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뇌]란 무엇인가.
과연 뇌는 인간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람의 모든 것은 [뇌]로부터 지배 당하고, [뇌]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확립시킨다. 기억과 지식, 차갑고 뜨거운 일상적 감각조차도, 우리는 이 [뇌]라는 비밀스런 기관에 의해 판단을 내려야한다.

생명은 무엇으로부터 탄생하느냐고 묻는다면, 인간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생성되었느냐-까지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뇌가 인간의 근원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의 작은 단위인 세포에서 DNA, 그것을 탄생시킨 어떤 신비스런 창조력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일 수 있게 만들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은 [뇌]가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뇌]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영역이라 말한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신이 있다면 그 신으로부터 인간이 부여받은 힘이 여기에 숨어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뇌]로부터 인간이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추가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의 뇌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를 지배하게 된다면? 이제 인간의 가상 세계라는 초공간적인 형태로만이 아닌, 뇌라는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두려움을 인식해야만 한다. 나의 [뇌]는 믿을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 인간의 존재론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소료 후유미의 [영원의 안식처]는 [뇌]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이런 원초적인 두려움을 끄집어내고 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탄생된 인간. 그리고 그 능력으로 타인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기에 자신의 존재조차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타인의 기억에 의존하여 자신을 확립시킬 수 있는 인간에게 있어 그것은 타인을 무너트림과 동시에 자신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세상은 무의미하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진실한 [나]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이것조차도 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기에, 기억에 의존하지 못하는 자아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원초적인 무의식의 공포가 작품 속에서 [나]를 억누른다.

이 기억을 다루는 [뇌]의 영역에 대한 만화로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이 있다. 공교롭게도 영원의 안식처와 비밀은 뇌의 기억에 대하여, 뇌와 천사의 속삭임은 뇌의 쾌락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만화와 소설이라는 장르상의 구분만이 아닌 다루는 소재면에서 공통적인 분류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시미즈 레이코라는 작가의 특징을 말하라면, 너무나 담담하게 섬뜩한 공포감을 일깨워준다는데 있다. 달의 아이, 월광천녀, 그 외의 수 많은 단편들 속에서, 시미즈 레이코는 우리가 흘려버릴 수 있는 공포를 위로 끌어올려 무미건조한 그림체로 부각시킨다.

[비밀]은 인간의 뇌를 이용해 그 기억을 범죄 수사에 이용한다. 아무리 죽어버린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의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본 모든 은밀한 것들조차도 뇌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비밀]이라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을 때 [비밀]로서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기에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섬뜩하지만, 그 한편으로 슬픈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범인이 잡힌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행복할 것인가. [죽음]으로서 지키려했던 [비밀]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철저하게 드러내진다는 것이,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과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미 오래 전 [개미]라는 소설로 익히 알려진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또 다른 소설 중 하나인 [뇌]. 이 소설 역시 제목 그대로 인간의 뇌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과는 상관없는, 인간을 궁극적인 [쾌락]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감각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그 대가가 유혹적이며 가치있을수록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극대화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인간이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모든 능력을 이끌어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망, 인체에 대한 지나친 욕망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오만으로 규정되고, 이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인간에 의해 인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신이 가진 고유한 능력에 대한 침범이자, 인간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존엄성으로의 상호침해이기 때문이다.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의 천사의 속삭임도 이런 뇌에 있어 쾌락적인 감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국내에는 [푸른 불꽃]이라는 소설로 알려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신파극은 싫어하기 때문에 본인이 읽은 것은 천사의 속삭임이다. 천사의 속삭임은 공포 소설이다. 그러니까 [뇌]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이자 원초적 공포와 두려움의 근원, 은밀하고 신비스런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천사의 속삭임은 아마존에서 들어온 미지의 바이러스가 영장류의 뇌에 기생하면서 기생한 대상의 감각을 조종하여 죽게 만든다. 이 때 기생된 숙주는 평소 두려워하던 대상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그에 도전함으로써 궁극적인 쾌락을 맛보게 된다. 지나칠 정도의 식욕과 성욕, 조증을 보이는 숙주들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접했었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이라든가, 두려움이라든가 하는 걸 느끼지 못했다. 뒤에 엄청난 반전이 있다기에 적어도 서술자가 배후의 조장자였다든지 하는 식일 줄 알았는데 싱거운 결말이었달까. 좀 허무한 공포물이었다;

어쨋든, 최근 들어 [뇌]에 대한 소재가 많이 나오길래 한 번 다루어볼 생각에 몇 가지 작품을 골라 적어보았다. 몇 년전만 해도 가상 세계나 외계의 미지 공간 등을 소재로 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제 인간의 본연적인 공포를 파고 들어 인간이 인간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질적인 공포로 변해가는 것 같다. 과연 이 [뇌]라는 소재가 지나가고 나면 다음으로 우리가 맞닥트려야 할 공포는 어떤 것일까. 

 

*2003년도에 작성했던 글입니당. 개인홈과 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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