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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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의 <사랑의 난폭> 서평을 읽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공통적으로 놀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는 불륜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지루하지 않은 세밀한 감정묘사(그것도 남성작가가 여성주부의 심리)를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앞서 말한 소재를 역으로 뒤집어서 방심하고 있던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오히려 통속을 깨트리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완독을 하지 못했다면 두 번째로 놀란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평범한 가정주부 모모코가 그의 남편 마모루의 외도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정의 붕괴를 그리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소설 제목인 사랑에 난폭에 반드시 포함되는 인물은 주인공 모모코의 남편 마모루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곱씹을수록 모모코도 사랑에 난폭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모코는 소설 중반이 넘어가면 남편 외도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기행을 하기 시작한다. 다다미를 뜯어보려고 전기톱까지 직접 구입해서 다다미를 뜯는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정신이상자로 보는 시어머니 앞에서 일부러 혼잣말을 하고 미친 척을 하는 등 독자도 본인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모모코의 위 행동이 남편처럼 자신도 난폭을 휘두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대상이 없는데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모모카에게는 난폭을 휘둘러도 될 만한 주체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뻔뻔하게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더 이상 너와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싶지도 않다. 서로 사랑이 식은 것을 알고 있는데 붙잡는 너를 이해 못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남편, 오로지 본인과 아들 생각만 하며 끝내는 모모코를 정신이상자 취급하는 시어머니, 피해자로 나오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모모코의 모습을 소설 곳곳에 걸쳐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모모코를 동정할 즈음(감정이입을 할 만한 인물이 모모코밖에 없다) 밝혀지는 반전은 모모코를 불쌍한 본부인으로 만들어준 갑주와 그녀를 동정할 수 있게 했던 도덕이라는 방패마저 빼앗아 마모루와 시어머니가 서있던 위치로 가차 없이 추락시켜 버린다.

 

모모코 가정 구성원 그 누구도(단 셋뿐인데도) 배려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성은 인간이 살기 위한 필수조건 아니던가. 내 아내, 내 남편, 내 며느리, 내 시어머니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앵무새처럼 자신의 말을 반복한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한참 생각했다. 장고를 가능케 한 것은 소설 속에서 독자의 사유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한 작가의 내공 덕택일 것이다. 매번 쓰는 것 같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계속 생각하게 한다. 왜냐면 그가 늘 내게 질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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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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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니, 태아 때부터 인간은 언제나 우연을 지고 산다. 오히려 어릴 때보다 어쩔 수 없는 우연에 자주 긍정하고 항복하는 것을 보면, 우연은 우리 삶 속에 시시각각 침투하고 있고 완벽한 방어(어떤 방어가 완벽할지는 모르지만)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우연의 무게감과 신묘함에 대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항상 가까이 있어 오히려 존재감이 흐려지는 현상일까. 요시다 슈이치의 청춘소설 <요노스케 이야기>는 갓 도쿄에 상경한 스무 살 새내기 대학생 요코미치 요노스케의 1년 동안의 대학생활을 그린 소설로 우연의 힘을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연 혹은 우연하게라는 단어는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단어다. 삶은 연속된 우연의 결과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이 단어가 많이 쓰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노스케 이야기에서도 우연이 많이 일어나는데 당사자들의 20년 후 회상으로 그 우연의 결과도 알 수 있다. 구라모치 잇페이는 아쿠쓰 유이의 책꽂이 조립을 도와주러 갔다가 눈이 맞아 어린 나이에 애를 가지고 부부가 되었고, 부잣집 철모르는 아가씨 요사노 쇼코는 요노스케의 고향 바다에서 조우한 난민들로 인해 훗날 국제연합 직원이 된다.

