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상을 받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 소설 집.

15년 동안 단편을 쓰다가 출판하기 위해 다녔지만 여러곳에서 거절당하다가 마침내 출간을 했고 이 책으로 인해 노벨문학상 이전에도 무수한 상을 받은 여류작가이다.

평범한 여자들의 이야기 이다. 어쩌면 저자의 이야기 혹은 친구의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로 상세한 묘사들. 1960년대가 상상되는 배경으로 여러 여자들이 나온다.

고등학생, 어린이, 주부... 그런데 대부분 행복한 이야기 이거나 마음이 따뜻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사랑에 버려지고, 집이 너무 어렵거나..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스스슥 써 주셨다.

책에 있었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우울한 주제였는데 마지막 "행복한 그림자의 춤"만 밝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집의 대표제목이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서 조금은 아이러니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편의 전체적인 내용은 저자가 살아온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대해서 단순히 사건, 결과가 아닌 그 안에 숨겨진 많은 사회상, 그리고 그 시대에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통찰이 숨겨져 있습니다. 단편이어서, 쉽게 장이 넘어갈지 모르지만 그냥 무심히 읽어내기엔 아까운 책입니다. 그 안에 담긴 뜻이나 의미를 알아야 될법한 책인 듯 해서요.

 

(p88.)

그리하여 아버지는 운전을 하고 남동생은 토끼가 지나가나 길을 살피고 나는 우리가 차에 타고 있던 아까 그 오후의 마지막 순간부터 거꾸로 흐르면서, 어리둥절하고 낯설게 변한,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다. 마치 마술을 부리는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친근하고 평범하고 익숙하다가도 돌아서면 어느새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운, 끝끝내 알길 없이 바뀌어버리는 풍경같은 그 삶을.

 

(116.)

나는 그 '엄마' 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오싹해지는 것이, 예수의 이름을 들을 때처럼 참혹함과 부끄러움이 온몸으로 퍼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낳았고 목이 따뜻하고 성마르면서도, 위안을 주도록 인간 세상에 마련된 '엄마'는, 내가 저지르고도 아직 알아채지 못하는 갖가지 사악함때문에 예수처럼 슬퍼하는, 영원한 상처입은 유령같았다.

 

(292.)

주방 창문을 지나치다가 엄마를 보았다. 열어둔 오븐 문에 두 발을 대고 앉아서 받침도 없는 컵에다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돌아와서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할 마음이 없었다. 전혀. 하지만 보풀이 일고 빛바랜 페이즐리 무늬의 실내복을 입고 애써 졸음을 참으며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주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보는 순간, 내게 이상하고 야릇하고 지긋지긋한 의무가 있다는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마터면 그 행복을 놓칠뻔 했다는 것도, 언제고 엄마가 알려고 하지 않는 때가 되면 쉽사리 놓치리라는 것도.

 

총 15편의 단편으로 담겨져 있는 책은 짧지만 여운을 남기는 이야들로 이루어져 있죠. 작가가 여성으로써 삶에서 느꼈던 성장과정에서의 소소한 기억의 단편들이 작품속에서 묻어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앨리스 먼로 단편 소설은 그저 머리를 식히려는 목적으로 읽기에는 그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궂이 독자에게 무언가 의미있는 이야기를 제시해 주려고 하지 않지만 각 단편의 이야기가 끝이 나면 어떤 선보다 다르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음속에 줄을 긋고 있습니다.

물론 그 선이 불분명하게 느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오로지 제 독서량과 삶의 경험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좀 더 성숙해지고 인생의 경험이 풍부해지고 난 뒤 다시 이 책을 읽는 다면 작가가 나에게 그려 놓은 그 선으로 삶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며, 긴 여운을 남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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