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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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나는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다. 바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이다. 2005년 늦가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들떠 있던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진실의 문이 열렸다. 이전에 언론들은 앞을 다퉈 한국인의 젓가락질 기술이 정밀한 세포 분리와 배양의 원천 기술이라고 한껏 치켜 세웠다.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과 실망은 대단했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별세한 이어령 박사는 유작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제2권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다룬 ‘너 누구니’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력을 과시한다.

저자는 201쪽에서 한국인의 젓가락질 DNA를 과대 포장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간명하게 바로 잡아 준다. 이런 행태를 생물학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일종의 우생학으로 본다. 과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한 대독일제국의 총통 히틀러와 나치당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떠올려 보면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전통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만 지나친 국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60년 이상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저작을 남긴 이어령 박사의 이야기 보따리를 경험할 수 있는 꼬부랑 고개 넘기를 시작해 보자.

이 책의 목차는 12개의 고개와 서른 개의 꼬부랑길로 구성되어 있다. 신작로와 포장된 넓은 길에 익숙한 세대는 꼬부랑길을 걸어본 경험이 드물 터다. 어릴 적 할머니랑 걸었던 꼬부랑길은 마주 오는 지겟꾼과 교차하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가 가득한 길. 여름이면 강렬한 태양열에 달궈지는 검은 아스팔트 길과 차원이 다르다. 이어령 박사의 젓가락 강의를 한 고개씩 넘어가다 보면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는 데는 분명 경험치와 공감대가 겹치기 때문일 터다. 적어도 젓가락질에는 세대간 격차가 덜하다. 한국인의 식생활이 밥상머리 교육에서 대를 이어 전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저자의 통찰은 단순히 식사 도구로 젓가락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 몸에서 손에 가장 많은 뼈와 관절이 위치할 만큼 손은 정밀한 조작이 가능하다. 저자는 젓가락을 손가락의 연장으로 본다. 그래서 손가락의 ‘가락’이 ‘저+가락’이 되었다. 한국 땅에 태어난 우리는 말과 함께 젓가락질을 야단 맞아 가며 배웠다. 아마도 부모와 자녀 간의 밥상 머리 교육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당연한 것처럼 여긴 젓가락에서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끄집어 내서 한 권의 책을 써낸 고 이어령 박사의 통찰에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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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우리말에 연장이란 말이 있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연장을 다른 말로 하면 도구인데, '도구는 신체의 연장' 이다'라는 말도 있다. 연장이란 말 속에 '도구'라는 말과 신체의 연장'이라는 말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으로 미묘하고 암시적인 의미가 담긴 말이다.
인간의 도구는 모두가 몸을 연장, 확장'한 것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쓴 도구는 신체 가운데서도 손을 연장한 것이다. 인간이 두 발로 일어서는 순간 앞의 두 발이(다리가) 손이 되고, 몸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의 손은 스스로 독립적인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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