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매혹한 돌 - 주얼리의 황금시대 아르누보, 벨에포크, 아르데코 그리고 현재 윤성원의 보석 & 주얼리 문화사 2
윤성원 지음 / 모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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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매혹한 돌. 윤성워 저. 민요사 간. 2021.7.15.




사실 이 책 ‘세계를 매혹한 돌’을 읽기 전까지는 주얼리에 대한 상식이나 관심이 거의 없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주얼리 자체가 아닌 시대별 역사와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일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문외한인 내가 봐도 눈길을 사로잡는 주얼리 도판은 정말 매혹 그 자체다. 차가운 사진만 봐도 이러한데 은은한 조명 아래서 빛을 반사해 내는 주얼리는 ‘선택받은 소수에게’ 만족과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었을 것이다.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소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연출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가치있으려면 희소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권력과 돈도 독점할 때 그러하고, 주얼리 또한 지표에서 매우 소량만 발견되기 때문에 값이 뛴다. 저자 윤성원 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최고의 주얼리로 여전히 각광 받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고가의 가격대를 유지하는데는 희소성 뿐만 아니라 거대 기업의 철저한 생산량 및 유통량의 통제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광고 카피도 그 기업의 작품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면 작지만 비싼 주얼리를 선물해야 한다는 세뇌(?)를 집중 실시했고, 적중했다. 사람의 독점 소유욕구를 간파한 때문으로 보인다.

다이아몬드의 공급 독점 문제는 기업의 독과점에 그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정밀 무기 개발 과정에서 고강도의 절삭력을 가진 다이아몬드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한다. 히틀러의 독일과 영국, 미국 등의 다이아몬드 확보를 위한 물밑 경쟁의 역사를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원석을 가공하여 주얼리로 완성하는데는 장인의 손길을 수십만 번 거쳐야 한다고 한다. 이런 기술력을 가진 주얼리 장인들이 전쟁 시기에는 고도의 정밀성을 가진 무기 개발 현장에 투입되었다. 수정체를 연마하여 전파 스펙트럼 분석기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 독일과 미국에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세계를 매혹한 돌’은 전작 ‘세계를 움직인 돌’(2020년)에 이어 주얼리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세계사의 지배 권력의 변천사를 잘 설명해 준다. 왕실과 귀족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 값비싼 주얼리를 소장하려고 한 이유도 간명하게 설명한다. 평상시에는 연회나 중요한 행사 때 착장을 하여 자신과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고, 전쟁 등의 유사 시 피난을 할 때 크기가 작아 휴대가 편하고, 환금성 또한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권력과 부를 쟁취한 자들은 희소성 있는 주얼리를 소장하고자 했다. 이 책을 읽는 묘미는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미술작품 속의 인물이나 사진에 찍힌 유명인사가 착장한 주얼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자의 설명과 함께 보는 것이다. 마치 미술관 도슨트와 같이 걷는 느낌이다.

저자가 이끄는 주얼리로 읽는 역사와 문화. 사람과 사랑을 얻기 위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최상의 주얼리 제작을 의뢰하는 유력자들의 심리. 허영과 사치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치열한 경쟁 구조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이번에 세계를 매혹한 돌을 읽으면서 몇 수 배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얼리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고, 깊은 땅 속 어느 곳에선 가족의 생계를 위한 목숨을 거는 광부들의 거친 호흡이 공존할 터. 저나는 분명히 말한다. “잠시 가질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주얼리 소장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계 역사와 인간에 대한 통찰을 구한다면 장서로 삼을만하다. 전작 ‘세계를 움직이는 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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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명의 통로인 목 한가운데에 주얼리를 착용하면 특별한 힘이 생긴다고 믿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과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보호와 권력의 상징으로 목 한가운데를 끊임없이 장식했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왕족들의 초상화에서 다수의 짧은 목걸이를 만날 수 있다. (52p)

19세기는 산업주의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의 상류층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때다. 동시에 교육을 받고 사회 활동을 개시한 여성들이 그간 억눌려온 권리와 욕망을 주장하며 각성하기 시작했다. “아담을 돕기 위해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는 오랜 시간 여성의 인격적인 존엄성을 억압했다. 하지만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산업 전반에 뛰어든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받은 정당한 대가조차 남편의 재산으로 귀속되는 불공평한 사회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남녀평등과 참정권에 눈을 뜬다.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속박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기 위해 적극적인 투쟁에 나섰다. (78P)

