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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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 작가님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삶의 형식으로서의 철학

2025년 현재 세계의 평균수명은 73세이며, 국가별로 80세 이상의 장수국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의학의 발달이 전담했던 생명연장의 막중한 임무는 이제 유전학과 AI에게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인간은 자고이래 생명연장에 대한 욕망을 부풀리며 그에 맞는 해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미래학자이자 과학자인 #레이커즈와일 은 그의 책 [ #특이점이온다 ]에서 인간이 서서히 기계지능과 융합함으로써 마침내 생명연장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혁신적인 발상은 진시황이 갈망했던 '불로초(不老草)'를 손에 넣게 됨으로써 인간은 더이상 필멸의 존재가 아니라,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 철학자 서동욱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한 인간의 '끝(죽음)'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 그 가 말하는 "영생(永生)"은 물리적 존재의 영구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거대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선조들이 이뤄낸 정신적 유산과 관습, 가치관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한 형식", 즉 철학의 이음으로써의 "영원한 생명"을 논한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이를 두고 화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실체의 삶이 다른 실체로 옮겨감으로써 유한한 삶 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전체성과 무한>에서 출산의 의미에 대해 "나는 내 아이다. 아버지 됨은 타인이면서 나이기도 한 낯선 이와 맺는 관계다."라고 언급하며 영적 개념으로까지 보이는 화체의 애매한 정의에 설명을 더했다.

같은 관점에서 '수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수명이란 것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나누는 지점까지의 '시간의 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철학적 생명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영속적으로 거듭 태어난다면 '수명'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영원한 시간과 제한된 시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단순히 '출산' 행위가 한 인간의 (철학적)생명을 무한히 연장시키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진화론적 측면에서 한 인간의 정신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승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자원고갈을 걱정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유한한 자기 생의 계획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맞춰 짜는 사람의 시간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나간다고 주장한다. 즉, 치열한 경쟁에서 좀 더 가치있는 생각이 자연선택되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철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수명이란 자신의 사유가 미치는 시점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로 가치없는 생각은 운좋게 다음 세대로 전승되더라도 곧 자연도태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출산' 자체가 생명 연장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철학은 인간을 규정하는 '삶의 형식'으로서, 사는 모습으로 출현하며, 사유하는 방식으로 내재하고, 타자 안에서 새롭게 발현한다.
서동욱 작가가 앞에서도 언급했던 세계관과도 맞닿는 지점으로 나의 가능세계와 타자의 가능세계가 만나 하나의 차별화된 현실 세계를 펼친다. 미세한 차이로 존재하는 무수한 가능세계들이 충돌과 합체를 거듭하며 '창조'를 이룬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삶 속에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내재하기 마련이며, 그 안에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자유와 금지, 부분과 전체, 소통과 불통, 다양성과 획일성이라는 인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삶'이라는 직물을 직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 철학일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서동욱 작가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는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꿔 얘기하면 태도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도 고쳐쓸 수 있을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삶을 대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정의 최종 후보에 오른 두 가지 선택은 아주 미세한 차이를 지닌 것이고 그러한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하는 타당한 근거가 된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있듯이 "삶의 무의미를 건너는 법"이라는 문구는 서동욱 작가의 책을 완독한 사람으로서 나의 인생이 기대되는 이유이며, 이미 그 새로운 결말을 위해 사유하는 원동력이 된다.
끝으로 귀중한 말씀을 책으로 펴내신 서동욱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저의 리뷰가 곧 출간되는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새로운 결말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본 리뷰는 해당 도서를 김영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0월 말 서동욱 작가님의 신작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출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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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lave Husband Wife: An Epic Journey from Slavery to Freedom (Paperback) - <주인 노예 남편 아내 > 원서, 2024 퓰리처상 전기 부문 수상작
Ilyon Woo / Simon & Schuster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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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연 작가님의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작가는 이 이야기를 1848년에서 1852년에 일어난 '저항과 자유를 향한 희망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노예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에서 두 노예가 추운 겨울 자유를 향해 탈출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 메이컨, 로버트 콜린스라는 한 백인의 집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의 집 한편 흑인 노예, 엘렌과 윌리엄이 있다. 그들은 이동, 교육, 결혼, 재산소유의 자유가 없다. 그저 콜린스家에 있는 개, 돼지, 닭, 식탁, 의자와 같은 재산 목록의 일부일 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노예제'라는 허구에 빼앗겨버렸다.

엘렌과 윌리엄은 서로를 사랑했고, 자유를 갈망했으며,
자신의 아이들이 자유의 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기를 원했다.

