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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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선정한 2016년의 소설(공동 1위), 과연 어떤 점이 소설가들로 하여금 올해의 소설로 뽑히게 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쇼코의 미소'를 만납니다.

책에는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를 비롯해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씬짜오, 씬짜오',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충분히 암시하는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이방인들간의 소통과 단절을 다루고 있는 '한지와 영주', 이념과 투쟁이 사라진 90년대 초반의 노래패와 그 속의 사람들을 다룬 '먼 곳에서 온 노래', 어쩔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미카엘라',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족 구성원의 죽음을 안으로만 삭히며 소리없는 통곡이 존재하는 '비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쇼코의 미소'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K군에 할아버지, 어머니와 사는 나(소유), 일본문화가 전격 개방되는 그해에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교류 프로그램으로 온 쇼코. 이 두 사람의 이별과 만남을 통한 성장의 이야기입니다. 쇼코는 짧은 기간이지만 나와 할아버지의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이별... 이후 내가 일본으로 건너가 쇼코를 만나고 또 한참의 시간의 흐른 뒤에 쇼코가 한국에 와서 나를 만납니다. 그 와중에 쇼코의 할아버지와 나의 할아버지의 죽음이 자리합니다. 잔잔한 물결과 같은 소설입니다. 뚜렷한 갈등이나 사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물과 인물의 만남과 헤어짐, 할아버지와의 정신적 단절과 이해, 정신적 성장에 따른 엄중한 현실의 이해가 드러납니다. 또한 이 소설은 국적이 다른, 하지만 가정 환경은 비슷한 두 소녀의 정신적 성장기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물론 쇼코는 할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이, 나는 할아버지의 무관심이 자리하지만 그 사랑과 무관심을 딛고 한 개인으로 성장해가는 소녀들. 그 곳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단절과 지속, 사랑의 다른 모습이 존재합니다. 벗어나고만 싶었던 가족과 할아버지는 역설적으로 두 소녀의 버팀목이 됩니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순간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야 함을 작가는 말합니다. 큰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그냥 두 소녀의 인간 관계망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그리고 독자는 쇼코와 '나'는 또다른 나가 아닐까 하는 자각을 이끌어 냅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단어는 상처를 가진 개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 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한 개인(가족)에게 남겨진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씬짜오), 국가(사회)라는 거대 조직이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며(순애 언니)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과 오해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결국 개인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으로 이어지고 말지요. 명분이 없던 싸움에 끼어들어 수많은 사상자를 양산한 베트남 전쟁은 소설 속에서 언급한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78쪽)다는 그 철없고 순수한 믿음을 여지없는 깨버리는, 감추고만 싶은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그리고 그 침략 전쟁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역질 나는 학살'(81쪽)에 가담한 대한민국은 그 어떤 경우에도 침략을 하지 않는 나라가 아니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도 아닌 것입니다. 또한 1964년과 1974년에 벌어진 인혁당 사건. 무고한 시민을 발가벗긴 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자행하고 10년 뒤 그 인물들 8명을 사형선고 내려진 지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한, 국제법학자협회에 의해 ‘사법사상 암흑의 날’을 선포하게 한 전대미문의 사건. 그 잔상이 '순애 언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죄 없다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숨어 살며, 자신을 감추고 감추어야만 했던 소시민의 모습이 바로 순애 언니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어'라고 마지막 순간에야 내게 말을 건네는 언니, 폭압적 군사정권이 육신을 감금하고 죽일 수는 있었지만 정신마저는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결하고 올곧은 정신은 80년대와 2010년대를 관통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프고 아픈, 결코 숨겨서는 안 되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작가는 결코 큰소리로 외치지 않습니다. 정권에 의해, 억압적 현실에 의해 부서져가는 개인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 개인의 모습은 정확히 '나'의 모습으로 중첩됩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 들듯 소설 속 인물이 어느 사이에 내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은영 작가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러울 수 있지만, 부당한 현실 속에서 아무 행동하지 못한 나를 자책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나일 뿐'입니다. '보무철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164쪽)은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살기도 하고, 노래는 끝났지만 이미 떠나간 이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을 살기도 하고,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시간'(176쪽)을 살아가기도 하는 나는 여전히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현실 속의 나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는 언제나 혼자가 아닙니다. '위태롭게나마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의 부모와 상처받았기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던 응웬 아줌마 부부가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시간'(91쪽)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게 삶을,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도도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수많은 개인의 삶은 지극히 작고 작을 뿐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삶은 현실에 의해 쉽게 무너지고 부서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디작은 개인이 모여서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87년의 민주화, 2017년의 촛불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연대의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 '쇼코의 미소'에서 저는 현실 속 개인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공감을 느낍니다. 절망적인 삶 속에서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에 인간에 대한 애정입니다. 때로는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감정의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 믿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집이 좋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최은영 작가의 시선을, 그 마음을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위태롭게나마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의 부모와 상처받았기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던 응웬 아줌마 부부가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시간‘(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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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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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분명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 소비량이 남부럽지 않은 우리나라이기에 사향고양이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만한 사람은 바로 알게 되지요. 루왁이란 커피를 얻기 위해 사향고양이에게 가해지는 인간의 폭력을 경고하는 글이지요. 하지만 이 책에는 사향고양이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먹고 입는 기본생활에서부터 건강을 위해 챙기는 것들, 여행가서 즐겁게 보았던 것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인지를 구체적 사례와 통계 수치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덮으며 무엇 하나 예사롭게 선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저자인 이형주 씨는 동물과의 조화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원했기에 이런 글을 썼을 것입니다.