이렇듯 합리적인 아방가르드 의상과 어울리며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빈 공방의 주얼리에는 '자유'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깔려 있었다. 빈의 여성들은 구시대의 장신구와 꽉 끼는 코르셋을 동시에 벗어 던지며 자신들을 옮아매는 사회적인 구속에 저항했다. 헐렁한 드레스 위에 이 '새로운' 주얼리를 착용한 여자들은 당당히 투표권을 주장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아르누보는 나라마다 제각각 다르게 변주된 모습으로 나타나 대담하고 농밀하게 당대의 질서를 흔들며 '나쁜 여자들'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97p)

독일 제국이 탄생한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에서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과거를 뒤로하고 전쟁과 내전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이어졌다. 동시에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유럽의 생산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철도, 자동차, 여객선의 등장은 태어난 곳에서 평생 붙박여 살던 일반 대중의 생활 반경을 순식간에 확장했으며, 전기와 전화 같은 신문물은 유례없이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선사했다. 밤거리는 더 이상 어둡지 않았고, 아무리 멀어도 옆에서 대화하듯 지인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진정 '아름다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11p)

왕실이 귀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임을 깨달은 국왕 부부는 희생과 의무에 기반을 둔 '정감 있는' 입헌군주제를 표방했다. 군인들을 직접 만나 위로했고 극빈층을 방문하고 해외 순방에 힘쓰며 윈저를 탄탄한 글로벌 브랜드로 올려놓았다. 그 모든 순간 조지 5세의 곁에는 메리 왕비가 있었다. 일찍이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영국 왕실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메리 왕비는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재정립하고, 대중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며 남편의 국정 운영에 적극 내조했다. 전쟁으로 수많은 왕실이 문을 닫았지만, 전쟁을 뚫고 탄생한 이 윈저 가문은 박수를 받았다. (180p)

한편 아르데코는 파리와 뉴욕이라는 당대의 가장 화려한 두 도시가 예술적으로 활발히 교류한 시대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곧바로 대호황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해진 사회는 이민자들에게 자유의 횃불을 안겨준 '아메리칸 드림'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이때 인생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젊은이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자유'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파리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프랑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미국인들이 파리에서 생활하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절망과 허무에 허덕이다가 미국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지식층과 예술파 청년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렀다. (189p)

재즈가 유행한 광란의 1920년대는 빈부 격차, 생산의 자동화로 인한 실업 문제, 과잉 생산 등 그간 축적된 각종 사회적 모순들이 폭발하면서 주식시장의 폭락과 함께 막을 내렸다. 1929년 10월 뉴욕에서 촉발된 대공황은 다시 한 번 긴장과 긴축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고달픈 시간 속에서도 아르데코 주얼러들의 혁신성은 꺾이지 않았다. 디자이너들은 이전 시대보다 더욱 부피가 크고 독특한 주얼리를 만들어냈다. (257p)

연이은 대공습은 두 나라의 주얼리 업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나치의 공습으로 영국의 주요 주얼리 생산지인 버밍엄의 생산량이 대폭 감소했고, 영국의 보복 공습으로 독일의 주얼리 제작도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런던의 고급 보석상들은 부랴부랴 주얼리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럼에도 전쟁은 연인들 사이에 애틋한 감정을 더욱 자극해 전쟁 기간에도 약혼반지의 수요는 줄지 않았다. (297p)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이탈리아가 1950년대 말에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마셜플랜(미국이 1947년부터 1951년까지 서유럽 16개 나라에 행한 대외원조 계획)을 밑천 삼아 십여 년간 경제 부흥에 전력투구한 결과였다. 파시즘과 세계대전으로 도덕적, 물질적 황폐화를 경험한 이탈리아인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산업, 예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창조적 DNA와 저력을 입증을 하고자 노력헀다. 특히 로마의 세네시타 스튜디오는 ‘로마의 할리우드’로 불리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턴, 브리지트 바르도나 제인 맨스필드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끌어모았다. (328-329p)

하지만 냉정한 흐름 속에서도 새로운 세대들은 지나치게 세속적인 것을 배척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어느덧 주얼리는 부의 상징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의 뉴욕은 가능성의 도시이기도 했다. 당면한 삶은 고달팠지만 이런 현실을 수긍하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에게 뉴욕은 새로운 에너지가 넘치는 신나고 자유로운 도시였다. 젊은이들은 마치 내일이란 없는 듯 오늘을 즐기며 살았다. 뉴욕은 지극히 '현재의 도시'였다.
주얼리를 향한 여성들의 태도도 한층 진화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주얼리를 구매하면서 더욱 섹시할 권리를 획득했다고나 할까? (3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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