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제리 브로턴 지음, 이창신 옮김, 김기봉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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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끕니다. <욕망하는 지도>.

 

‘불온한’ 제목과 달리 책은 지도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지도는 단지 매개의 도구로 다뤄질 뿐, 전체적인 맥락은 시대와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책은 지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죠. 왜 특정 시대에 특정 지도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 퀸메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제리 브로턴이 쓴 <욕망하는 지도>는 지도를 통해 인류 세계관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도를 만들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질문이지만 만약 지도가 없었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길을 잃는다’가 표면적인 답이죠.

 

그보다 오늘날처럼 정보를 공간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없었을 터이며, 이른바 ‘인지적 관계대응’, 즉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공간과 관련한 정보를 처리하고 상기하는 행위의 실종은 인간을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시켰을 것입니다.

 

일상이 된 시대입니다.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며 운전을 하고 약속 장소의 주소를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표시해서 찾아갑니다. 그러나 가장 지도를 많이 보는 지금이 지도에서 정보를 가장 적게 얻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에서는 화살표만, 지도 앱에서는 목표지를 표시한 빨간 점과 자신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파란 점만 바라봅니다.

 

예전에는 그 반대였습니다. 지도를 보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그들이 보는 지도는 최대한의 정보를 담아내기 위해 빽빽이 기록했습니다. 한 장의 지도가 그대로 한 권의 책이었던 시대였죠. 그들은 한 장의 지도에 세계를 담아내려 고민했습니다. <욕망하는 지도>의 저자 제리 브로턴은 “지도는 단지 여기서 저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를 묻는 질문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질문에 답을 줍니다. 지도란 인간 세계의 사물, 개념, 조건, 과정, 사건을 공간으로 이해하게 하는 도식적 표현이다”라고 말이죠.

 

서기 150년께 편찬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에서 오늘날의 구글어스 위성지도까지, 저자는 12장의 지도로 그것이 기록했던 것, 혹은 인간이 욕망했던 것들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인류사를 대표하는 그 12장 지도 중에 조선 왕조가 제작한 세계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한국의 풍수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책은 그런 12개의 코드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서 과학, 교류, 신앙, 제국, 발견, 경계, 관용, 돈, 국가, 지정학, 평등, 정보. 모두 12개의 코드는 당시의 지도를 낳게 한 욕망이라는 기제임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 코드를 매개로 기원전 700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세계지도부터 디지털 지도가 초래할 미래까지를 넘나들며 변화를 통찰하며 또한 독자들을 유럽과 아메리카, 이슬람과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지도가 탄생한 역사의 공간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피타고라스의 이론과 중력이론, 동양의 개천설과 혼천설 등 각종 이론도 펼쳐집니다. 데카르트와 뉴턴 등 역사 속 인물들이 지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소상히 보여주죠.

 

저자가 풀어놓는 광활한 ‘지도문화사’를 개괄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지도는 항상 그것이 나타내려는 실체를 조종한다.”

 

이 말은 디지털 지도 시대에 접어든 우리의 가까운 장래를 가늠하게도 합니다. 긍정과 부정 양면이 있다는 얘기이죠.

 

거대 기업이 지도와 관련된 엄청난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현실이죠. 지도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정치적 의도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기술의 진보가 사생활 침해, 나아가 인류를 공멸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경고이죠.

 

세계는 늘 변화하고 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금의 인류는 가상공간에 지도를 만드는 시대에 이르렀다. 인터넷지도 덕분에 더 이상 길을 잃을 염려도 없습니다.

 

“이 책은 세계를 바꾼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 지도부터 구글어스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의미 있게 바꾸는 것은 지도의 본질이 아니다. 지도는 논쟁과 제안을 제시하면서, 대상을 규정하고 재창조하고 형상화하고 중재한다. 그리고 그 목적 달성에 변함없이 실패한다… 그러나 그 지도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사실은 우리 세계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세계 안에 있는 공간이 어떤 식으로 옮겨졌는지 탐색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공간에는 역사가 있다.”

 

또한 작가의 해석하는 우리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대한 해석입니다.

“오늘의 서양인의 눈에 <강리도>는 모순이다. 세계라는 개념 자체는 어느 사회나 공통이겠지만,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대단히 독특하게 정의 된다. <강리도>는 세계최강의 고대 제국에 지도 제작으로 대응한 것이며, 조선이 자국의 자연 지형과 정치 지형을 동시에 인식해 만든 지도다. 중국과 조선은 경험을 활용해 지도를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지도는 단지 지리적 정확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구조적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강리도>와 그 사본은 작지만 당당했던 새 왕조가 덩치가 훨씬 큰 제국의 영역 안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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