 

사자, 돌고래, 호랑이, 코뿔소, 소, 악어, 뱀, 사향고양이, 곰, 범고래, 개(복제견), 상어, 하프물범, 라쿤, 오랑우탄 등이 이 책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 동물은 인간의 한없은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실제적인 사진과 사례, 수치를 대하다보니 우리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혹했었나 하는 자문이 들 정도입니다. 정말 우리 인간은 지구상 최후의, 최상의 포식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짐승은 창살 뒤에 있지 않고 창살 앞에 있다'(149쪽) 스웨덴의 문호 악셀 문테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잔인한 폭력 앞에서 깊어지는 자책감, 죄스러움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의 모든 수족관, 동물원을 폐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 자체로 긍정적 기능-특히 교육적인 면이나 인간과의 교감 측면에서-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해 본다면 조금 더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일부 선진국에서 동물원이면서도 동물의 생태나 환경을 고려한 동물원을 새롭게 개장하는 사례가 보편적으로 확대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정복자도 아니고 자연 위에 군림하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이형주 씨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완벽한 삶을 사는 한 사람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삶을 사는 여러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8쪽)는 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무심히 먹었던 음식, 생각없이 입었던 옷, 손뼉치며 봤던 수중동물의 쇼 등이 연상되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저 역시 동물을 향한 인간의 폭력에 가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에서 변화는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완벽히 알지 못하더라도 알고 있는 사실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 모피를 비롯한 동물 가죽 제품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건강을 위해 잔인한 살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홍수 시대입니다. 정말 많은 수의, 많은 종류의 반려동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려가 되지 못하는 혹은 반려할 수 없는 훨씬 더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폭력 앞에서, 인간의 무심함 속에서 고통받고 있음을 이 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비단 동물뿐이겠습니까? 지구상의 거의 모든 존재들이 인간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사라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식물과 동물이 끊임없는 변화 혹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듯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는 공존과 조화를 실천해서 우리의 후세대에게 이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줘야 합니다. 결국 언제나 문제는 나로부터의 실천에 있습니다.


109쪽에 보면 동물의 5가지 자유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를 기억한다면 최소한 동물을 억압하는 현실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 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인간이 인간다울 때-표현이 지극히 추상적이지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과의 조화와 공존도 가능할 것입니다. 무심코 보았던 동물원 곰의 재주, 수족관 돌고래의 기예. 분명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지만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다고 이 책은 역설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면서 나로부터의 변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저자가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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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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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찌된 일인지 기욤 뮈소 책을 한 권도 포스팅하지 않았네요.

읽은 책은 분명 여러 권 되는데...

