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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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개나리꽃인듯 손에 쥔 신간 표지가 단정하다. 시동이 고삐를 쥔 말을 검은 말을 탄 선비가 늘어진 버들가지를 바라보는 그림이 좌하단을 채우고 있다.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상자라는 부제를 읽지 않아도 학고재란 출판사 이름 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다루는지 어림짐작이 된다.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저자 이종수는 우리 그림을 읽어내는 탁월한 안목을 연마했다.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 그 시대 배경은 무엇인지, 화풍과 계보를 찬찬히 설명해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덕수궁 근처 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 종종 찾곤 했다. 도슨트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시간에 맞추면 그림을 보고 읽어내는 깊이가 다르다는 경험을 자주 했다. 반면 우리 조상들이 그린 그림을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에 읽은 고 오주석 선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서 눈이 열리는 경험을 했었다. 역시 그림이든 음악이든 아는 만큼, 생각의 넓이와 깊이만큼 받아 들이고 이해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길라잡이로 나선 저자 이종수의 발길과 손길을 따라 가다 보면 눈에 익히 안다고 생각하는 그림도 제법 보인다. 솔직히 처음 보는 그림이 더 많았다. 병아리를 채가는 고양이를 쫓는 남자와 아내, 어미닭의 혼비백산하는 찰나를 그려낸 ‘야묘도추’는 잘 아는 듯했으나, 저자의 설명을 곁들이다 보니 그동안 수박 겉핥기로, 주마간산하는 것처럼 대충 봤음을 고백한다. 봄나들이를 나선 병아리떼를 낚아채는 찰나의 순간을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활약한 화가 김득신은 잘 포착해 냈다. 정지된 활동사진 같다. 저자 이종수는 ‘이 순간을 놓지지 마’하고 코치를 한다. 김득신이 살던 시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망건을 쓴 남자와 치마, 저고리를 입은 부인네. 자리를 짜던 틀과 나무로 만든 낮은 마루 등등. 한 장의 그림으로 19세기 초 조선의 어느 마을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지난 달에 수원 화성을 다녀왔는데 ‘화성행행도병풍’(212p)를 보고 나니 1795년 정조 임금의 8일간의 화성행궁 행차 장면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당시 최첨단의 철옹성을 완공하고 그 안에 작은 행궁까지 짓고서 죽은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또한 국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장엄한 행차를 기획하고 추진한 모든 과정이 병풍 안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저지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국왕의 행차 모습을 큰 길에 나와서 구경하는 양반들과 평민들의 모습까지 한사람 한사람 그려진 것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책에 담긴 작은 도판으로는 그림 보는 맛이 덜하다. 아무리 돋보기를 들이대도 말이다. 원본이 소장된 **미술관에 찾아갈 목표가 생겼다.

이렇듯 저자 이종수가 소개하는 26개의 보물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는-책으로 먼저 보고, 원본을 직접 찾아가 보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물론 일본국에 넘어간 작품들 또한 여럿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개인 소장품의 경우 대면하기 쉽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을 안목을 길러야 함은 꼭 그림 보는 눈 뿐만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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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화가에게도 붓을 들어야 할 순간이 있듯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그림이 전하는 즐거움. 계절이 주는 기쁨도 찰나처럼 스쳐 지나버릴지 모른다. 지금 내 마음 두드리는 그림 한 점 있다면 첫걸음이 되기 충분하다. 보물찾기를 시작해 보자. 이 봄 지나기 전에 길을 나서보는 거다. (10p)

그의 화면, 변해가는 시대가 엿보이기도 한다. 호취도는 보통 매 한 마리를 우뚝 세워 제왕다운 기상을 강조하곤 한다. 그런데 장승업의 그림은 두 마리 매가 세상을 나누어 가진 형국이다. 오원의 그림 속에 불어온 시대의 바람, 그는 바다 건너의 색채와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붓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화면도 시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설렘으로 마음 졸이게 한다.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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