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에 좋아하는 공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이곳에 갈무리해봅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서품을 앞둔 한 젊은 수사의 달고도 쓴, 뜨겁고도 차가운 인생 순례기를 엮은 소설입니다.

 

공지영 작가는 “젊은 시절 하게 되는 고뇌, 취직이나 이런 거 말고 인간 본성에 더 깊숙이 다가가는 고뇌에 대한 질문들을 하고 싶었다”며 “이 소설은 그런 질문들에서 시작된 한 청년의 순례기, 방황기 또는 어른이 되기 전 겪는 마지막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소개했었죠.

 

‘높고 푸른 사다리’라는 제목은 기독교와 밀접하다고 합니다. 사다리는 기독교 문화권에는 익숙한 개념이죠. 성서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는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는 통로이며, 사다리 앞에 놓은 ‘높고 푸른’이라는 수식어는 ‘쉽게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기독교 영향이 강하게 베인 작품이나, 이 소설은 신자가 아닌 사람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그녀는 한 스님으로부터 “이 소설을 읽고 한 번 더 하늘을 보게 되었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실제로 공지영작가는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열렬히 신앙 활동을 하다 18년을 방황하고 다시 종교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특히 사춘기에 신의 존재, 고통의 의미 등 종교적인 고민을 하며 ‘대체 왜?’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다고 합니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쓰면서 그녀는 더는 ‘대체 왜?’라는 물음으로 고민하지는 않을 듯 하다고 말합니다. 소설을 쓰며 작가는 스스로 치유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하죠.

 

다양한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대체 왜?’라고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는 그런 성장소설 같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감명깊게 읽은 부분은 주인공 남자가 주인공 여자에게 마음을 내뱉는 사랑고백부분인데, 원래 직설적이고 섣부른 사랑 고백 따위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지라 이상하게 이 거칠고 투박한 고백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아무 것도 재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저 손바닥을 내밀 듯 온 마음을 다해 내뱉는 고백, 말하자면 진심이 담긴 고백 같습니다.

 

 

소희의 그 말이 내 귓가를 울렸다. “우리”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했다. “괜찮아.” 머리가 내 아픈 영혼에게 말하고 있었다.

내 가슴속으로 기도가 울려 나왔다.

 

슬퍼하지 않게 해줄게, 내가 지켜줄게.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너를 축복하고 너의 행복을 빌어줄게.

아프지 말아. 울지 말고 힘들어 말아. 예쁜 사람이니까 예쁘게 살아.

약속해. 네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이든.... 사랑할 거야. 영원히. (P. 103)

 

 

그 밖에도 <높고 푸른 사다리>에는 기억에 오래 남을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는 악만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악에 동의치 않고 그것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쓰라린 공허를 느끼게 하였고 나로 하여금 그제야 비로소 슬픔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그 슬픔은 나를 온통 벙어리로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축제와 향연을 벌일 때면 더운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베푸는 파티에서도 한 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깊은 침묵에 빠졌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 역겨워졌습니다. (P. 34)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 (P. 42)

 

우리의 생을 뒤바꿔버린 사건이나 시간들을 통틀어 떠올려보면 그때는 보지 못했던 징후들이 마치 영화의 티저영상처럼 삶의 거리 여기저기에 깔려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갗에 닿는 바람결로 봄을 느끼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서 조그만 들꽃의 싹이 피어나고 뜻밖에도 양지쪽에 보랏빛 제비꽃이 피어난 걸 보게 되듯이.

그 징후들이 가지고 온 사명의 기호가 해독되는 것은 이미 사건이 종료되고 나서이거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때라는 것이 삶의 비극이었다. (P. 44)

 

생애 대한 모든 해답은 언제나 고독과 고통 속에 있다. (P. 70)

 

내가 전에는 무엇을 알았다 해도 나는 지금 허무가 되었나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 내가 획득했다고 새악ㄱ한 모든 것, 내게 존재한다고 생각한 모든 것은 사라졌나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 내가 획득했다고 생각한 모든 것, 내게 존재한다고 생각한 모든 것은 사라졌나이다.

자존심도 자신감도 이렇듯 모래성처럼 허약함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저를 다시 가난하게 무일푼으로 비참하게 만드신 하느님, 영광 받으소서. (P. 87)

 

이번에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돌아온 공지영 작가의 신작 <높고 푸른 사다리>라는 책은 제게는 사랑 그러니까 내 사랑을 생각해보게 했고, 그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사랑을 소중하게 채우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던 의미있고 뜻 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감동으로 다가와 준 <높고 푸른 사다리> 너무 건조해지는 감성이 안타까우신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더불어 오랜만에 좋은 책 한권으로 좋았던 하루였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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