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마리아
다니엘라 크리엔 지음, 이유림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독일에서 주목받는 신예 작가 다니엘라 크리엔의 화제작 <그 여름 마리아>입니다.

 

다니엘라 크리엔의 데뷔 소설인 이 작품은 영어 제목은 Someday We'll Tell Each Other Everything (독일어 제목 : Irgendwann werden wir uns alles erzählen)입니다. 독일에서 이미 폭발적으로 성공하고 세계15개 언어로 출판된 작품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이며 거칠기로 소문난 40세 남자 헤너와 몽상가 소녀인 마리아의 충격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사랑의 행각을 그려가고 있는 작품입니다. 독일 통일을 눈앞에 둔 변혁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날것 그대로의 근원적 욕망을 보여주면서 주인공의 독백 형식을 통해 사랑에 눈뜬 열여섯살 소녀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심리를 투명하고 촘촘한 묘사와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시공간은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인 1990년 여름의 동독의 한 시골 마을입니다. 마리아의 부모는 이혼을 했으며 아버지는 이혼한 후 러시아로 가서 열아홉의 러시아 여성 나스타샤와 재혼을 해서 아이까지 가졌습니다. 10년 가까이 공장 사무원으로 일한 엄마는 공장이 문을 닫자 실업자가 되어 대책 없이 지내죠. 아빠도 없이, 일자리도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엄마의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던 마리아는 스스로 집을 나와 남자 친구 요하네스의 집인 브렌델 농장의 식구가 된다.

 

마리아는 학교에 가지도 않고 하루 종일 풀밭에 누워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만 읽고 있었습니다. 브렌달 농장의 사람들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농장에서는 국경이 무너지는 큰 사건조차 별다른 소동 없이 스쳐지나갔다.” 이 ‘몽상가 소녀’는 답답하지만 엄격한 농장의 가족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차츰 어엿한 식구가 되어갑니다. 농장의 식구들은 마리아를 가족처럼 대하죠.

 

브렌델 농장의 인근에는 헤너 농장이 있는데, 그 농장에는 ‘잔혹한 사람’이라고 소문난 헤너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헤너는 여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술독에만 빠져 지내며 거칠고 괴팍한 성격 때문에 부인이 도망갔다는 소문이 있는 남자입니다. 브렌델 농가의 가족이 서독에 옮겨다 살게 된 요하네스의 삼촌이 온다는 것에 들떠 있는 사이에 마리아는 헤너 농장에 끌려가 겁탈을 당합니다. 겁탈을 당하는 마리아는 아무런 거부도 하지 않고 오히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가 알료샤에게 요한복음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의 입에서 죽어가는 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가 튀어나온다. 분노하고 절망하는 헐떡거림. 나는 차마 눈을 뜨지 못한다. 그가 내 다리를 움켜잡고 한껏 벌리더니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세게, 내 몸이 뒤로 미끄러지자 그는 내 팔을 움켜잡고 엎드리게 하더니 골반 밑에 베개를 밀어 넣는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몸을 다시 돌리려고 한다.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는 묵직한 손으로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P.79-80)

 

그날 헤어지면서 헤너는 마리아에게 봉투를 하나 준다. 그 봉투 속 쪽지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밤마다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가졌네.” 브렌델 농가의 가족은 요하네스의 삼촌인 하르트무트가 방문하자 모두 그에게 정신이 팔려 아무도 마리아에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점심을 먹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 산책이라도 하려고 카라마조프를 들고 나갑니다. “알료샤는 그루센카가 자기 매력을 이용해 덫을 놓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를 찾아간다.” 마리아는 다시 헤너를 찾아갑니다. 헤너는 자신이 준 봉투 속의 쪽지 뒷면에 마리아가 쓴 문장을 확인하고 큰 소리로 읽는다. “그는 그녀를 한 번은 더 가질 수 있다네.”

 

이후 마흔 살 남자와 열여섯 여자의 사랑은 거침없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게 성폭행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 공은 그에게 넘어온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헤너 같은 사람은 열여섯 살짜리가 자기를 마음대로 휘두르게 놔두지 않죠. 마리아가 헤너에게 점점 깊게 빠져드는 동안 요하네스는 오로지 사진에만 빠져있었습니다. 사진은 요하네스의 ‘미래’이죠. 마리아가 그에게 말도 걸어보고, 아양도 떨어보고, 화도 내보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식어갈 때 흔히 하는 일들 모두를 해보지만 그는 무덤덤으로 일관합니다. 이제 마리아의 관심은 오로지 헤너에게만 쏠려갑니다.

 

“쪽지를 남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일주일은 난생처음 겪은 사랑의 아픔 때문에 정말 죽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무너진다’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완전히 현실적인 표현이었다. 줄담배를 피웠고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 나 자신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죽기. 끝내기. 그리고 사라지고 싶었다. 브렌델 농장 사람들은 나한테 잘해줬지만 나는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운지, 진짜 이유를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으니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이토록 괴롭다니,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인 듯했다. 농장 사람들이 친절하게 해줄 때마다 더 아팠고, 요하네스와 몸이 닿을 때마다 울음이 터졌다.”(P.198-199)

 

두 연인은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고 함께 살기로 작정한다. 이 글의 서두에 나오는 글은 마리아가 그 결심을 알리려고 브렌델 농장으로 떠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격정적인 사랑은 결국…. 그녀의 모든 사랑은 결국 열여섯에 끝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모든 사랑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 요하네스가 조금만이라도 마리아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는 우리도 이런 ‘파괴적인 사랑’이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많은 젊은이들은 앞이 깜깜하게 보이지 않는 미궁속의 미래속에서 그들은 어디로 튈 줄 모르죠. 이미 일본에서는 50대 장년 남성에게 20-30대 여성이 빠져드는 ‘카레센’이라는 트렌드가 일상화 되었다고도 합니다. 헤너와 요하네스의 마리아를 대하는 또 하나의 차이는 헤너는 마리아와 섹스를 할 때 불을 절대 끄지 않고 언제나 모든 것을 다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요하네스가 늘 불을 끄는 것과는 정 반대라고도 볼 수 있는 차이점이죠.

 

“그는 내가 불쑥 솟아오른 그의 성기 앞에서 눈길을 수줍게 내리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절대 나쁜 게 아니라고 몇 번이고 강조한다.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건 다 그 덕분이다. 그는 어떤 의미에선 나의 첫 남자다.”(P.201)

 

“그 자리에서 당장 얘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얘기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일들은 결코 얘기할 수 없다.” 작중 마리아의 독백은 그녀 자신이 품고 있는 사랑과 그녀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절묘하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기술하고 있으며, 마리아의 열정에 가득 찬 고뇌와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고통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도 절대로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되는 사랑을, 비밀을 그리고 건드려서는 안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절망을 때로는 공기처럼 투명하고 가벼운 언어로, 때로는 비장하고 무게감 있는 언어로 이 작품은 풀어가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빨려들어가게 하면서도 공감을 얻어내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이 듭니다. 통일이후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불완전하던 독일의 모습과 불안하면서도 위태위태한 이 둘의 사랑은 왠지모르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세상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심한 시골 동네의 여름날 우연히 빠져들었던 마리아의 사랑에서 그녀는 더이상 소녀가 아닌 여인으로 성장되어가는 모습을 상처와 아픔과 함께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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