 

요노스케는 회상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학 1학년 내내 빈틈투성이에 나사 하나가 빠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로 묘사되던 요노스케가 20년 후 주변인들의 추억 속에서 생각하면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오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다음 구절이 대표적이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198p)

 

 요노스케는 비록 당시는 평범하고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지만 충분히 좋은 친구, 연인, 가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연의 실타래로 감아진 인연이 비록 어느 날 끊어져 더 이상 이어지지 않더라도 추억, 혹은 회상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지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지화된 내 과거 속에도 그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과거 속에도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요노스케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니 내 이미지가 악마나 괴물이면 어쩔까 두렵기도 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독자를 압도하는 펀치력이 있다. 일단 한 번 맞으면 일어나기 힘들다. 무거운 주먹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소설 구조와 얼개를 이용해 요시다 슈이치는 내 심장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의 책은 끊임없이 내게 질문한다. 그리고 답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덮은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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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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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165p에는 진리와 은유에 대한 탈무드의 우화 하나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에 진리가 태어났다그는 자신이 진리임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태어난 모습 그대로 벌거벗은 채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그러자 사람들은 민망한 나머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진리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반기는 어떤 이를 보았다은유였다그래서 진리는 은유에게 하소연했다.

 “형제여자네는 참 좋겠네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끝났다네나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노쇠하여 모두가 나를 피하고 있네.”

 그러자 은유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오사람들은 당신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오나도 나이가 들긴 당신과 마찬가지라오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주겠소사람들은 나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내가 내 옷을 빌려주겠소.”

 진리는 은유의 조언을 따라 그가 건네는 화려한 옷을 걸쳐 입었다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따뜻하게 반기며 맞았다이후부터 진리와 은유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은유의 대단함에 대해 알리고자 한 이유로 실린 이 우화 말고도 이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롭고 지식적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여러 예시와 연구자료이야기들이 실려 있다돌이켜보면 생각의 시대라는 책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깊이 연구하는 주제인 지식의 근원과 생각의 근원생각의 도구(은유원리문장수사)들에 대해서 탐구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이는 내가 정보화시대 세대인 것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인터넷은 그야말로 정보의 대폭발을 일으켰고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검색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진짜 내 머리인 뇌와 인터넷 뇌 두 가지를 가지고 다닌다고 봐도 된다정보를 얻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정보의 가치는 하락하고 키보드로 두드려서 얻은 정보는 진짜 내 뇌에 담겨진 정보가 아니라는 문제도 남는다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고 노력을 덜해도 되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깨우치기보다는 검색으로 얻은 정보에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지식의 기원에서는 인간이 보편성을 추구한 이유(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고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는 힘)와 축의 시대를 거쳐 이성과 인격을 가진 정신화 된 인간이 된 것. ‘이집트에는 무덤이그리스에는 극장이 있다라는 말까지 나온 고대 국가 그리스에 대해 소개되었고

 

 2부 생각의 기원에서는 아이가 자라면서 익히는 범주화에 대한 설명과 호메로스가 그리스인에게 교육시켰던 추상적 개념에 대한 범주화에 대해

 

 3부 생각을 만드는 사람들에서는 은유원리문장수사 5가지의 생각의 도구들을 소개하며 이 도구들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이치 중 하나이며 갈고닦아야 하는 능력임을 설파한다특히 323p 문장(로고스)에 대한 설명에서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의 도구가 내 생각보다 개인사회를 넘어서 인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책 읽어주기글 베껴 쓰기탐정소설 읽기필드 노트 작성하기 등 저자가 소개한 생각의 도구 능력 키우기 방법도 소개되었다.

 

 저자는 정보혁명의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2개의 뇌(진짜 자신의 뇌정보기기에 내장된 뇌)를 가진 엄지세대라고 구분하면서 예전엔 몸과 하나였던 인식기능을 자기 몸 밖으로 꺼내어 들고 다닌다.’라는 끔찍한 표현을 붙이기까지 경고하고 염려한다지식은 어디서든 전송받을 수 있지만진실과 지혜는 아무 데서도 전송받을 수 없다며 말이다그의 말이 옳다키워드만 입력해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는 지식은 될 수 있어도 진실이나 지혜는 될 수 없다책의 맺음말에서도 맨 마지막에 쓸 정도로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그가 이 저서를 쓴 이유부드럽고 유연하고 포용적이기까지 하며 설득적이고 유능창조적인 생각의 도구들을 주머니 속에 넣어 갈고닦아 언제든 사용하라는 것이다왜냐하면 인류가 탄생시킨 모든 문명이 은유원리문장수사에 의해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도구가 인류와 문명의 꽃을 피웠다.

