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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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참 무례하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사람들은 유명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둔다. 이런 경향을 알기에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은 유명 인사의 신변잡기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저마다의 아카이브에 담는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이어령 교수의 발자취 또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반백 년이 넘도록 왕성한 저술과 강연, 연구 활동에 천착한 동시대를 살았던 지성인의 묵직한 족적은 그 이름의 무게만큼 깊게 새겨져 있다.

냉철한 분석과 사유를 기반으로 한국과 한국인의 심성을 활자로, 강연으로 정제해 낸, 그 누구보다 논리와 이성을 강조했던 이어령 교수가 어느 날 기독교-개신교-의 세례를 받았다는 기사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환영하는 목소리 못지 않게 그의 전향(!)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초자연적인 경험 이후 기독교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인구에 회자되기 충분한 가십거리일 터.

‘당신, 크리스천 맞아?’는 저자 이어령의 생전에 여러 매체와 한 인터뷰 기사를 사후에 묶어낸 책이다. 단정한 빛깔의 양장 제본이라 들고 다니는 느낌이 좋다. 아까운 곶감 빼먹듯 천천히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읽는 독자가 질문자의 자리에 앉아 이어령 교수를 마주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한 장씩 읽어가는 것도 몰입감을 주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여러 인터뷰를 모아 엮은 터라 비슷한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부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저자의 인생에 변곡점-터닝 포인트-이 되었기 때문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좋겠다.

저자는 인생의 마지막까지도 사유와 성찰의 노력을 경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신앙인든, 아니든. 사회와 인간의 문제는 쉽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지성과 영성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하듯 ‘정의’와 ‘사랑’ 또한 함께 가야 한다는 것. 그가 고백한 회심 전후에 달라진 점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더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묻는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가 해야 할까? 또한 문지방을 밟고 있는 발이 안에 있는지 먼저 살펴볼 일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의 세계를 알아갈수록 저런 질문은 감히 못할 것 같다.


*** ***
여섯 살 여름 대낮에 보리밭, 옥수수밭 있는 시골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다가 아무도 없는 벌판에 햇빛이 쏟아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쭉 흘렸어요. 그날 왜 울었는지 몰라서 여태 그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집안에 누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친구랑 싸운 것도 아닌데, 그 여름에 내가 왜 울었겠어요. 그게 영성이죠. (190쪽)

부활을 믿으면 그때부터 지성이 무너지고 영성이 남는데, 이 지성의 사다리가 못자국처럼 남아 있는 것이지요. 지성을 통해 영성으로 가는 것이지, 지성 없이 영성으로 가는 것은 사다리 없이 지붕 위에 올라간 것과 같습니다. 금방 떨어져요.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게 지성이에요. (209쪽)

그러니까, 기독교의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고 인간의 사는 문제고 살아 있는 생명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문제가 생명공학에서 생물학자들이 얘기하는 생명의 해결이라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거예요.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별짓을 해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을 믿어라. 될 것 같으면 안 믿어도 돼요.(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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