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 코네티컷 살인 사건의 비밀
루앤 라이스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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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루앤 라이스 장편소설. 대원씨아이 간. 2021.7.19.

500쪽이 넘는 두툼함이 후텁지근한 무더위와 한 판 씨름을 할 것 같은 책이다. 저자 루엔 라이스는 미합중국 코네디컷 주에서 1995년에 출생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자연과 바다, 사랑과 가족을 다뤘다. 2020년작 '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또한 가족과 사랑, 욕망과 배신을 다룬다. 소설을 읽다가 컴퓨터에 구글 어스를 다시 설치했다. 배경이 되는 코네티컷 여러 곳의 좌표를 확인하고, 해변과 요트 사진을 서칭했다.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자연 풍광을 가진 곳이기에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베테랑 형사가 가족과 주변인물들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여느 추리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나 미스 마플 같은 예리하고 치밀한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보통의 추리 소설은 사건 현장의 단서와 주변인물들의 언행과 행적을 추적하는 탐정(형사)의 시각을 따라가면서 독자도 함께 누가 범인일까 하며 긴장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본격 수사물이 아닌 이유를 519쪽에 수록된 저자의 감사의 글에서 비로소 알았다. 통찰력과 전문지식을 코네디컷 주립경찰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살인사건과 수사 과정을 다루지만 이 소설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유서깊은 건물에는 지하실과 2층 다락방이 있다. 아파트와 빌라로 도배가 된 21세기의 한국의 주거 문화에선 보기 힘들다. 지하실과 다락방엔 등장인물들의 비밀이 담겨진 상자와 아픈 이야기가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비밀의 공간이 없어진 아파트에 사는 우리네 일상과 비교를 해 봤다. 효율성을 강조한 규격화와 획일화로 물질적 성장은 이뤄냈지만 몰개성화가 촉진되진 않았는지?

그 비밀의 공간에서 주인공-누구를 주인공으로 할 지는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과 3명의 소녀들은 피의 서약을 한다. 서로의 비밀과 우정을 지키기로.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우여곡절을 겪고, 각자 결혼 또는 비혼의 선택을 한 이후 겉으로는 미소로 대하지만 속으로는 균열이 가는 그들의 관계. 어쩌면 이 방대한 소설이 다룬 사건은 우리나라의 여느 막장 드라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선 상대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감출 일이 생길 때 그것이 작든 크든 불행은 시작된다. 무더위를 잊을만큼 서늘한 소설 읽기였다.



 
*****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 몇 개를 열었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서재로 들어갔다. 코너는 책상 저 위쪽 벽을 올려다보았다. 삶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예전 사건 자료들을 꽂아 둔 곳이었다. 해결한 범죄 사건들뿐 아니라 미해결 사건들에 관한 기사들도 있었다. 경찰이었던 코너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눈팔지 마라.” 코너에게는 그 말이 피해자를 기억하고 나쁜 놈을 잡으라는 뜻으로 들렸다. 코너는 커피 잔을 손에 든 채 책상 의자에 등을 기댔다. (95p)

“아내를 죽였나요?”
“아뇨. 절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진심으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코너는 ‘절대’, ‘진심으로’라는 두 단어를 노트에 기록했다. 유죄로 입증된 용의자들은 부사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야 자신의 말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너는 또한 ‘제대로 된 수사’라고 강조하는 부분도 유념해서 들었다. 자신이 이 방에서 가장 영리하고 똑똑한 천재라고 영역 표시를 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코너는 그 표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152p)

그림 속 여자는 베스였다. 케이트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화가는 동생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영혼을 잘 포착해 냈다. 친밀함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누가 그렸을까? 누가 베스에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을까? (중략) 케이트는 토너에게 상자 속 내용물을 보여 줘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전에 동생의 비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내야 했다. 케이트는 코너 몰래 그림과 열쇠, 종이를 재킷 주머니에 넣고는 동생 자리를 살펴보는 척 했다. (184p)

코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케이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케이트와 베스, 두 자매의 소원, 두 자매의 할머니, 케이트의 육뷴의, 천문항법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코너는 좀 전에 형이 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피트와 마틴의 접점은 별이 아닐까?(331p)

베스가 왜 자기 그림을 훔쳤을까? 피트 짓이라면 말이 되지만 베스가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 그림을 훔쳐서 뭘 하려고 했을까? 몇 주 동안 이어진 수사에서 <달빛>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3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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