'구해줘', '종이여자', '사랑하기 때문에' 정도는 읽은 것 같은데 한 권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블로그에 처음 올리는 기욤 뮈소의 작품,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하루 만에 완독했습니다. 가독성만큼은 뭐...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기욤 뮈소의 글쓰기 장점이자 단점이 온전히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거기에 결합되는 환상적 요소. 이번에는 시간여행이란 흔하디흔한 장치를 이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내용은 뻔한데 이를 얼마만큼 얼기설기 잘 엮어내느냐가 관건인데 그런 면에서 기욤 뮈소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그렇듯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욤 뮈소의 작품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 작년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네요. 당연히 보지 않았지만...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이 가능한 것은 신비한 황금색의 알약과 수면입니다. 수면에 대해서는 106~108쪽에 걸쳐 설명을 하고 있는데 나름 소설 전개의 개연성을 부여하려 한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얕은 수면은 '서파수면' 단계에 해당하고 깊은 수면은 '역설수면' 단계에 해당하고, 역설 수면은 대략 90분마다 한 번씩 찾아오며, 15분 정도 지속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가장 격렬한 꿈을 꾸게 된다고 하네요. 엘리엇의 알약을 먹고 과거로 이동하는 시간과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역설수면의 시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럴 수도 있겠네'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요 ㅎㅎ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엇은 성공한 외과의사이지만 폐암 말기의 환자이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연인 일리나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만난 신비의 노인으로부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열 개의 알약을 얻게 되면서 그의 삶은 파란에 휩싸입니다. 60살의 엘리엇과 30살의 엘리엇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일리나를 살리고자 하는 일념의 젊은 엘리엇과 나이 든 엘리엇의 갈등. 우여곡절 끝에 일리나를 다시 살리지만 그 여파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뻔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기욤 뮈소의 작품이 그렇듯이 막판에 급격하게 휘몰아치는 사건과 상념들... 얼마만큼 받아들이는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저는 뭐... 그냥 그렇게... 특별한 감흥 없이 읽었습니다. 다만 엘리엇이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심리는 꽤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에게는 넉넉한 사랑을 주려 노력하는 아빠,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 노력하는 아빠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어릴 때의 아픈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 엄청난 트라우마가 된다면, 이것처럼 불행한 삶도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욤 뮈소의 책을 다 읽어보지 않아서 속단하기는 그렇지만... 기욤 뮈소의 책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일정한 패턴의 반복처럼 보이는데... 저만의 느낌이겠지요... 아무튼 저는 기욤 뮈소의 작품을 찾아서 읽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깊이 다가온 작가는 아니란 말이겠지요. 그래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가슴에 크나큰 후회 하나 가진 사람에게는 꽤 매력있게 다가갈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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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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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은 작년 하반기에 했지만 내내 묵혀뒀다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후회가 들 만큼 깊은 울림과 감동을 안겨준 자서전이었습니다.


1977년 뉴욕 출생.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생물학 전공, 동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 취득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와 철학 과정 이수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 졸업 후에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 이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종사.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 수상.

2015년 3월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


간단한 저자의 약력입니다. 웬만한 엄친아는 저리 가라 할 만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장밋빛 인생만 가득할 것 같았던 그 앞에 내려진 폐암... 그는 어떻게 이 병마와 보냈을까요?


약력에서도 보이듯 폴 칼라니티는 의사이지만 문학에 상당한 관심과 조예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2014년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How Long Have I Got Left?)’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합니다. 이 글에서 그는 죽음을 선고받았지만 정확히 언제 죽을지는 모르는 불치병 환자의 딜레마를 절실히 표현했다고 합니다. 자서전 곳곳에서도 그의 문학적 관심과 재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한 이유도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의 교차점에 의학이 있다고 생각하여 의과 대학원에 다시 진학했다고 합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의 인간적, 학문적 고뇌도 읽히는 부분입니다.


책은 건강한 시절의 그를 다룬 1부와 암과 직면한 그의 생활을 다룬 2부로 구성됐습니다.


암, 그것도 말기암에 걸렸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대부분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질 것입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고요. 본문 192쪽에 슬픔의 5단계가 제시됩니다.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아마 이 단계가 암 환자들이 겪는 일반적인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폴 칼라니티는 이 단계를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진술합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류의 반응에서 '왜 하필 나야?'와 같은 분노. 그리고 신을 비롯한 절대자와의 협상 그리고 그 협상의 실패에 따른 우울,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수용 혹은 체념의 과정을 일반적으로 겪지 않나 싶습니다.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반응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폴 칼라니티는 이런 과정과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암 진단 후 포기했던 레지던트 과정을 치료를 받으면서 끝내는 마치고 만다는 것이죠. 의사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대개 대충은 알 것입니다. 그런데 말기 암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그 힘든 나날을 저자는 굳건한 의지로 완수하고 마는 것이죠. 전율이 일 정도의 사명감 혹은 생명의지입니다. 이 부분에서 전 슬픔보다는 한 인간의 숭고한 삶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두려울 정도로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결말을 알고 있기에 더욱 슬픈 자서전이었습니다. 결코 빠르게 읽을 수 없습니다.(물론 책 속의 내용, 특히 1부는 어느 정도 속도가 붙기는 합니다.) 특히 그의 투병기를 따라가다 보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도 끝내 피우는 꽃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렇게도 아름답고 처절하면서 숭고한 인간의 삶을 참 오랜 만에 만난 것 같습니다. 인간이 죽음에, 시간에 맞서는 것은 당랑거철과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내 앞의 주어진 삶을, 시간을 소중히 살아가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 숭고한 삶을 폴 칼라니티가 보여줍니다. 실천합니다.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위기 속에서, 절망 속에서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위기가 닥치거나 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안절부절 못하고 무척이나 예민해집니다. 결국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시 돋힌 말을 건네 상처를 입히고 말지요. 대범하지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삶의 한계입니다. 반면에 폴 칼라니티는 더욱 진중해 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 역시 자신이 죽음 앞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 앞에 주어진,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누렸습니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193쪽) 그는 이 책을 썼습니다. 물론 미완성의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대한 태도, 죽음에 임하는 진실성을 충분히 확인하고 가슴아파하고 존경의 마음을 보낼 수 있는 책임에 분명합니다.


