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전쟁 -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
전주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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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2대 대선이 끝났다. 아직 승패의 여운이 남아있는 듯하다. 여러 이슈 중에 세금과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 대결에 관심이 많았다. 과세를 통한 부동산 안정을 도모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주장도 들었다. 복지 정책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기본소득 지급 방안이다. 말 그대로 현금을 나눠주겠다는 것인데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지 주장은 있는데 근거가 흐릿해 보인다. 여튼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솔깃한 제목의 신간을 발견했다.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이란 부제를 단 ‘재정전쟁’이 그것이다.

저자 전주성은 경재학을 전공한 박사로 대학과 정부 자문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2년 넘게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란 위기 가운데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는 2022년에 세금과 복지, 정부 지출 등을 둘러싼 재정 논쟁의 필요성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설명한다. 역대로 진보와 보수를 표방한 정부들은 각기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는 세금과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우리 현대사는 이런 많은 시행착오를 축적하면서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기후변화와 재해, 심화되는 양극화, 계층과 세대, 지역 간의 갈등은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때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논쟁이 있었다. 저자의 답은 명료하다. 성장과 분배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장 없는 분배 없고, 적정한 수준의 보편적 복지가 없이 인구 감소 등의 위기를 막을 수 없기에 분배를 배제한 성장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해 종부세 등 보유세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시장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라 봤다.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세 제도를 운영하는 우리나라의 특성 상 아파트 등의 부동산 과세를 높일 때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하게 된다.

결국 복지를 위해서는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보유세 같은 직접세와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 모두 조세저항의 여지가 있다. 관건은 납세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과세를 수용하는가인데 저자는 정부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내가 낸 세금이 사회 인프라와 복지를 위해 누수(?) 없이 사용된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조세와 재정 정책 등 나라 살림은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다.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며,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냉철한 계획 아래 추진해야 한다. 다소 딱딱한 내용도 있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책읽기였다. 가정 경제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도 곳간 관리하기에 달려 있다.

국민연금과 군인, 공무원 연금도 극심한 고령화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분배와 복지를 줄이면 사회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 쉽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재정 정책에 정답은 없다. 다만 사익을 버리고 최선을 위한 대책을 사회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 아래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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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앞으로의 복지 논쟁이나 복지 경쟁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약속이 지속 가능한 복지의 차원에서 신뢰가 가느냐다. (60p)

결국 납세자 주권의 궁극적 표현 방식은 선거가 될 것이다. 어차피 계층이나 이념에 따라 조세에 대한 견해가 갈린다면 집합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세금을 좋아하는 유권자는 드물기 때문에 선거 때 증세 논의가 나오기는 어렵다. (124p)

미국과 영국에서 기업의 독립성과 주주의 권한이 본격적으로 강화된 것은 레이건과 대처가 집권하는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정치 이념의 보수화에 따른 국가 개입의 축소라는 시대 조류를 바탕으로 주주의 권익에 대한 인식이 커졌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주주 보호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공익을 강조하는 여론 단체의 목소리 역시 커지며 환경보호나 인종, 지역 간 배분 등 사회적 성격의 규제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 국가들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답은 사전적으로 정해졌다기보다 사후적으로 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187p)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좀 더 시급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재정 규율이다. 요즘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정부의 부채 비율이 빠르게 느는 것 자체를 시비 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빚을 지고 난 다음도 생각해야 한다. 평소에는 재정 규율을 유지하며 여력을 비축해야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불가피하게 적자를 해야하는 경우 짧은 기간에 그치는 것이 좋다. 적자가 구조적 성격을 띠며 장기간 지속되면 경제 안정이 흔들리고, 장기 투자가 소홀해지며,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228p)

요컨대 성장과 분배의 가치를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라인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은 오류에 가깝다. 어차피 현실 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보수와 진보 어느 진영도 의식적으로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기 어렵고, 설사 구조적 차원의 제도 변화를 꾀하려 해도 시대 조류라는 더 큰 힘에 의해 압도당하기 쉽다. 결국 성장이건 분배건 주어진 정책 수단으로 최대한 성과를 내는 유능한 정부가 자신의 이념 성향과 무관하게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 (236p)

하지만 우리는 있는 제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의 설계가 아닌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개혁에는 승자와 패자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합리적인 대안이라도 정치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정책 능력을 갖춘 세력만이 ‘재정전쟁’의 승자로 남을 것이다.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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