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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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18 민주화운동 일부 단체와 당시 계엄군이었던 특전사 동지회 간에 화해와 용서를 위한 합의가 공개되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쟁점은 당시 계엄군도 상부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을 살상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이런 시도는 집단적인 반발에 직면했고, 대다수 회원들의 의견 수렴 없이 5.18 단체의 일부 임원진이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법원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또한 베트남과 한국 양국 정부의 입장, 당시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가해를 한 참전 군인 간의 입장이 상충된다. 전쟁 범죄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일본국 정부의 입장은 또 어떠한가? 국가의 거대한 폭력에 부화뇌동하여 마치 호가호위하듯 위세와 일탈을 일삼은 완장찬 개인들의 범죄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은 오늘도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수십만의 예비군을 징집했다고 한다. 국가의 부름에 양국의 ‘선량한’ 시민들은 죽을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한 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권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니 누가 이런 권한을 부여해 준 것일까? 이런 의문과 궁금증을 갖고 읽게 된 노란색 표지의 작은 책 ‘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솔직히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표지에 진지한듯, 익살스러운듯 한 표정으로 두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그이가 필립 짐바르도 교수란다.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퍼드란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교도소 실험’은 여기 저기 인용되는 책이 많아서 그 내용은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실험을 기획하고 진행한 당사자의 육성 회고록이 바로 이 책이다. 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흡입력이 대단하다.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어려운 개념들도 대화체로 설명하기에 그런대로 알아 들을만 했다. 다음 챕터 내용이 궁금해서 책장을 덮고 쉽지 않았다.

구미 선진국들이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 이유도 곳곳에 뿌려 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눈 앞에 펼쳐지는 퍼포먼스에 현혹되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각성’해야 하는 이유도 알려 준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각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불완전한 직감을 신뢰한다. 그 결과 미합중국은 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또 1978년 세상을 놀랍게 한 사이비 목사 짐 존스와 추종자 1천여명의 집단 자살 사건인 ‘인민 사원 사건’도 가능했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면 오늘날의 ‘빅브라더’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존재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일갈한 ‘악의 평범성’도 이런 환경에서 발현될 것이다. 필립 짐바르도는 촉구한다. 악을 부추기는 빅브라더-모든 빅브라더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님- 에 대항하는 ‘평범한 영웅’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야 그 사회와 공동체는 건강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잠시 고민하며 노란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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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할을 맡든 다 그런 현상이 나타났군요
> 그래요. ‘맡은 역할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그것이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담긴 가장 큰 메시지입닏. ‘실제 행동’이 무작위로 ‘주어진 역할’을 따라 가는 거죠.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은 교도관이 되었고, 수감자 역할을 맡은 학생은 정말로 수감자가 되었습니다. (135쪽)

‘현재 시간대에 집중해 살아가는 현상’이 수감자들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죠. 그들이 현재 긍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나요? 아니요. 그렇지 앉죠. 오히려 극도의 부정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죠. 부정적인 현재 상황에 집중하는데 어떻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어요. 이는 시간관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시간을 대하여 살아가는지,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이런 시긴관 연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앞서 이야기한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예요. (167쪽)

제 묘비에 ‘그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감독관이었다’라는 글이 새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을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었다’라고 새겨지면 좋겠군요.

그게 좋겠어요?

네, 커다란 묘비에 이렇게 새겨지면 좋겠습니다. ‘그는 수줍음과 무지, 자기합리화의 감옥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그 과정을 즐겼으며, 많은 이에게 평범한 영웅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불어넣었다’.(255쪽)


어떤 결함이 있더라도 필자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인간의 행동과 그 복잡한 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내적 외적 역사적 동시대적 문화적 개인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상황의 힘은 인간의 행동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역학과 그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인간의 바람직한 본성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사명이기도 하다.(268쪽)

우리는 안전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람, 부당한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기보다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과 뿌리가 튼튼한 공동체를 세워 빅브라더에 대항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고결한 공동의 목표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악에 저항하고 선함을 장려하고 지혜로운 행동을 실천하는 ‘평범한 영웅’이 되는 것이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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