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보자기
도광환 지음 / 자연경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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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한참을 들여다 봤다. 제본이 잘못된 것인가? 본드칠이 덜 된 상태로 배송된 파본인가?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렇게 제본 마감을 한 이유를 자연스레 알았다. 두 쪽에 가득 담아야 할 그림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제본이란 것을! 거기에 표제 그림의 강렬한 아우라가 온통 보랏빛으로 물을 들인 표지 디자인 때문에 더욱 도드라진다. 처음 보는 작품인데 ‘뭐지? 이 도도함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 도경환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국내 아무개 통신사의 사진기자로 수십년 넘게 일하면서 숱한 현장의 보도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런 이력을 가진 저자가 미술 작품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성당 벽화, ‘최후의 만찬’을 본 이후였다고 한다. 영혼의 떨림을 경험한 저자는 이후 미술은 물론 미학, 문학, 역사,철학, 음악의 세계에 입문-독서와 체험의 폭을 넓혀-하였고 그 노력의 산물이 올 봄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보랏빛 책 ‘미술-보자기’이다. 단순히 유명한 명화 도판을 싣고 작품 설명과 저자의 감상평을 나열하는 여느 책들과 다른 선명함이 있다. 부제를 보면 더 명확하게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보는 일, 자신을 기억하는 힘’. 무슨 말인지 첫을 읽어나가기 전에는 헤아리기 쉽지 않았다.

저자 서문에 실마리가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저자가 수십년 간 사진을 찍고 현재를 기록하여 세상과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수많은 그림들은 그려졌던 시대를 반영하고 화가와 그가 살았던 장소와 사건을 박제하듯 보존해 왔다. 그 작품을 보고 느끼는 정도는 관람자의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의 내공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래도 생소한 화가와 작품을 혼자서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실력있는 가이드(길라잡이)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미술-보자기’는 특별하다.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가 보자기 예찬을 한 것과, 책 표지 띠지에 효재 선생이 추천했단 문구가 기억난다. 보자기는 서구의 란도셀류의 가방과 달리 왠만하면 다 보듬는다. 들고 다닐 수도, 허리춤에 메고 다닐 수도 있다. 색색의 물을 들인 보자기에 무엇을 담을지는 주인 맘이다. 하여 저자 도광환은 그의 인생 공부를 미술이란 보자기에 담아냈다. 목차를 들여다 보면 이건 단순한 명화 감상서가 아님을 금새 알 수 있다. 흔한 인문학 입문서의 그것을 뛰어 넘는다. 그만큼 독자는 저자의 광범위한 공부의 열매들을 다섯개의 큰 보자기와 그 속에 있는 수십 장의 작은 보자기를 풀어 맛볼 수 있다. 서가에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몇 안되는 책 목록에 넣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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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며 서론을 마친다. “나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거나 평론하는 사람이 아니다. ‘미술을 보는 일로 자신을 기억하는 힘’을 갖추고 싶아. 줄여서 이 책의 제목처럼 ‘미술-보자기’다. 나는 평면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의 입체미를 통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으로 얽힌 세상과 인간을 알고, 그 속에 서린 차별을 지워나가면서 종국엔 ‘나’를 더 알고 싶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간수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그건 ‘자유와 해방으로 향하는 출구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9쪽)

현재의 나를 살피는 일은 기본이다. 그로부터 미래에 어떤 장면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어떠했는지, 그 성공과 실패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탐구하는 일도 필수다.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여는 작업이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예술은 언어를 넘어선 인간의 실체와 ‘세계의 살’에 대한 탐구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한 ‘살’을 역사로 이해한다. 살 아래 피부가 있고, 뼈대가 있으며, 힘줄이 있다. 그리고 피가 흐른다. (199~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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