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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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 장동훈은 단순히 명화를 보여주고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설명해 주는데서 머무르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끝낼 수 없는 대화인 이유를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화의 상대는 바로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일 수도 있고, 그 화가가 살았던 시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2차원의 차가운 종이에 인쇄된 그림으로는 화가가 그린 그림의 질감을 온전히 느끼는데는 한계가 있다.

끝낼 수 없는 대화. 이 책을 큰 기대 없이 읽어가다가-왜냐면 저자가 널리 알려진 분이 아니라서- 164쪽에서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췄다. 미술 작품에 나름 관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처음 접하는 그림이었다. 그간 너무 명작 위주로 편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도스토옙스키도 머나먼 여행을 해서 스위스 바젤 미술관을 찾았다고 한다. 한스 홀바인의 이 그림의 존재를 안 것만으로도 이번 책 읽기는 횡재(!)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된 신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불경스러울 정도로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키워드는 거룩함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흔히 세상은 속되기 때문에 거룩한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속의 구분은 종교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을 방해한 측면이 있다. 현직 신부인 저자는 사제복을 입은 인문학자로 불린다. 그는 종교와 사회가 이분법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무엇을 특유의 세심한 통찰로 설명해 나간다. 때문에 그가 소개하는 그림들은 일련의 인문서적과 결이 조금 달랐다. 평소 접하기 힘든 미술가와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었다.

두번째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그림은 183쪽에 있다. 화가 김봉준의 1986년작 ‘지하철’이란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시간에 새겨 넣은 그림’이라 평가했다.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2차원의 화폭에 담아낸 이 작품의 창작 시점이 1986년이란 것에 눈길이 갔다.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2년 뒤에 열릴 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시절이었다.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박제된 그 순간은 몹시 불편하면서도 정겹다. 왜냐면 장삼이사 같은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이기에.

생각보다 깊이가 있는 책읽기에 책장 넘기는 것이 쉽지 않다. 겨우 일독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 일단 쉬었다가 지력을 키운 다음에 재독, 삼독을 두고두고 해야겠다는 것.

*** ***

그에게 이 인간의 덩어리는 이제 ‘무리’가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 새로운 계급이었다. 현실의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고 남루한지는 중요치 않다. 어처피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분기점만이 아니라 그들이 성취해야 할 어떤 이상적 긍지였기 때문이다. 동이 터오듯 어두움을 헤치고 빛으로 걸어 나온 저 행진은 지금쯤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64p)

세상도 교회도 또 한번의 ‘거대한 전환’ 앞에 서 있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혼미한 내일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팬데믹 선언 직후 곳곳에서 피어나던 인문학적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전염병의 ‘종식’과 ‘박멸’만이 모든 담론을 집어삼킨 듯하다. ‘어떻게’라는 방법이 ‘어떤 세상’이라는 철학을 압도한 모양새다. 이대로 ‘보건’이 ‘보안’으로, 과학이 종교로, 인간이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로, 목숨이 무심한 통계수치로 쪼그라들어도 그만일 것일까.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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