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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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단숨에 읽은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소설. 문명 1-2권. 전작 '고양이'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예의 간결한 번역은 전미연 님의 손을 거쳤다. 베르나르의 소설은 쉽게 읽힌다. 그러나 깊이를 제대로 느끼려면 책 속의 백과사전을 읽고 나서 현실의 사전을 찾아보는 수고로운 과정을 더해야 한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12권>은 소설의 맥을 끊으면서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조금만 신경을 써서 보면 절대와 상대가 대립하고 양립하는 모순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절묘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문명을 읽다말고 세 인물에 대한 자료를 따로 찾아보았다. 피타고라스, 티무르, 바스테트. 이들은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고양이와 쥐에게 붙여진 이름이지만 역사 속의 그들의 위상은 시대를 풍미한 이름이었다.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도 그 이름만은 기억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피타고라스(BC.580-500).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을 복원하겠다는 꿈과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는 야망을 가졌던 티무르(1336-1405)는 중앙아시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제국을 일궈냈다. 그는 가혹한 정복자의 악명을 떨쳤다. 바스테트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숭배하던 여신의 이름이다. 태양신 라의 딸인 바스테트는 고양이 머리가 달린 인간 여인의 모습과 평범한 고양이 모습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또한 바스테트는 음악과 성적 쾌락,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베르나르는 실존인물과 신화적 존재의 특징들을 소설 캐릭터에게 절묘하게 투영한다. 그렇기에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각 챕터마다 예의 백과사전이 마치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처럼 등장한다. 이야기가 끊기는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가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한 권 더 읽은 것 같다. 베르베르가 롱런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의 소설은 단지 이야기를 풀어나갈 뿐 아니라 인간, 문명, 종교, 철학, 미술, 심리, 과학 등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의 탑을 능수능란하게, 그러나 쉽고 간결하게 진열해 놓는다. 그렇기에 그의 독자들은 일거양득한 느낌을 받는다. 꿩도 먹고 알도 먹은 느낌 아닐까? 


요즘 반려동물과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존감이 강한 암컷 고양이다. 그는 자신이 집사를 거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오늘부터 그 분(?)들의 눈빛을 잘 살펴볼 일이다. 소설 속에서 인간은 멸종의 위기에 직면한 약한 종으로 묘사된다. 반면 그간 인간의 유익을 위해 희생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여러 동물들이 새로운 세상-인간이 지배하는 지구가 아닌-의 주역으로 급부상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끝을 모르고 성장과 발전, 보존보다는 개발이란 폭주를 멈추지 않는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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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정 표현이라고 받아들인 나탈리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쓰다듬는다. 
자기가 아니라 내 긴장을 풀기 위해 이런다는 걸 모르네. 자기가 나한테는 인형 같은 존재라는 걸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하나...
(제1권 119p)


저 옹졸한 뇌로 과연 이 명백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선언하듯 덧붙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요. 날 믿어요. 모든 게 잘될 거예요. 내가 다 책임질게요"
유머와 예술과 사랑을 깨달은 내가 당신들을 묘류의 세상으로 인도할게요.
(제2권 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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