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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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인사청문회를 집중해서 봤다. 요즘은 그냥 넘긴다. 질책하는 사람이나 해명하는 사람 얼굴 보는 일이 쉽지 않다. 내가 저 자리에 앉아있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든 상관없다. 나는 부끄럼이 없는가.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낯짝에 철판을 깔 수 있는가 없는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책임 연구원인 저자 이창일의 신간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은 부끄러움이 사라진 사회 현상과 이유를 역사와 종교, 철학, 사상, 언어, 정신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설명해 준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무엇인가. 신체와 감정은 분리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사이코패스(또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반사회적 인물을 언론이나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감정을 통제하여 상대방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주변인들이 평범하고 자상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진술하게 된다. 이 뿐 아니다. 국가나 조직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언행도 용납이 되고,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도자를 무능하다고 지탄하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인간이 수치를 느끼는 여러 변수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과학, 심리, 종교, 문화, 인종에 걸쳐 다양한 양태와 변이를 갖고 있다. 인간은 보통의 동물들보다 매우 발전된 수준의 수치라는 감각을 갖고 있다.  저자는 수치를 아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행위가 처세와 생존의 일환임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부끄러움의 철학, 부끄러움의 미학. 이런 단어가 사라지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뻔뻔할 줄 아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 받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심경 변화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노파를 죽은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가  매춘부 소냐를 만난 이후 심적 변곡점을 맞게 된다. 비로서 수치와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인정한다. 격동의 시대에 사람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하려 한다. 이것이 개인을 넘어서 국가 단위로 이뤄지면 전쟁과 같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그럼에도 국익이란 이름 아래 미화되고 수치스런 진실을 감춰진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은 독자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중국의 맹자는 수오지심이 없으면 비인이라고 했다고 한다.(259p). 비인을 직역하면 ‘사람이 아니다’ 정도가 된다. 부끄러움과 혐오의 감정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겉모양은 사람이되,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저자는 이런 본질적 감정의 결여가 태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 교육과 경험의 결과인지 여러 연구 결과를 아우르며 설명을 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사람은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태생이나 환경 탓으로 자신의 현재 모습을 합리화 시키는 것은 뭔가 부족해 보이는 이유이다.

결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읽기 시작하면 그 묵직함에 비해 빨려 드는 매력이 있다.
 

수치는 두 얼굴을 하고서 그림자 속에 숨어 있지만, 어느 얼굴을 들이밀지 모른다 하나는 파멸로 이끄는 얼굴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처지가 오히려 위험하다는 경고와 함께 분심을 돋우어 앞으로 나가게 하는 얼굴이다. 그런 뜻에서 그림자는 모든 사악함과 추함의 총체가 되지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지금보다 더 위에 있는 자신으로 이끄는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193p)

신이 항상 있으니 어떻게 피할 것인가? 신은 숨겨진 곳에 계시지만 늘 나와 함께 있으니 이보다 더 드러난 것이 있을까? 작은 일조차 모두 드러난다. 내면 속의 아무리 작은 감정도 생각도 모두 드러난다. 그러니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289p)

현재를 사는 우리도 시인 윤동주가 남긴 고뇌의 길을 걷는다. 우리 시대는 그때보다 여건이 훨씬 좋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줄지 않는다. 그의 밈이 없이니 가라지가 천지를 덮을 것이다. 시인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범람하는 시류를 버텨주는 지주가 되었다. (3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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