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살다 - 광야의 삶을 버티고 견디고 이겨 내는 방법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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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보다 이번 여름은 후텁지근했다. 에어컨 없이 살았던 옛날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무더위도 어느 순간 몰려든 가을을 부르는 서늘한 바람에 주춤 물러섰다. 이 즈음에 읽은 책. 광야를 살다. 나는 광야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 낮에는 4~50도가 넘는 무더위, 밤에는 영하의 기온이라는데 아직 그건 곳에 가보질 않아서 느낌이 오질 않는다. 그런 기후 조건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다행히 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름이 고온다습으로 후텁지근한 것이 특징인데 그나마 온도가 30도 중반이니까 견딜만할 것이다. 만약 기온이 4~50도에 육박한데다 습하기까지 하면 그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이진희 목사는 성서의 배경이 되는 곳은 다년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책을 냈다. 이번에 나온 ‘광야를 살다’는 부제처럼 광야의 삶을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는 방법을 13장에 걸쳐 알려 준다. 그 주인공은 광야로 몰린 개인일 수도 있고, 민족 전체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동안 성서를 읽을 때 스토리 위주로 속독을 하며 분량 채우기에 급급했었다. 창세기를 정독하면서 이 책을 같이 읽으니 그간 내가 얼마나 주마간산 격으로 성경을 보았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광야를 살다’는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갔던 고대 근동의 자연환경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유목민의 삶의 여정을 직관적으로 보여 주었다. 하나님이 척박한 땅 팔레스틴을 선택한 이유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광야를 겪지 않는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부모나,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다. 그 삶 가운데는 경외심이 없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겪은 광야 여정을 보니 막연하게 40년 간 광야 생활을 했다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경계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 않고서도 견딜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 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지도자를, 이스라엘 민족을 혹독하게 연단시킨다. 도무지 하늘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가장 척박한 환경으로 이끄신다. 그곳이 성경에 기록된 광야들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목축을 하려 해도 비가 내려야 풀이 자라니 하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하늘을 바라보는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또한 광야의 삶은 아래 글처럼 하루하루 자족하며 사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쌓아두고 나누지 않으면 썩고 만다.

중요한 것은 왜 성경이 도시 문화를 거부하고 유목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유목 정신 때문이다. 유목민의 가치관 때문이다. 유목민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평생을 나그네로 살아간다. 노마드(nomad)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소유에 관심이 없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한다. 그래서 창고를 만들거나 미래를 대비해서 저축해 놓는 법이 없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때 하나님은 "먹을 만큼만"(출 16:16, 18, 21) 거두라고 하셨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농사를 짓게 되었다. 소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창고를 짓고 축적하기 시작했다. 빈부의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광야에서와는 달리 노력한 만큼 더 많이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이 모으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결국 탐욕에 사로잡혀 살게 되었다. 급기야는 그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비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탐욕 때문에 바알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바알 신앙 때문에 결국은 가나안에서 쫓겨나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도 탐욕 때문에 죄를 짓고 그곳에서 축출당하지 않았는가? 가나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광야의 유목문화가 주는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착 문화(정착 가치)에 매몰되어 버렸다. 그래서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하는 바알을 따라갔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에게서 축출당하고 만다. 우리는 지금 가나안에 살고 있다. 정착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쌓아 놓고 더 많이 누리기를 원한다. (중략) 성경은 그런 도시를 빨리 탈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8~29쪽)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안정적인 직장, 주거환경, 보험과 저축, 건강 관리를 위해 무한 경쟁을 통해 상위 직업이나 직장을 쟁취하려 한다. 자기 노력의 결과라 자부할만 하고 자부한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입니다 하는 것은 양념이나 장식일 뿐이다. 왜냐면 안정과 번영을 바라는 삶의 추구점의 정점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하나님을 들러리로 세울 수 있다. 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나의 안락과 안정된 삶을 희구하고 있다면, 또는 과연 나는 어떠한가? 점검하고자 하면 이 책 ‘광야를 살다’를 꼭 일독 이상 할 것을 추천한다.

가인, 아브라함, 하갈, 요셉은 창세기에 기록된 광야를 경험한 인물들이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을 겪은 세대이고 룻과 나오미는 아브라함의 계보를 다윗으로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의 광야를 건넜다. 영광스러워 보기이기만 하는 다윗 인생의 대부분도 광야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인생에서 광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종국에 파국이나 불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은 정말 힘겨운 시간이지만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고 의뢰하는 훈련과 연단의 과정이기도 하다. 다윗은 광야를 거쳤지만 그 아들 솔로몬은 어찌 보면 꽃길을 주로 걸었다. 화려했던 솔로몬의 영화로운 인생의 끝이 어떠했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지났던 광야는 깊은 영적 침체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이 길을 견딘 그를 하늘로 불러 올리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로니아 포로기에 겪은 광야는 어떠한가? 출애굽 당시 불순종의 광야를 건넜던 이스라엘은 포로기에는 절망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와 그루터기에 새 싹이 돋아나듯 이스라엘 회복시키셨다.
메시야 대망의 시대가 지나 세례 요한은 외로움의 광야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출현을 외쳤고, 그는 전면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예수를 드러내고 자신은 감춘 것이다. 외로움의 광야는 세례자 요한의 몫이었다. 나사렛 사람 예수는 십자가의 광야를 견뎌 냈다. 고통의 밤이 지나면 회복이 아침이 열린다. 그 길이 너무 힘겨워 이 잔을 옮겨 달라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소개된 광야의 주인공은 사도 바울이다. 어떤 광야가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켰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 이 책에는 다양한 현장 사진, 각 장 말미에 주인공이 걸어간 광야의 내용을 항목별로 간명하게 정리한 표를 제공하고, 성경 인물의 이동 경로를 지도로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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