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여인들 -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
야마자키 도모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다사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삶의 균형을 잡아야 했던 동아시아 여성 20인을 조명하며, 저자가 그동안 저술해 온 여성사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가장 치열했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교류의 역사를 담은 작품입니다. 저자는 역사 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취하는 일본에 대해 다시는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됨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들어봤을 이름인 이방자(李方子)와 아이신줴뤄 히로. 일본 왕족과 후작의 딸인 이들은 각각 조선 왕족 이은, 만주국 황제 푸이의 동생 푸제와 결혼했죠. 일본 정부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일본의 저술가이자 여성연구가인 저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일방적으로 성사된 이들의 결혼을 ‘인신공양 결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푸제와 아이신줴뤄 히로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일본드라마 <유정의 왕비, 최후의 황제> 2003년 작 

 

이은과  이방자여사에 대한 이야기인 일본 드라마 <무지게를 이은 왕비> 2006년 작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구한말을 비롯한 이 시기에 대한 기록과 정보를 국내에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알려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대한 것은 일본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 이방자여사에 대한 드라마를 국내에서 장소를 빌려서 찍고 갔는데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죠. 지울 수 없는 치국의 기록과 역사일지라도 되풀이 되어선 안되기에 더 많이 알리고 알려져야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경계에 선 여인들>은 이처럼 식민지 수탈, 제국주의 전쟁, 경제적 약탈, 첨예한 이념 대립이 휘몰아친 1930~1940년대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나들며 위태로운 삶의 균형을 잡아야 했던 동아시아 여성 20인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자도 이러한 역사의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20대 초반 도쿄대 대학원생인 조선 청년과 사실혼을 맺었으나 그가 조선총련학생부위원장이었던 까닭에 강한 내셔널리즘 풍조에 떠밀려 결국 남편과 이별했다고 합니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 사이에서 존재의 균열을 겪은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어 모이고 흩어지는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연구에 천착했다고 합니다. 정략결혼보다 더 비극적인 국제결혼도 있었다고 합니다. 내선결혼과 ‘대륙의 신부’가 그것이라고 합니다. 돈벌이를 위해 조선과 만주로 간 일본 여성들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했다고 하죠. 저자는 가장 불행한 아시아 여성 교류인 일본군 위안부의 비극도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한 성 지옥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 하나하나의 육성을 통해 저자는 식민 시대 여성들의 수난이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심지어 일본 여성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9년 후지TV에서 찍은 이향란 일대기 '안녕 이향란'

 

 당시 이향란 역을 맡은 사와구치 야스코(沢口 靖子さわぐち やすこ)

 

저자는 일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영토 분쟁의 역사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삶을 진심을 담아 속죄하는 심정으로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가 권력이 행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일본이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하는 저자의 결연한 목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흔치 않은 일본의 양심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일본인이 일본정부와 같이 다 그렇지 않다는 일본내에도 양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가지 더 일본정부는 빌리브란트 서독 총리가 전 세계인이 보는 가운데 폴란드 바르샤바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것을 보고 좀 깨닫고 진심으로 정신차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추모비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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