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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165p에는 진리와 은유에 대한 탈무드의 우화 하나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에 진리가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진리임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태어난 모습 그대로 벌거벗은 채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민망한 나머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진리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반기는 어떤 이를 보았다. 은유였다. 그래서 진리는 은유에게 하소연했다.
“형제여, 자네는 참 좋겠네. 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끝났다네. 나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노쇠하여 모두가 나를 피하고 있네.”
그러자 은유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오. 사람들은 당신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오. 나도 나이가 들긴 당신과 마찬가지라오. 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주겠소. 사람들은 나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내 옷을 빌려주겠소.”
진리는 은유의 조언을 따라 그가 건네는 화려한 옷을 걸쳐 입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따뜻하게 반기며 맞았다. 이후부터 진리와 은유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은유의 대단함에 대해 알리고자 한 이유로 실린 이 우화 말고도 이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롭고 지식적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여러 예시와 연구자료,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돌이켜보면 생각의 시대라는 책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깊이 연구하는 주제인 지식의 근원과 생각의 근원, 생각의 도구(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들에 대해서 탐구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이는 내가 정보화시대 세대인 것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정보의 대폭발을 일으켰고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검색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진짜 내 머리인 뇌와 인터넷 뇌 두 가지를 가지고 다닌다고 봐도 된다. 정보를 얻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정보의 가치는 하락하고 키보드로 두드려서 얻은 정보는 진짜 내 뇌에 담겨진 정보가 아니라는 문제도 남는다.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고 노력을 덜해도 되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깨우치기보다는 검색으로 얻은 정보에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지식의 기원에서는 인간이 보편성을 추구한 이유(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는 힘)와 축의 시대를 거쳐 이성과 인격을 가진 정신화 된 인간이 된 것. ‘이집트에는 무덤이, 그리스에는 극장이 있다’라는 말까지 나온 고대 국가 그리스에 대해 소개되었고
2부 생각의 기원에서는 아이가 자라면서 익히는 범주화에 대한 설명과 호메로스가 그리스인에게 교육시켰던 추상적 개념에 대한 범주화에 대해
3부 생각을 만드는 사람들에서는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 5가지의 생각의 도구들을 소개하며 이 도구들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이치 중 하나이며 갈고닦아야 하는 능력임을 설파한다. 특히 323p 문장(로고스)에 대한 설명에서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의 도구가 내 생각보다 개인, 사회를 넘어서 인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읽어주기, 글 베껴 쓰기, 탐정소설 읽기, 필드 노트 작성하기 등 저자가 소개한 생각의 도구 능력 키우기 방법도 소개되었다.
저자는 정보혁명의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2개의 뇌(진짜 자신의 뇌, 정보기기에 내장된 뇌)를 가진 엄지세대라고 구분하면서 ‘예전엔 몸과 하나였던 인식기능을 자기 몸 밖으로 꺼내어 들고 다닌다.’라는 끔찍한 표현을 붙이기까지 경고하고 염려한다. 지식은 어디서든 전송받을 수 있지만, 진실과 지혜는 아무 데서도 전송받을 수 없다며 말이다. 그의 말이 옳다. 키워드만 입력해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는 지식은 될 수 있어도 진실이나 지혜는 될 수 없다. 책의 맺음말에서도 맨 마지막에 쓸 정도로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그가 이 저서를 쓴 이유. 부드럽고 유연하고 포용적이기까지 하며 설득적이고 유능, 창조적인 생각의 도구들을 주머니 속에 넣어 갈고닦아 언제든 사용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탄생시킨 모든 문명이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에 의해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도구가 인류와 문명의 꽃을 피웠다.
세월이 더 흐른다고 생각의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