡실력으로 망치려고 하지 마라고요.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문학의 한 장인 시의 세계에 대해선 아직 범접하거나 가까이 하기엔 힘들고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그 시에 함축되고 내포된 의도와 의미를 이해하고 파악하기가 힘든 것이 난관의 첫째이죠. 시인 자신만이 알고 있다곤 하지만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 또 사실이고요.

 

여기 일본의 국민 시인인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은 이러한 시를 우리 의식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고 합니다. 노래도 그림도 논리도 시시함도 다 내포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그리고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 있어서 숱한 언어의 차이를 초월해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바람인 언어를 조립해서 정교하게 만든 공예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인 이 <사과에 대한 고집>은 시인이 그간 발표한 작품인 시46편과 산문 8편 중 주옥같은 작품들을 모아 엮은 작품입니다. 아직 국내에선 어색하고 낮선 작가이지만 그는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교류를 꾸준히 오간 인물로 특히 신경림 작가와도 각별한 사이라고 하죠. 거기다 이 작품이 더 의미있는 것은 한국어로 옮긴이가 바로 일본인인 요시카와 나기라는 분으로 일본시를 한국어로 옮겨서 국내에 알린 이가 일본인이라는 것은 남다른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대표시이자 1952년에 나온 시인 <이십억 광년의 고독>

만유인력은/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것은 바로 인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별과 별 사이에도 인력이 있고, 화성과 지구 사이에 당기는 힘은 분명있다. 만유인력이라는 것은 넓은 우주 속에 고독하게 존재하는 하찮은 것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다른 하찮은 존재와 동료가 되고자 그 생각을 대변하고 외로움속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연결의 다리라고 여겨지는 대목이죠.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그래서 모두가 서로를 찾는다

시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왜곡속에서 우리는 고독하기에 서로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는 조금씩 팽창하고 있다/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허블은 우주가 "거리가 먼 은하 정도로 큰 속도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 우주는 점점 팽창하고있고, 가뜩이나 넓은 우주가 지금이 순간에도 점점 넓어지가는 모습을 이 시에서 광대 한 공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불안해 하는 오늘날의 외로운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죠.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무심코 재채기를 했다

우주의 시간인 이십억광녀의 시간속에서 인간의 모습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고민하고 연연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음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 시에 대한 답시로는 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이민 언급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너와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수십 억, 수백 년의 우주시간 속에서 바로 지금 그리고 무한한 우주 속에서 같은 태양계, 같은 행성, 같은 나라,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1조에 1조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확률보다도 작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흔히 광활하고 깜깜하고 정적만이 흐를 뿐인 우주를 시에 사용하는 것은 바로 고독과 외로움에 많이 비유 사용이 되는데 그 대답은 칼 세이건이 이미 진작에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 <이십억 광년의 고독>도 아마도 이런 오늘날의 현대인이 부대끼고 누군가를 스치고 살면서도 느끼는 고독과 허전함을 우주를 빗대어서 지적한 것인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이 시집의 제목인 <사과에 대한 고집>

시인의 표현력과 문장력이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게 한 작품입니다. 사과의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사과가 떠오르고 있고, 처음 세 줄은 사과를 모두 부정해 버리고, 사과 자체의 모습을 해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디에도 사과자체의 묘사가 없습니다. 사과의 환경과 개념이 나열되어있을 뿐이죠. 그러나 어느새 사과의 모습만을 남겨두고 말이 사라지고 있죠. 다니카와 순타로의 시는 이런가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당신은 나에게 오늘을 주고/잃어지지 않을 시간을 주고 (....) 당신은 그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나에게 주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매우 아름답게 반짝 반짝 빛나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어쩌면 이 시의 이 문구 정말 너무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너무도 소중하기에 나의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당신에게 주겠다. 정말 읽으면서도 계속 맴돈 너무도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시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깊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문구와 의외의 유머와 위트가 살아 숨쉬는 작품들로 읽는 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본인이 시인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쑥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종이위에 활자속에서는 국한된 시의 세계를 다방면으로 활발히 알리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후기나 엮자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의 활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젊은 마인드를 가진 시인의 이 깊고 풍부한 상상력과 유쾌하고 재치있으며 깊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 시집 정말 의외의 작품을 통해서 너무도 진한 것을 얻은 것 같아서 너무도 기분이 좋고 읽는 내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시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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