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보정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최재희 옮김 / 박영사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정판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새로운 오타가 늘었다. 당장 책 펼치자 마자 일러두기부터 오타가 보인다.


" 3. 역자가 원서의 각 토막마다 ① ② ③ 등 번호를 붙였고 길다란 것은 쪼개기도 했으나 새 번호는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가 붙인 번호는 그대로 옮겼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04(개정중판), 7쪽. 밑줄(pc에서만 보임)은 본 리뷰어.


3. 역자가 원서의 각 토막마다 ①, ②, ③ 등 번호를 붙였고 길다란 것은 쪼개기도 했으나 새 번호는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나가 붙인 번호는 그대로 옮겼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19(보정판), i쪽. 밑줄은 본 리뷰어.


초장부터 이러한 마당에 자랑스레 출판사 소개글에 그대로 올라가 있기까지 하다. 검수가 전혀 없었다는 증거다.


--


개정중판까지 "이하(以下)의 본문 중에서 간혹 활자가 적은 귀절(句節)은 모두 같은 대목의 재판과 대조시키기 위한 것이다"(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04(개정중판), 47쪽(역주 30번)) 하여 지켜지고 있던 활자 크기의 차이가 보정판에서 사라졌다. 


활자 크기의 차이는 개정중판 기준으로 50쪽 ②번 토막부터 확인할 수 있다. 보정판에서 이에 해당하는 부분은 xlix쪽의 ②번 토막인데, 활자 크기가 ①번 토막과 전혀 차이가 없다.


웃긴 점은 보정판에서도 "이하의 본문 중에서 간혹 활자가 적은 귀절은 모두 같은 대목의 재판과 대조시키기 위한 것이다"(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19(보정판), xlvi쪽(역주 1번))라고 하여 역주 자체는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책이 사기를 치고 있는 셈이다.


--


개정중판까지는 쪽수(면수)가 책 전체에 걸쳐 아라비아 숫자였는데, 보정판부터는 서론부의 쪽수가 로마자로 표기되고, 본론부부터 1쪽이 시작된다.


이 때문에 역자가 '몇 면(쪽)을 참고하라' 한 지시가 허황되게 되고 만 것이 있다.


"이 지속체와 상관해서 표상들의 변역(變易)이 규정될 수 있고, 따라서 표상이 변역하는 시간[의식] 중에서의 나의 존재가 규정될 수 있다[변역과 변화의 구별, 194면]"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04(개정중판), 43-44쪽. 원문(역자 번역문)은 두점(방점)이 찍혀있으나 생략했다. [] 안은 역자가 보충한 말이다.


"이 지속체와 상관해서 표상들의 변역(變易)이 규정될 수 있고, 따라서 표상이 변역하는 시간[의식] 중에서의 나의 존재가 규정될 수 있다[변역과 변화의 구별, 194면]."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19(보정판), xli쪽. 원문(역자 번역문)은 두점(방점)이 찍혀있으나 생략했다. [] 안은 역자가 보충한 말이다. 


개정중판과 보정판에서 공히 194쪽(면)을 지시하고 있되, 보정판에서 실제로 변역과 변화가 등장하는 것은 '경험의 첫째 유추'에 관해 말한 149쪽 이하이다. 194쪽에서는 '현상체와 가상체의 구별'만 나온다.


벌써 두 번째 사기인 셈이다.


--


자구에 함부로 손을 대 칸트와 역자의 뜻을 훼손하였다.


" 공간 형식에 의해서 잡음이 어느 방향에서 온다는 방항이 알려지고, 시간 형식에 의해서 그 잡음이 어느 시간부터 되풀이되는 현상임이 알려진다. 시공(時空)의 형식작용을 받은 대상이 「경험의 대상」이다. 지각 대상이건 경험의 대상이건, 「물자체」로서의 대상 따라서「잡음 자체」는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04(개정중판), 73쪽(역주 43번). 밑줄은 본 리뷰어. 오타는 원문대로 둠.


" 공간 형식에 의해서 잡음이 어는 방향에서 온다는 방향이 알려지고, 시간 형식에 의해서 그 잡음이 어느 시간부터 되풀이되는 현상임이 알려진다. 시공의 형식작용을 받은 대상이 「경험의 대상」이다. 지각대상이건 경험의 대상이건, 「물자체」로서의 대상이다. 따라서「잡음 자체」는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2019(보정판), 4쪽(역주 1번). 밑줄은 본 리뷰어. 오타는 원문대로 둠.


지각과 경험의 대상은 현상이다. 그러므로 물자체(사물 자체)가 아니다. 이러한 구별은 칸트 철학의 핵심이고 기본에 해당한다.


역자는 개정중판에서 "물자체」로서의 대상 따라서「잡음 자체」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현상인 잡음은 물자체로서의 대상, 즉 잡음 자체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보정판에서는 계사가 탈락했다고 판단했는지 "물자체」로서의 대상이다. 따라서「잡음 자체」는 아니다."라고 '보정'해놓았는데, 바로 앞뒤가 대놓고 모순된 말이 되고 말았다. 칸트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맥락 파악에 소홀한 '개악'이라고 할 것이다.


--


이러한 사례들이 더 있다면 재앙일 것이다. 


본래 칸트의 책은 혼자서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들 하거니와, 이 책은 정도가 심하다. 전문가와 한 장 한 장 교정 강독해나가지 않는 이상 심각한 오해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나는 박영사에 이 책을 칸트 철학 전문가를 초빙해 재보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작고하신 최재희 선생의 업적을 훼손치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eif 2022-07-25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천>의 뒷부분(철학개론, 도덕형이상학정초, 비판 강의)과 <판단력>(최재희 역은 아니지만)은 국한문 혼용이라 많은 품을 내지 않으면 읽기 힘든 면이 있었으나, 이번 보정작업으로 꽤 독자 친화적으로 다가왔죠. 다만 간혹 ‘이성‘ 단어와 ‘오성‘ 단어의 혼재가 있어 찾아보니, 보정작업을 한 인물이 실수한 것이 틀림 없더군요. 그래도 <순수>는 국한문 혼용이 없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문제들이 있었네요. 정확한 대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