책 속에는 아름다운,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참 많았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 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72쪽)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120쪽)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143쪽)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198쪽)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231쪽)

'용감한 보는 자 폴은 이 책을 쓰면서 말하는 자가 되었고, 우리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죽음을 대면하라고 가르쳐주었다.'(253쪽)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지 목격자였다'(264쪽)


죽음이란 단어만큼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단어가 있을까요? 누구나 피하고 싶고 누구나 마주치고 싶지 않은 단어. 그 단어 앞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대개는 앞서 언급한 슬픔의 5단계를 밟아가겠지요? 얼마 전 육친의 죽음을 경험했기에 폴 칼라니티의 삶은 더욱 아프고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실한 눈으로 죽음에 대면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의 삶을 다한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언제나 죽음을 의식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일상마저도 버거운 삶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힘겨울 때, 혹은 잠시 여유로울 때 죽음 앞에 마주한 삶을 떠올린다면 내 앞의 오늘에 정말 숙연해지지 않을까요? 죽음보다는 삶의 숭고함을 알려준 책, 죽음 앞에 당당한 삶의 자세을 일깨운 책,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입니다.

‘몇 년 전,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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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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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이런 소설을 만났나 하는 자책이 들 만큼 인상적으로 읽은 소설집입니다. 사실 김금희라는 작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웃 리뷰에서 몇 번 보고 기회가 되면 읽어야지 했던 김금희의 소설들.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습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부터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등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당연히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가 가장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는 글을 쓰던 옛연인 양희. 그 양희를 대기업 영업팀장으로 나름 잘 나가다가 좌천돼 건물 지하에 있는 시설관리팀장으로 있는 필용이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물론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 무대 위의 인물과 관객으로 만나게 되죠.) 양희는 오늘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하지만 언제든 그 사랑이 변할 수 있다고 하는 여자. 필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여자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사랑의 순탄할 리 없습니다. 쓰라린 이별 후에 양희의 집에 찾아간 필용. 그런 필용에게 양희는 말합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그래서 양희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고 한 것일까요? 필용이나 양희나 현실에서는 어찌 보면 패배한 인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비웃음을 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필용과 양희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특히 필용은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삶을 산 것으로 보이니까요. 절망적이고 우울한 현실에서 필용이 만난 소극장 무대 위의 양희는 옛추억을 떠올리는 동시의 현재의 무력감을 잊게 하는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잊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42)’이라는 쉽지 않은 진리를 깨달은 것인지도...

 

김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가 가득한 인물입니다. 조중균이나 세실리아, 개를 기다리는 그녀나 목욕탕에 불을 지른 것으로 오해받는 김대춘이나... 그런데 그들은 그 상처 가득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그것이 내부로부터이든 외부로부터이든)을 가지고 힘들고 고단한 현실에서 끝내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작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봅니다. 메마른 감정처럼, 낡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오랜 관찰을 통해 툭툭 던지듯 문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읽기에 불편합니다.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식당 앞에 확인표를 들고 서 있는 조중균 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탁!하고 막힙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폭력의 시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에 의한 폭력, 가정 내에서의 폭력, 혹은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앞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아파하고 때로는 가해자가 되지만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타인이 당하는 폭력을 발견했을 때지요. 과연 어떤가요? 대부분 나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무관심을 가장하지는 않는지... 김금희의 소설들은 그 아픈 부분을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내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좋았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나타나는 것도 참 오랜만이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순간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모여 한 인간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 속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고 잊고 싶은 상처들도 있습니다. 또한 잊고 싶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의지도 있고요.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견고하게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세실리아처럼 성공한 듯 보이는 인물도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상처 속에서의 삶은 그것이 지금 '잊지 않음'으로 있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상처를 이겨내고서 이 굳건한 현실 위에 서 있으니까요.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니다. 다소의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나가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과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애매한 상태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우리 현실의 모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안의 상처와 억압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책을 읽은 지가 꽤 돼서 작품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간만에 상당히 몰입하면서 읽었고 여러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집이기에 뒤늦게나마 짧은 감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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