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사 수업 - 유대 문헌으로 보는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박양규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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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대부분 아는 이야기 중 하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갈릴리 사람 예수의 양 옆에 같이 매달린 두 사람을 강도로 알고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그 중 한명은 예수를 저주했고, 한 명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해서 낙원(천국)으로 갔다는 이야기... 정말 그럴까? 그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류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그런가 보다 했지-설교나 주일학교에서 들은 지식으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과거의 역사를 읽을 때 내 기준으로, 현재의 시각이나 관점으로 접근할 때 오류에 빠질 위험이 커질 것이다. 인류 최대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성경(구약, 신약)도 그러하다. 구전이나  문자로 기록된 말씀을 들은 그 당시의 1차 독자들이 이해한 것과, 수천년이 흐른 뒤에 머나먼 한국 땅에서 한글이나 영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읽는 2차 독자들이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물며 구약 시대의 짧은 통일 왕국 시대(사울 ~ 다윗 ~ 솔로몬)를 마치고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가 여러 제국(앗시리아 - 바빌로니아 - 페르시아 - 그리스 - 로마  순)의 지배를 받은 이스라엘과 주변 열강의 역사를 모르고서 성서를 읽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약 4~5백년 간의 중간기의 역사를 암흑기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고학의 발견과 연구의 결과로 이 기간 중에도 인류 구원이라는 프로젝트, 곧 언약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책. 박양규 목사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중간사 수업'은 제목 그대로 공부하라고 독자를 몰아세우는 느낌이 든다. 알려면 제대로 찾아보고, 생각이라는 것을 해서 지정의의 균형을 잡으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아니 경건하고 고상하게 포장(!)한 현대의 산헤드린 공의회 구성원 같은 이들은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속지 않으려면, 아니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좁은 길일 수 밖에 없는 정도를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책을 읽는 내내-수업을 읽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안에 심겨진 본성의 빛. 양심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중간사 수업에서 공부한 사례들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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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재판은 인간의 탐욕과 위선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지 볼 수 있는 무대입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유대 민중들에게는 종교적인 명분을, 빌라도에게는 정치적인 명분을 들이대는 산헤드린의 이중성을 보게 됩니다. 유대 사회에서 가장 경건하고, 거룩하다는 사람들일 텐데 말입니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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