 세월이 더 흐른다고 생각의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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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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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나는 무기력과 우울의 극단를 달렸다. 학교 가기 싫어함은 물론 학교에서도 책상에 엎어져 잠만 잤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만 자고 나를 위한 어떠한 투자도, 노력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나에겐 그야말로 희망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 시절의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실제로 10여 년 간 무기력증을 경험했던 인지과학자 박경숙씨가 쓴 책 문제는 무기력이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소개와 위험성. 원인,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인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실제로 극복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설명과 예시들을 읽다보니 나 또한 학습된 무기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보다 이전의 나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어떠한 도전도 시도조차 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성을 띄고 열심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실패가 반복되고 내가 노력한다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가 무얼 해도 제자리라는 마음에 정신적으로 탈진해 버렸던 것 같다. 더 이상 에너지를 뿜을 수 없는 탈진한 내 몸은 오늘도 잠 내일도 잠이라는 불행한 생활을 택하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무기력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우선 이 두 가지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하나는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포로 신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막 여행과 같이 지루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막과 수용소는 뜨겁고도 차가운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기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막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고, 수용소의 교활한 간수를 넘어설 수 있는 자기 극복을 이루어 내야 한다.(135p)

 

 미로는 길을 잃게 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므로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렵지만 미궁은 목표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갈림길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걷기만 한다면 반드시 길을 찾아 나올 수 있는 게 미궁이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이런 미궁과 유사하다. 걷기만 한다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기만 하면 되므로 애써 없는 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156p~157p)

 

 무기력과 싸우는 것을 사막 여행과 미궁 탐험에 비유한 저자는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본성은 무기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들은 무기력하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것을 잘한다. 나도 어릴 때는 그랬었다. 멀지만 포기하지 않고 걷는다면,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무기력이라는 사실을 알면 내가 수용소에 갇힌 신세라는 것은, 지루한 사막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절망적인 상황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빠져나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방점을 이곳에 찍었다면 말이다.

 

 독서 고수들은 자기 계발서를 되도록 멀리 하라 말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한다. 나도 독서인들이 말하는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기를 권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공감한다. 하지만 가끔 내가 얼마나 나태하고 나약한 인간인지 느끼면서 전환점을 찾고 싶을 때. 내게 적합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적절한 자기 계발서 한 권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뇌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그들의 위로와 권고를 몇 시간 후면 사라질 휘발성 텍스트라 하더라도 일단은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170p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이렇듯 진정으로 전환하기를 원한다면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 발휘해 그곳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 발휘하는 것은 분명 많은 에너지와 노력.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기력에서 빠져나온 활력 안에 공기는 분명 말도 못하게 맑고 시원할 것이다. 노력하고 앞으로 꿋꿋이 나아가는 것. 어렵다. 하지만 무기력의 더러운 공기보다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 발휘해 그 곳을 빠져나와 활력의 시원한 공기를 킁킁 맡은 나는. 최선의 노력을 해 이 자리에 있기 한 방금 전의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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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화제의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를 기억한다권력과 욕망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딸을 원조교제와 마약복용을 하는 불량학생으로 만들어 버린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여 결국 딸의 무죄를 밝히는 내용이었다전 국민의 혈압을 상승시킨 드라마며손현주를 이견 없이 그 해의 SBS 연기대상 수상자로 만들어 준 드라마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나도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두 장면이 있다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극 중 백홍석이 PK준의 재판현장에 난입하여 PK준과 몸싸움 끝에 살해하는 장면이었고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회 때 제 죄를 알고 처벌 받겠습니다이 모든 일이 죄를 짓고 벌을 받지 않으려다가 발생한 일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심신미약으로 인해서 형이 감형될 수 있는 기회를 자발적으로 거부한 장면이었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 “지금부터 내가 검사고 이 총이 판사다.”라며 총을 발사하고 PK준을 압박하던 씬을 보고 있던 중에는 아마 옆에서 불이 났다 해도 화재가 발생하였는지 모르고 계속 TV를 시청했을 것 같다그 정도로 손현주의 연기재판장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가득했다다른 어떤 것에도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장면은 인상적인 장면인 마지막회 장면일 것이다심신미약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이라는 유리한 변론을 한다면 많이 감형되었을 것이다하지만 백홍석은 내가 원한 것은 자신의 무죄가 아닌 딸의 명예회복이었다면서 오히려 판사에게 진실에 입각한 정확한 판결을 맡겼다그 결과 백홍석의 딸 수정이는 명예회복은 물론 사법 피해자구원 법의 명칭을 백수정법으로 제정했다살인과 같은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인간의 정의와 올바름을 위한 교훈을 주는 장면이 내 가슴 속에 더 오래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리뷰하고자 하는 펀치는 바로 이 추적자 더 체이서의 작가 박경수 작가가 차기작 드라마 황금의 제국 이후에 집필한 권력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부패검사였던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 박정환이 뇌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자신이 없을 미래를 살 가족을 위해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과 싸운다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짧은 줄거리지만 자신이 없을 미래를 살 가족이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나쁜 놈들을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19부작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다박정환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 높이 있는 이태준특히 윤지숙은 박정환의 계획을 막고 박정환을 힐난하고 조롱했다조롱하는 이들을 보며 좌절하는 박정환을 보면서(박정환도 원래 부패검사였지만정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얼마나 힘든지정의나 도덕을 조금만 포기하면 얻어지는 달콤한 누리는 소득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눈을 감는지를 생각했다.