결국 엘렌은 백인 남성으로, 윌리엄은 주인을 모시는 흑인 노예로 위장한 채 메이컨을 떠난다.

1,600km(메이컨~필라델피아)의 고되고 힘든 여정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앞만 보고 나아간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도처에 도사리는 위기와 고난도 그들의 지혜와 용기, 자유를 향한 강건한 의지 앞에 길을 내어준다.
달리 표현하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속 깊은 응어리가 그 모든 어려움을 보잘것없게 만들었는 지도 모른다.
목표는 생존! 살아서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짓밟는 시대의 모순을 비웃기라도 하듯 엘렌은 백인 남성을 연기한다. 윌리엄은 그의 충직한 노예로서 그리고 그녀의 남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다.

컴컴한 어둠 속으로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은 지금 우리가 책을 통해 보는 시공간의 이동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을 것이다.

성공해도 법의 테두리에서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으며, 실패한다면 가혹한 고문과 이별만이 그들을 기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디딘 무거운 발걸음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죽음을 불사한 그들의 여정이 자유를 향한 그것과 일치한다는 잔혹한 역설을 느껴보려 노력한다. 누군가의 소유물로서 존재한다는 가학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욱여넣어서라도 그 아픔을 헤아리려 시도한다.




19세기 미국은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 시스템으로 자본시장을 돌렸다. 그들이 탈출을 감행한 시기는 미국이 '신의 뜻(Manifest Destiny)'에 따라 영토를 확장하던 때였고, 이는 각 지역들 간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켰다. 마침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 찬반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역사의 변곡점에 엘렌과 윌리엄이 있었다.

그들의 탈출은 "인간의 존엄을 누가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우생학, 골상학, 홀로코스트, 상놈과 양반, 귀족과 천민, 백인과 흑인, 순종과 잡종을 나누는 인간의 허구는 스스로를 얼마나 잔인하게 변모시킬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계층의 피라미드 그 꼭짓점에 서려는 이기적인 탐욕을 과학과 종교, 법이라는 껍데기로 칭칭 싸매 그 속에 은신하려 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책 속에 소개되는 노예 고문 장소인 '슈거하우스'는 주인의 요청에 따라 고문 방법, 횟수, 시간 등을 주문받는다. 그중 가장 악명 높은 '영원한 계단'은 고속으로 돌아가는 쳇바퀴 위에서 노예가 끊임없이 내달리는 고문으로 만일 지쳐 떨어지면 팔다리가 찢겨나갔다고 한다. 도처에서 열리는 노예시장은 경제 논리로 인간을 사고팔았던 탐욕적인 장소를 대표한다.

"경매인 두 명이 탁자에 올라가 있었다. 한 명은 망치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입찰가를 불렀다. 그들 뒤와 아래에 팔릴 사람들이 서 있었다. 혼혈 여성이 올라왔다. 그녀는 노란색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으며, 두 자녀와 함께 있었다. 아기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또 다른 아이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쥐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은 양옆을 빠르게 오갔다."

도덕성과 공감능력을 상실한 당시 백인들의 모습은 집단적 광기를 띠고 있었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은 피부색에 가려졌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가족의 외침은 편견에 침묵되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믿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포함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평등과 자유, 그리고 행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1848년 흑인에겐 실체 없는 허상이었다.

법과 원칙,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안전장치가 중립적이어도 인간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있음을 그 당시 백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던 <캘훈>의 말을 통해서도 남부 백인들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그들과 처지를 바꾸게 될 것이다. 여태껏 자유롭고 개명된 사람들에게 닥친 그 어떤 모욕보다 큰 모욕이자, 우리로서는 탈출할 수 없는 모욕이다. (중략) 우리 자신과 조상들의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우리의 땅을 과거 우리가 부리던 노예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이곳은 무질서와 무정부주의, 가난, 비참함, 불행이 영원히 사는 곳이 될 것이다."

엘렌과 윌리엄은 자유주인 필라델피아에 도착하면서 윌리엄 스틸, 로버트 퍼비스, 바클레이 아이빈스, 윌리엄 웰스 브라운과 같은 굵직한 반노예 활동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크래프트 부부의 개인적인 불편과 자유에 대한 욕망은 '노예제 폐지'라는 거대한 명분으로 변모했다.

시대를 풍자하는 그들의 모험정신과 믿을 수 없는 임기응면, 그리고 강렬하고도 책임감 있게 서로를 아끼는 모습은 북부의 수많은 흑인 공동체들을 열광케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유'의 상징이며, 유색인종의 '미래'가 되었다.

