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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읽는 두번째 김영하 작가의 소설입니다. 놀랍게도 김영하 작가는 꽤 많은 문학상에서 상을 탔었죠. 그중에서 이 <검은 꽃>은 2004 동인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책을 읽기전에는 괜히 무거운 소설일 것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전까지 저는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멕시코까지 가서 이런 수모와 고통을 겪었었는지...... 고개숙여 엄숙해질 뿐 입니다. 이래서 훌륭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우리에게 권해주시는 거 같습니다. 일단 배에서의 그 혼란스러운 상황은 왠지 배안이기 때문일까? 문득 "파이이야기"가 떠올랐고, 혼란스러움은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습니다. "검은꽃"이라는 제목부터가 너무나도 많은 의미와 생각할 문제를 많이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선뜻 책을 집기 힘들 정도 였죠.
내용은 단순하다면 단순 할 수 있습니다. 구한 말, 조선은 점점 자리를 잃어 갈 때,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은 지구 정 반대편 나라로 배를 타고 넘어 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금으로 뒤덮여 있을 거라 생각 했던 곳에서, 모든 것이 끝도 없이 펼쳐진 시커먼 ㅡ그들의 삶 만큼이나 ㅡ 에네켄을 목격 한다. 여기서 난 내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근.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하와이, 멕시코 등지에서 고생하던 우리 선조들 얘기를 보긴 봤었던거 같은데, 그것을 딴 영화 '애니깽'도 있지 않았던가. 그 애니깽이 바로 에네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이름도 아니었고, 어느 곳의 지명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채찍이었죠.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는 자들이기에 그 채찍을 맞으며 굳은 살을 만든다. 이것도 한국인의 근성이라고 하면 근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소설은 이들의 행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속엔 사랑도 분명히 있고 배신도 있고 좌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분홍빛이라기 보단 회색빛 또는 보랏빛에 가깝다. 그러한 우울 속에 시니컬한 웃음을 묻어 놨다. 씁쓸한 웃음. 김영하 작가는 그것을 잘 이용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상황의 아이러니를 이용한 웃음과 쓰라림을 동시에 안겨 주기.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멕시코로 넘어간 그들의 고생은 과연 누구의 잘못때문인가? 그들을 그 곳으로 갈 정도로 내몬 힘없는 대한제국인가? 아니면 그 국가를 지키지 못한 백성들의 잘못인가..
이 소설은 조선 멸망 직전 금의환향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은 각종 계층의 사람들(몰락한 황족부터 파계신부, 도둑, 보부상, 퇴역군인 등)이 멕시코로 노동이민을 떠나면서 그곳에서의 어려움이 조선에서의 어려움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이었지만 그러나 멕시코로 가는 배위에서 또 멕시코의 농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탈과 가혹한 삶의 모습이 정말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곳에서는 각자가 하루를 살고 또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며 노예와 같은 그곳 생활을 벗어나는 것이 모두의 꿈이 됩니다. 4년 혹은 그 이전에 돈으로 갚아 노동계약기간이 끝난 1000여명의 대한제국 이주민들은 그곳에 남아 각방으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은 영웅과 같은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그 시대의 우리민족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합니다.
특히 검은 꽃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에 잠시 넋이 나가 버릴 정도이죠. 최소한 그들은 삶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었으며 스페인어를 배워 더 지독한 통역으로 잘 먹고 잘사는 정우(?)부터 결국 자신의 몸을 통역에게 맞기는 연수. 그리고 이정. 바오로, 아니 박서방. 그리고 말없는 이발사. 이 인간 군상에게는 최소한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하죠. 그들은 운명에 온몸으로 맞섰으며 그들의 최후가 어떠했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마야의 고대 문명지에서 멕시코 반란군의 일원으로 최후를 맞은 이정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은 그가 택한 반란군의 정치적 노선이 올바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건 그의 삶이 비겁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연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끝까지 이정만을 고집하지 않았던 것이 더 마음에 든다. 그녀가 방귀를 뀌는 장면에선 왜 울음과 웃음이 공존했는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아쉬운 점 그래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책의 분량이 조금 짧지 않았나(367쪽)하는 점입니다. 승선에서부터 에네켄 농장에서의 삶의 모습이 눈물겹고 진솔하게 그려졌다면 후반부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혁명에 휘말리게 되는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은 짧고 휙휙 스쳐지나간 듯한 인상을 받았죠. 그래서 조금 더 세밀하고 진득하게 묘사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전체적으론 무척 만족 그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착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훌륭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아니다. 이 책은 운명에 맞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의지. 자신의 인간다움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
나에게 있어서 김영하 작가는 모두가 인정하는 일정 수준 그 이상의 작가입니다. 아직 그의 모든 작품을 읽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무척 기대되고 읽은 이후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가슴 뜨겁게 하는 마력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 찾아가면서 읽어보고 싶게 하는 그의 작품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