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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의 대화 - 넬슨 만델라 최후의 자서전
넬슨 만델라 지음, 윤길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거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지상에서의 의무를 다하고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평생을 흑인 인권운동에 헌신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쓴 인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그를 잃은 상실감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줍니다. 인터넷뿐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그의 ‘품격 있는 인생’을 알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영영 인류의 곁을 떠난 만델라의 진면목을 책을 통해 다시 만나나보게 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올해 초 나온 <나 자신과의 대화>는 무엇이든 버리는 법 없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엄청난 정리벽의 소유자인 만델라가 기록한 메모와 일기, 편지 등 개인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개인 기록과 인터뷰 등을 망라해 엮은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만델라 그대로의 목소리입니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쓴 이 책 서문에서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우리를 고무하는 건 바로 그런 불완전함이다. 만델라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류 없는 인간이 거둔 필연적 승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서문을 썼습니다.
그의 삶은 자신의 책 제목처럼 ‘투쟁은 나의 삶’이자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던 그는 안정된 길 대신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에 뛰어들고 처음으로 흑인 법률사무소를 연 1952년에는 전국적인 불복종 저항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인권운동의 지도적 인물로 부상합니다.
이후 지하 무장조직의 초대 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64년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90년까지 복역합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이 기간에 그는 자기정진을 통한 내적인 힘과 외적인 권위를 키워 민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진가는 94년 흑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첫 선거에서 이겨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뒤에 나타나며, 그가 택한 길은 백인 사회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진실에 기초한 대화합이었습니다. 흑인에게 심한 탄압과 테러 등을 자행한 사람도 자진출두 해 자신이 한 일을 솔직하게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 사면받을 수 있게 했으며, 만델라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수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출두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청산해야 하는 여러 나라에 좋은 본보기에 됐으며 ‘화해의 정치’를 실천한 그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납니다.
책은 만델라의 ‘숭고함’만을 전달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무장투쟁을 부르짖고 동지에게 “닥쳐라”고 말하던 혈기 넘치던 젊은 시절 목소리부터, “나는 대중을 선동하고 싶지 않고 그들에게 화해의 정신을 불어넣고 싶다”고 말하는 투옥 이후의 유연한 모습까지 깊은 사색을 통한 한 인간의 변화 과정을 그대로 들려줍니다. 잘 짜여진 스토리가 아닌 기록의 모음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감동은 약간 없을지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의 만델라의 모습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노력을 했다고 믿고, 그래서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한 남자 여기 잠들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뿐이다.”
1부는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가졌던 체제순응적 태도를 벗고 투사로 거듭나는 안티고네, 2부는 무장투쟁을 주도하는 스파르타쿠스, 3부는 27년여 동안 로벤 섬 감옥에 갇혀 있는 프로메테우스, 4부는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내기 위해 협상에 나서는 지도자 프로스페로로 구성되어 있죠. 마지막은 대통령에 당선돼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는 ‘넬슨 왕’으로 그려졌으며. 정치인 저자답게 세상을 더 낫게 바꾸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의 본질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델라의 성취가 혼자만의 것은 아니지만 ‘정의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그의 뚜렷한 역사관과 ‘흑인과 백인이 평화적으로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 큰 구실을 한 것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만난 이 시대의 성인과의 만남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강한 의지와 역동적인 변화가 꿈틀거리게 하며 평등과 자유로움, 그리고 풍요로움이 깃들기를 바래고 바라며,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빌게 되고, 떠나간 만델라에 대한 그리움과 그의 자취를 되새기게 한 의미있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