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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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은 큰 맘 먹고 읽기 시작해야 한다. 독자의 성별이 무엇이든 간에 불편한 지점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이 되었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든 간에. 여성학 연구자인 정희진의 해제는 앤젤라.Y.데이비스와 그의 40년 전 저작을 이해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준다. 책을 읽기 전에, 그리고 책을 일독한 뒤에 해제를 다시 읽으면 뭔가 맥락이 잡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주제는 한 권의 책으로 섭렵할 수도, 모두 담아낼 수도 없다. 개인으로서 사람과 사회를 이루는 사람 간의 관계는 다층적이고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어쨌든 어떤 성별과 인종으로 필연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특정 계급 또는 계층에 자리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해제 22쪽을 보면 흥미로운 글이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여성 참정권이 ‘저절로’ 주어졌다는 대목이다. 저절로에 작은 따옴표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여성 참정권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앤젤라. Y.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저절로’ 되지 않은 여러 가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아직도 멀고 먼 진정한 해방에 대해 13개 장에 걸쳐 다소 거친 주장을 한다. 읽다보면 거친 표현이 이해가 된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역사를 배울 때 노예 해방은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의 대표적 치적이요, 그의 결정에 영향을 준 소설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해리엇 비처 스토의 장편 소설로 1852년 발표)이란 정도로 ‘암기’한 것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 ‘여성, 인종, 계급’은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을 했는지 담담하게 소개한다. (알량한 지식으로 속단하는 잘못을 저지르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낌). 기득권을 쥐고 있던 백인 대통령이 시혜(은혜)를 베풀 듯 해방 선언을 한 것이 아닌 것은 흑인에 대한 린치가 그 뒤로부터 계속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대적인 약자-성별, 인종,경제, 정치, 문화, 종교 둥-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착취의 역사는 인간 역사에서 계속 발견되고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는 성별, 세대별 대결 양상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자 상대적 박탈을 느낀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늘어나자 인종과 종교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도 표출된다. 이는 단순하게 보면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방어심리가 발동된 것 같다. 도덕을 배운 사람들답게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순리인데 어디 인간이 그러한가.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군상 아니던가.

여성과 인종, 계급의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이다. 산적한 현안과 갈등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나 비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증오 같은 원죄의 해결이 전제되어야 하니 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런 책을 시간 내어 읽어가며 이해와 공감을 하는 사람이 늘어가다 보면 이전보다는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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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근거로 노예제에 반대하던 가장 급진적인 백인 폐지론자들조차도 급성장중인 북부의 자본주의 역시 억압적인 시스템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노예제를 구태의연하게 정의를 거역한, 혐오스럽고 비인도적인 제도로 여겼지만 북부의 백인 노동자들이 누리는 '자유로운'노동자라는 신분 역시 남부의 노예화된 '노동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집단 모두 경제적 착취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114p)

노예제는 채찍에 의지했던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성폭력에 의지했다. 백인 남성 개인에게 실제로 있든 없든, 과도한성욕은 사실상 제도화된 강간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보다 성적 억압은 노예 소유주와 노예의 사회적 관계에서 본질적인측면이었다. 다시 말해서 노예 소유주가 주장하는 권리, 그리고 여자 노예의 몸에 대한 그들의 권력 행사는 전체 흑인에 대해 그들이 상정하는 재산권의 직접적인 표현이었다. 강간 면허는 노예제의 소름 끼치는 특징인 가혹한 경제적 지배에서 비롯되었고 동시에 그 경제적 지배를 용이하게 했다.(269p)

흑인 여성들은 노예 시절 못지않게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집 밖에서 노동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들 삶에서 가사노동이 중심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산업자본주의가 백인 중간계급 주부들에게 가한 심리적 피해를 대체로 면했다.산업자본주의는 백인 중간계급 주부의 미덕이 여성적인 연약함과 아내로서의 복종이라고 설파했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들은 연약해지기 위해 애쓸 수가 없었다. 가족과 공동체를 먹여 살리려면 강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341-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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