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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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내게 러시아는 세계사 교과서에 잠깐 언급되는 실존하지 않은 나라였다.  고등학교 때 설레는 마음으로 밤 새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부활의 배경이 되었던 나라와 사람들에 대한  동시대적 공감은 없었다. 왜냐면 당시는 쏘련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거대한 악의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떄문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이런 이미지는 지금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리 개방과 교류를 해도 헐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된 공포스런 인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부모와 자식, 연인, 스승과 제자들이 아웅다웅 살고 있음을 잊곤 한다. 체제나 사상, 종교의 다름으로 인해 일단은 배척과 혐오를 심었던 시절을 살았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지난 12월의 마지막 주간에 읽은 백민석 작가-소설가, 사진작가?-의 신간 ‘러시아의 시민들’은 오래 묵은 기름때를 벗겨내는 듯한 책읽기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무심한 듯 여행길의 현장에서 스냅샷으로 찍은 일상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고, 러시아 사람들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활자보다 사진이 더 많은 것도 마음에 든다. 사진이 주인공이고 텍스트는 그저 거들 뿐이다.  길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마음을 담은 미소를 보내 준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자연스런 포즈를 잡아 준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 한 컷만 찍어야 한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경계심을 드러낸다고.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저자는 모두에서 묻는다. 당신은 여행자인가? 아니면 관광객인가? 이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싶었다. 옛날에는 관광이란 개념이 없었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산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는 힘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여정을 여행이라 했다. 근현대 들어서 여가와 오락을 위해 쾌적한 교통수단과 숙소, 식사 등을 구비한 패키지 관광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러시아 여정이 관광이 아닌 여행이길 추구한다. 여행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삶에 공감, 공유하는 과정이라 한다면, 관광객은 그저 풍광과 현지 음식을 즐기다 가는 사람일 수 있다. 한마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관광객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지나온 동네와 사람들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과 같은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고단한 인생 여정의 목마름을 물 한 모금을 나눠 마시는 여행자의 삶을 실천했는지 돌아보았다.

책 읽는 동안 상트페테부르크, 시베리아 횡단 열차, 도스토옙스키의 흔적들, 모스크바, 길거리와 시장통을 섭렵하며 저자의 발이 이끄는대로 현대 러시아를 걸어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얼을 볼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쉼과 그간 쌓였던 편견과 선입견이란 두 마리의 개(견)를 조금이나마 몰아낼 수 있다. 이 책은 먼저 보고 나중에 천천히 읽어야 제 맛이 우러날 것 같이 몇 달 묵혀 두었다가 2독을 시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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