 

 중학교 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따돌림이나 왕따 같이 무리에서 소외되는 것이었다그런데 1학년에 입학하고 친해진 친구가 뚱뚱하다는 이유로공부를 못한다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내가 선택한 행동은 그 친구와 같이 다니지 않고 멀리 하는 것이었다학기가 진행된 후 국어 시간에 생각발표를 했는데 그 때는 이미 같은 반 모두가 그 친구를 놀리고왕따 시키고 놀지 않게 된 때였다아이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그 내용이 친구를 갖고 싶다고어울리고 싶다고특히 내 이름을 말하며 나와 놀고 싶다고 말했다나는 그 친구가 왕따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그 친구를 내쳤는데내친 후에는 내 거짓말에 그 친구를 이용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게까지 했는데 놀아주는 동무 하나 없는 아이는 나와 놀고 싶다고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 울며 고백했다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그 친구와 어울리지 않았다그저 1년 쯤 뒤 거짓말에 널 이용해서 미안했었다고 사과한 것이 다였다.

 

 사람은 모두 크기는 다르지만 권력은 갖고 있다중학생 신분의 여자아이에게는 무리그룹에 들게 해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일종의 권력인 것이다교실에서 오후 4시가 넘는 시간 동안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권력으로 찍어 누른 것과 같다극 중 윤지숙과 이태준도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게다가 윤지숙은 법무부장관이태준은 검찰총장이기에 그 권력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다치는 내상이며 외상이 엄청나다단지 드라마 한 작품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완벽한 대본과 신중한 연출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당신마지막까지 내 남편으로 살아난 당신 부인으로 싸울게."

 

 드라마 막바지 전남편이었던 박정환의 혼인신고서에 다시 자신의 이름을 올린 신하경이 한 말이다박정환과 이혼 전에 신하경은 이혼서류와 이태준 압수수색 영장 둘 중 하나의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했다박정환은 압수수색 영장에 도장을 찍으려 했으나 비리 조사 중 이태준이 보여준 의리에 감동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끝없는 비리를 저지른다일종의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몇 년 후 박정환이 뇌종양에 걸리고 싸움을 시작하면서 신하경이 박정환과 상징일 뿐이지만 재혼을 한 것도 선택이었다박정환이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결과다.

 

 이처럼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윤지숙이 아무리 없애려 해도 증거물들이 기어 나왔던 것처럼 선택의 결과는 삶으로증거로 남는다박정환은 물론 신하경도 완벽한 성인군자는 아니다하지만 그들의 사투가 쉽지 않았기를 알기에무엇보다 싸우기로 마음먹고 행동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모든 것이 밝혀지고 단죄되기 전에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박수 보내고 싶다.

 

 "법은 하나입니다나한테도당신한테도.“

 

 나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 법은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아들의 병역비리를 축소시키고 결국 뺑소니까지 낸 윤지숙에게 한 박정환의 명대사가 귓가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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