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적의 딸 로냐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3월
평점 :
<산적의 딸 로냐>는 '폭풍의 밤에 태어난 아이'이자 산적 마티스의 딸인 로냐의 출생과 성장을 다룬 전형적인 성장 이야기이다. 소설의 배경은 아름다우면서 인간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야성을 지닌 깊은 숲과 로냐가 태어나 자란 마티스 요새이다. 로냐는 우연히 숲에서 만난 원수의 아들 비르크라는 소년과 서로 생명의 빚을 주고받은 후에 우정을 맺고, 이 우정은 괴물 비트로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위험한 폭포 헤엄을 거쳐 아름다운 사랑으로 변모한다.
소설의 기본 줄기인 로냐의 모험은 작은 위험에서 점차 큰 위험으로 고조되거나, 숲,계곡,폭포,동굴,안개와 같은 자연환경과 야생마,곰,여우,회색 난장이,비트로나 같은 동물이나 괴물 등과의 대결과 조화의 과정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로냐의 탐험은 자신의 요새에서 숲 전체로 확대되고 숲은 아름다움과 기이함이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놀라운 공간이 된다. 동시에 오래된 숙적인 산적 마티스와 보르카 일당의 대결과 화해의 이야기는 주인공 남녀 로냐와 비르크의 우정과 사랑과 뒤섞여 흥미진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로냐와 비르크는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극복하고 자연에 동화되면서 함께 성장해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아름다운 문장으로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로냐와 비르크가 곰에게 새끼를 빼앗기고 상처입은 암말을 구해주는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인 부분이다. 암말에게 '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새끼를 잃어 남는 말의 젖을 로냐와 비르크가 나눠먹고 생명을 연장하는 과정은 묘하고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상처를 치유한 '리아'가 이들 인간의 곁에 남지 않고 야생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역시 인간과 동물 관계를 다룬 기존 작품과는 달리 인간 중심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로냐와 비르크가 '곰굴'에서 보낸 여름 한철은 이 소설의 절정이다. 왜냐하면 로냐는 이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우정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 성장이 있었기에 그들은 다시 산적의 요새로 돌아오고서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무 즐거웠던 것은 미래의 산적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에 로냐가 은광을 캐는 광부가 되겠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과연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답다. 덧붙이고 싶은 말, 이 소설에 나오는 산적들은 어쩐지 다 멋지고, 착하고, 사랑스럽다.
여름을 모아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서 여름이 끝나면 그걸 먹고 살겠다는 로냐의 말처럼, 이처럼 멋진 이야기를 많이 읽다보면 이런 이야기의 힘으로 씩씩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생생한 표현 덕분에 우리나라의 산수로는 쉽사리 떠올리지 못할 로냐의 숲 전경이 내내 머리속에 존재했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런 숲 속이라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산적의 딸'이 여전히 맨발로 쏜살같이 달리고, 절벽을 뛰어넘고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 아름다운 환상에 빠져있는 시간 동안 나도 그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날 로냐와 비르크는 꽤나 오랫동안 리아와 함께 지냈다. 리아는 그들이 떠나려고 하자, 밝은 여름 달빛을 받으며 줄곧 뒤따라왔다. 리아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듯했다. 리아가 비르크와 로냐와 지낸 특별한 시간은 야생마로 살아갈 남은 시간들과는 완전히 다르리라. 기이한 경험을 갖게 했던 작은 인간들이 떠나고 있었다. 리아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인간들이 가문비나무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무리로 돌아갔다. - P232
"난 야생 벌이 꿀을 빨아 먹는 것처럼 여름을 마시고 있어. 여름을 모아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서, 때가 되면...... 여름이 끝나면 그걸 먹고 사는 거야. 여름 덩어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 그 덩어리에는 떠오르는 태양이랑, 월귤이 잔뜩 달린 월귤나무랑, 네 팔에 있는 얼룩이랑, 저녁이면 강물 위로 내리비치는 잔잔한 달빛이랑, 별이 총총 떠 있는 하늘이랑, 태양이 전나무 위에서 빛나는 한낮의 뜨거운 숲이랑, 저녁에 잠깐 내리는 비 같은 것들이랑, 다람쥐, 여우, 산토끼, 사슴,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야생마들, 또 우리가 수영할 때와 숲에서 말을 타던 그 순간들이 있고, 음 그 덩어리에는 여름의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 있어!" - P2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