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 십자군 유적지 여행 여행자의 시선 1
임영호 지음 / 컬처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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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묶였던 항공편이 서서히 재개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국외 여행을 하지 못해 답답해 했던 사람들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이곳 저곳으로 떠나고 있다. 흔히 여행을 말할 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중세시대 십자군이 남긴 유적지를 답사하고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라는 여행기를 쓴 저자 임영호는 말한다. 십자군의 발자취를 더듬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십자군 운동은 이슬람 세력이 점령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순수성보다 돈벌이와 권력 투쟁으로 적전 분열의 양상을 보이면서 이슬람에게 패퇴하고 만다. 이후 성지의 유적은 훼파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다.

때문에 저자는 십자군이 남긴 유적을 제대로 보려면 맨눈이 아니라, 사전에 책에서 읽은 지식의 도움으로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177쪽). 이런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순식간에 보고 인증 사진만 찍고 지나칠 요량이 아니라면 미리 공부를 해야 한다. 저자의 이력이 눈에 띤다. 서른 즈음에 미국 유학길에 비행기를 처음 탄 촌사람이라 한다. 그런 저자가 코로나19 발발 이전에 무려 76개 국가의 수많은 도시와 시골을 여행했다고 한다. 이번에 펴낸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또한 저자가 주요 포인트를 걸어다니며 보고 듣고 느낌 것을 미리 공부한 사전 지식에 버무려 마치 독자가 현장에 동행한 듯한 생생함을 전해 주고 있다.

요즘 유튜버 중에 신혼여행을 1년간 세계 여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콘텐츠를 구독하고 있는데 영상이 아닌 텍스트로도 현장감을 전달해 주는 매력에 푹 빠진다. 거기에 더해 저자의 여행 이야기에 천착할 수 있는 진한 매개체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현장 사진이다. 저자가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은 그 구도를 잘 잡아서 독자 또한 같은 시선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책을 읽으며 아쉬었던 것은 조금 더 큰 판형으로 출판했다면 사진을 좀 더 시원스럽게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십자군의 흔적을 따라가는 저자의 여정은 요르단과 중세 기사단이 활동했던 세 지역-로도스, 보드룸, 몰타-,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이어진다. 그중 가장 흥미롭게 읽는 부분은 제2장 ‘잃어버린 성지와 기사단의 최후’였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중세 기사단의 흥망과 성쇠의 과정을 그들이 쫓겨 이주했던 도시와 성곽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슨트 역할을 맡은 저자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1장에서 저자는 성지 순례인가? 아니면 관광인가? 하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답은 본인만 알 것이다. 아무튼 유럽과 중동을 이해하려면 종교와 전쟁이란 화두를 던져 준 십자군을 아는 것이 좋다. 그 지난한 여정을 작가와 함께 하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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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은 기독교인이라는 점에서 유럽인과 공통점이 있지만 문화적으로 튀르크인과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기사단 최후의 공성전이 벌어졌던 1522년 당시에도 그리스인은 튀르크군과 기사단 양쪽 편에 모두 참가해서 싸웠다. 국가와 민족의 경계는 오늘날의 시각일 뿐이다. (113p)

한때 기사단은 중세의 질서와 세계관에서 정점을 이루는 화려한 불꽃이었다. 하지만 성지를 잃은 후 유럽이 교회가 지배하던 정신세계에서 영토 국가 중심의 새로운 세속적 체제로 옮아가는 혼란 속에서, 기사단은 구시대의 잔상을 붙들고 있는 돈키호테 같은 존재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도스 공방전>울 번역한 최은석은 몰타의 기사단을 “몰락하는 계급의 마지막 생존자”라 불렀는데, 참으로 그럴 듯한 지적이다.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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