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열정과 사랑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흥미로웠던 소설. 유명 패션잡지의 8년차 여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현대인들의 치부를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측은해지기도 했으며, 가끔은 이러한 치열함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스타일>은 나에게 참으로 여러 감정들 불러왔다. 단순히 담배와 커피를 끼고 살며, 새벽 3시에 잠들어 점심이 다 되어서야 일어나는 불규칙적인 수면 패턴, 사글세에 살면서도 BMW와 명품 가방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네 현대인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비난하려는 책이 아니었다. 명품 브랜드명부터, 유명 연예인들의 실명,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들까지 모든 설정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서 우리가 더욱 소설에 깊숙하게 몰입할 수 있게끔 해주는 장치들일 뿐이다. 저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끝으로 갈수록 나는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어떤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16층에서 강아지를 던진 건 기자가 아니라, 기자의 아이였어.”
그날, 말없이 영동 대교를 내다보던 편집장은 처음으로 기자 선배의 아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기자가 소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어.”
…
그렇게 오늘도 나는 소문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갈등을 다루는 건 드라마 작가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살벌하고 현실적인 갈등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누군가 깊숙이 접어놓은 페이지를 읽는다는 건, 그걸 보고 가슴 아파한다는 건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때론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의 관계는 이렇듯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저자는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로써 장황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수많은 소문과 진실, 이해와 오해들에 둘러 쌓여있다. 소설 속의 이서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누군가를 증오하여 그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헛소문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또,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를 오해하기도 하고, 진실을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아픔을 두 눈으로 직시했을 때 우리는 그를 연민하기도 하고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그를 이제 이해하게 되며,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 간의 관계가 모두 그러하듯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 증오하고 있는 누군가가 미래에 사랑해 마지않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으며, 이해할 수 없다고 확신했던 누군가를 세상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관계’란 흥미롭다. <스타일>이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 간의 미묘한 ‘관계’를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명품 가방, 신상 구두, 최고급 레스토랑, 억소리 나는 외제차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도 상처 받은 아이가 있어, 그렇게 늘 웅크린 채 혼자 울고 있었던 거다. 작은 벌레처럼 온몸을 말고 어둠 속에 떨고 있었을 그 아이가 가여워 나는 그의 등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른 누군가를 위함이 아닌, 스스로를 가여워 할 줄 아는 연민일지 모른다.
나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때 내 다리는 분명 지상이 아닌 허공에 매달려 있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불안하거나 아프지 않았다.
멀리서 내 안의 열여덟 살짜리 소녀가 뒤돌아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소녀는 무너지지 않은 다리 위에 그렇게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관계’들은 결국 나와의 ‘화해’로 이어진다. 증오했던 이와의 화해, 사랑했던 이와의 화해, 나 자신과의 화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