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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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없다’라고 말한다. 만약 그때 이렇게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목들이 매우 많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니, 거창하게 국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에 적용해 봐도 그러하다. 과거에 했던 선택과 결정의 결과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한 사람의 결정도 그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터인데, 하물며 국가 지도자의 선택과 결정은 파장이 엄청나다. 그래서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많은 역량을 투입한다. 우리도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로라 하는 후보들의 진면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다. 옥석을 가리기 위해.

쌀쌀해진 10월 마지막 밤에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1독을 마쳤다. 강남역에서 코엑스까지 이어진 테헤란로를 자주 지나 다녔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연결점을 미처 생각하진 않았다. 더구나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와의 사랑이라니. 그러나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조금씩 작가의 상상에 공감해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현, 이란)의 옛 문헌과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따라 신라까지 교통했던 가설에 점차 힘이 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무조건 외웠던 처용가의 주인공이 아랍 사람(?)이라고 하는 말에 과연 그럴까 했던 기억이 새롭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방송국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주인공과 재야 역사학자인 선배가 고고학적 유물과 문헌을 중심으로 고대 페르시아와 당나라, 신라의 관계를 추정해 간다. 거기에 신흥 강자 아랍 이슬람 세력에 의해 나라를 잃은 페르시아 왕자가 어떻게 신라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득력 있게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신라국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는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을 낳는다. 부자는 페르시아 제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사마르칸트 고원으로 떠난다. 이후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의 탈레스 전투 등 실제 역사 가운데 개연성 있는 작가의 추정이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책을 읽어가며 주인공과 선배 학자가 나누는 대화 중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아랍이 아닌 페르시아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랍과 페르시아는 분명 다른데, 무관심과 무지 가운데 잘못 알고 있었다. 마치 유럽 사람들이 동아시아의 중국인과 한국인을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것과 같다.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이란 말을 자주 썼는데 이것 또한 잘못됐다.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에는 수천개의 언어를 쓰는 수백개의 다른 민족들이 있다. 제국주의 시절 획일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종족간 갈등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그간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너무나 쉽게 말했던 것이 부끄럽다.

국민학교 때 부른 노래 중에 단군의 자손이란 가사는 아직도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고 거의 세뇌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를 알아갈수록 겸손을 배우게 된다.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무지와 편견, 선입견을 깨게 하는 마중물과 같다. 관심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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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 그리스 로마의 역사는 배우지만 페르시아의 역사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페르시아인들이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고, 로마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로마보다도 큰 영토를 다스렸으며 유럽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에도, 백인 우월의 역사관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되어 왔던 것이다.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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