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이들이 어렸을 적 <어린왕자>를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은<어린왕자>가 ‘아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마냥 동화 같지만은 않은 이야기이다. 그 어떤 책보다도 ‘어른’에 어울리는 책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칠 수 있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새롭게 와 닿았고, 그만큼 나는 씁쓸해졌다.

 

나는 내가 그릴 수 있는 단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려주었어요.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 말예요. 그런데 그 꼬마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였어요.

“아니, 아니에요! 난 보아뱀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요. 보아뱀은 아주 위험한 동물이에요. 또 코끼리는 거추장스럽고요.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조그맣단 말예요. 내가 필요한 건 양이에요. 양 한 마리만 그려줘요.”

 

언젠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나 또한 저 그림을 보고, 모자가 아닌 보아뱀 속의 코끼리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맞힐 수 있었을까.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하고 색다른 접근은 어린왕자가 보아뱀 뱃속의 코끼리를 알아봄으로써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로써 비행기 조종사인 나또한 어릴 적의 동심을 잠시나마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는데, 이는 책 속에서 처음 등장한 어린왕자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장치이며 <어린왕자>를 상징하는 중요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나에게 당연한 ‘모자’를 전혀 당연하지 않게 여기며,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어린왕자의 모습은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나에게 커다란 파격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의 나는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당연하게만 보려고 나 스스로를 틀에 가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처럼 작은 너의 별에서는 의자를 몇 걸음 당겨놓으면 되었지. 그래서 넌 네가 원할 때마다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테고…….

“어느 날 난 마흔세 번이나 해 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조금 후에 넌 이렇게 덧붙였지.

“아저씨도 알 거예요……. 누구나 슬픔에 잠기면 석양을 좋아하게 된다는 걸…….”

“그럼 마흔세 번 석양을 본 날은 몹시 슬펐겠구나?”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늘 밝고 낙천적이던 어린왕자가 자신의 슬픔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던 때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슬픔은 조금 다른 느낌의 것이었다. 슬픔에 잠긴 그는 의자를 몇 걸음씩 당겨놓으며 하루 종일 마흔세 번의 석양을 봄으로써 슬픔을 씻어낸다. 슬픔을 애써 떨쳐내려 애쓰지 않아도, 빛나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만으로도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조금의 슬픔도 벅차하며 어떻게든 슬픔과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모습이 애잔해지는 순간이다.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방식으로 슬픔을 맞이했다. 슬픔 또한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어린왕자처럼 슬플 땐 석양을 보는 것으로 위로를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잘 가,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그 말을 기억해두려고 따라 말했어요.

 

<어린왕자>는 ‘길들이다’에 대해 아주 독특한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미정원에 수백 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더라도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그렇듯이, 비행기 조종사가 그렇듯이 그들은 서로에게 길들여진 존재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린왕자의 별에 피어난 꽃 한 송이가 그러하다. 그 꽃은 어린왕자의 자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 안의 조그마한 별을 띄우고 살아간다. 그 별에는 꽃이 한 송이 피어있을 것이고, 인생은 그 한 송이의 길들여진 꽃을 잘 가꾸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소비한 시간은 장미를 더 소중하게 만들고, 우리들은 각자의 장미한테 책임이 있다. 이로써 우리 인생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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