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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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가장 대표적으로 마이클 잭슨이 전세계 뮤직차트를 석권하고 펩시와 코카콜라고 열띤 경쟁을 펼치던 시절이며 이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격동하던 시절입니다. 이런 그 시절을 추억하는 하루키의 이 작품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빤한 순간에 대한 하루키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있죠.

 

'더 스크랩'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격주간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들을 엮은 책입니다. 상당히 나이를 먹은 작품이지만 이제야 국내에 나온 작품이죠.

 

요즘들어 아이콘처럼 되어있는 1990년대 향수를 추억하고 소비하는 한국에서 무라카미의 시각으로 1980년대를 되돌아보는 재미가 나름대로 있는 작품이면서 이와 함께 지금은 환갑이 훌쩍 넘은 작가의 서른다섯 시절을 함께 추억하는 재미가 있으며 청년 하루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무라카미가 서른다섯 살 안팎이던 시절이고, 작품으로 보면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발표한 즈음이죠.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빤한 순간에 대한 하루키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에스콰이어' '롤링스톤' '라이프' 뉴욕타임스 등 잡지와 신문에서 무라카미가 흥미를 느낀 기사를 스크랩, 이를 바탕으로 쓴 글들이 책의 전반부를 채우고 있으며, 개장을 앞두고 있던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기'와 1984년 LA 올림픽 시즌에 쓴 '올림픽과 관계없는 올림픽 일기'도 이어진다. 무라카미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일러스트레이터로 도쿄 디즈니랜드를 함께 방문한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도 볼 만 합니다.

 

'더 스크랩'을 읽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자연인 무라카미를 만난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6개월 전에 담배를 끊었는데 꿈속에서 무의식중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며 애꿎은 말보로 광고를 타박하고('말보로 나라로 오세요'), 머리숱도 별로 없는 '아저씨' 빌 머레이가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냐며 질투 섞인 투정를 부리기도 하는 장면에선 왜 이런데 싶기도 하죠.

그리고 이 시기의 일본 문학과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J.D.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도 나오고 파수꾼처럼 가만히 있어도 한 달에 몇 만 부가 팔리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고 하고.

 

무라카미 에세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음악·책 이야기 수북하고 수두룩 합니다.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을 세 번이나 봤다며 스타워즈 예찬론을 늘어놓고, 스티븐 킹의 팬이지만 그래도 '쿠조'는 좀 지루했다며 솔직한 독후감을 토로하고 있죠.

 

다소 주뼛거릴 수 있는 화제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아침 발기 횟수에 대해서 집요하리만치 상세한 통계를 전달하고, 성병 헤르페스에 대한 정보를 담담하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유명인의 연수입을 키워드 삼아 당당하게 돈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1987년 출간된 작품을 이번에 국내에 새로이 출간하면서 이존의 것을 다시 다듬었다고 합니다. 사진삽화와 앙상블을 이뤘던 원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기존 한국어판에 없던 40여컷의 일러스트도 새로 그려넣어 있어서 읽는 내내 자잘한 재미와 위트, 그리고 해학적이어서 가볍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책의 대자인이 아주 독특하죠. 모서리가 잘라져 있어서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펴지긴 정말 잘 펴집니다. 80년대에 있었던 35살의 하루키는 어떤 생각과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흔치않은 작품에 해학과 위트를 느끼면서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정말 의미있는 작품이자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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