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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숲에서는 사물간의 관련성이 제아무리 명백하게 묘사되어 있어도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수학과의 차이다. 이야기의 역할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문제를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동의 질이나 방향성을 통해, 해답의 방식을 이야기 형식으로 암시해준다. 덴고는 그 암시를 손에 들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그 암시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 적힌 종이쪽지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모순을 지니고 있어서 곧바로 실제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언젠가 나는 이 주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이 그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덮혀준다.
미루어 두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은 후라 이 하루키의 이 말은 절대공감이었다. 마음이 힘들때마다 책을 찾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번 책을 두고 여러 말이 많은 것은 안다. 하루키의 거의 모든 소설을 읽었고, 그의 에세이도 읽었다. 그의 소설은 거의 현실과 환상이 교차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너무나 좋아하면서도 기대했으면서도 이번 책도 그렇겠지라며...분량과 가격의 압박으로 포기하려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장보러 갔다가 들른 서점에서 지르고야 말았다. 그의 독자 흡입력이란...역시 내게 그는 천재 작가이다. 두꺼운 두권의 책은 아껴먹는 사탕처럼 빨리만 읽혀지고 만다.
그의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의 성격.심리가 섬뜩할만치 나와 일치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너에게 부족한 건 의욕과 적극성이야 라고 고마쓰는 자주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뭔가 망설일 때는 꼭 '뭐 어때'하고 생각하며 포기해 버린다. 그게 그의 성격이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덴고라는 열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그거 학원강사다. 하지만 그것이 덴고는 좋았다. 그는 거기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나의 등을 토닥여 준다. 나만의 외로움이나 고민만은 아니라고..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허그의 느낌이랄까??
'하루키 일상의 여백'이라는 책을 통해본 그의 모습은 현실의 외로움과는 많이 동떨어져 보인다. 아침일찍일어나 조깅을 하고, 고양이을 무척 좋아해서 지나가는 고양이에게도 말을 걸고, 저녁이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모범적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고,,,무엇보다 가고 싶으면 언제든 어디로든 휴가를 갈 수있다. 부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의 책에서 느꼈던 공감대가 무너진다고 해야 할까? 그의 책에서 느꼈던 것들은 하루키 고독이나 감정이 아닌듯해서...
하지만 내겐 상당히 치명적 손상을 주었던 그 책 '하루키 일상의 여백'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하루키를 사랑한다. 1Q84 간행 소식에도 '흥 안사' 하고 콧방귀 뀌어놓고 떡하니 읽고선 '꺄~'하고 싱글벙글 한 걸 보면 미운정 고운정 다든 사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