'백인이 속박했던 흑인'의 역사가 아닌,
'흑인이 인내했던 백인'이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흑인에게 백인은 어쩌면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예제'라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악한 인종이지 않았을까?

손에 쥔 것을 잃을까 두려워 채찍과 사슬, 법과 과학을 들이대며 어떻게든 '빈 껍데기 허상'을 지켜내려 조급해하는 힘없는 존재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흑인이야말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속박하는 데 있어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너그러운 존재는 아니었을까?

라는 헛헛한 상상을 하게 된다.

크래프트 부부는 자신들의 투쟁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유색인종들의 소망과 갈망에 공명하듯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그 위에 당당히 섰다.

어쩌면 세상은 누가 더 큰 울림으로 공감을 얻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정해지는가 보다. 엘렌과 윌리엄이 결국 자유를 얻어냈으며, 오늘날 그의 후손들이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유명한 말 중, "도덕적 우주의 호선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굽어진다."는 뜻 역시 인간 본성이 마땅히 지향하는 방향은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맥락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누구나 그 맥락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주인 노예 남편 아내]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엘렌과 윌리엄의 탈출기는 번역가가 후미에 밝힌 것처럼 책을 뚫고 나와 심장을 진동하고 일상을 파열시킨다.

오늘의 나는 감히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절박했던 상황을, 만끽했을 기쁨을 상상한다. 140여 년이 흐른 지금 크래프트 부부의 탈출이 도덕적 호선의 방향을 얼마나 틀어놓았는지를 가늠한다. 그들에게 이 엄중한 임무를 일임받은 것처럼 말이다.

우일연 작가님의 [주인 노예 남편 아내]는 한 노예 부부의 탈출기를 통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인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허구 속에서 응축하고 폭발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진보하는 도덕적 존재임을 넌지시 비춘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 수많은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위에 세워진 '자유 시대'임을 상기시킨다.

번역가 강동혁 님의 말씀처럼, 이 이야기를 접한 나는 그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세상을 나누는 수많은 기준들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도덕과 윤리가 특정집단에게만 호의적이지는 않은지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가 도덕적 우주의 호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주인노예남편아내 #크래프트부부 #우일연 #퓰리처상 #퓰리처상수상작 #피카출판사 #서평단 #가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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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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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포엘의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사실'을 의심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접하는 정보 속에는 '사실'이란 이름의 '의견'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하며,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100% 진실이라 믿고 있는 과학의 영역 역시 이러한 현상이 존재한다고 하니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독일의 인지심리학자인 옌스 포엘은 우리가 믿고 있는 많은 ‘사실’이 실제로는 의견에서 출발했으며,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잠정적 결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진실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인류의 탄생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이란 신뢰도가 떨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외부 환경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로프터스의 "목격자 증언 심리"를 살펴보면 인간의 기억력이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것 없는지 알 수 있답니다. 인지구조와 심리적 영향으로 인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그 날의 진실' 인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이런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은 과학을 만들었으며, 여러가지 과학적 기법이 생겨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찰과 측정인데, 이는 자연과학의 기초로서 현상에 대한 반복적인 기록을 통해 패턴을 연구하고 소정의 결과를 도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이나, 여기서 발전한 "지동설" 등은 별다른 장비 하나 없이 온전한 관찰로 이뤄낸 위대한 업적입니다.

이처럼 과학의 발전은 의견을 측정하고 검증함으로써 인류에게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학의 영역에도 정치적 의견이 개입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실험자의 설계, 피실험자의 특성, 학계의 권력관계, 모집단의 설정, 표본 추출 방식, 대조군 선정 등 매우 다양한 요인에 따라 인간의 편향이 개입되어 왔다고 합니다.

특히 성공한 사례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실폐한 사례는 간과하는 논리적 오류, 즉 "생존편향"에 얽힌 2차 대전 당시의 <폭격기 방어 전략>과 <강철 헬멧>에 대한 통계는 보이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라고 생각하는 편향의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라는 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옌스 포엘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사실이 언젠가는 새로운 발견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또한 과학이라는 분야가 인간의 사고체계, 인지편향, 사회, 경제,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내가 접하는 '사실'이 누군가의 편향된 의견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여러 자료를 비교하며, 그래프와 숫자가 무엇을 보여주고 또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를 "묻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비록 정보의 홍수 속에서 모든 정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정보를 대하는 데 있어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포엘은 후반부에 바람직한 과학적 모델을 설명하며 호킹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이는 '과학적 진리'의 가변성과 인류라는 존재가 '진리'라는 점근선에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199)
"모델과 독립된 현실에 대한 고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_스티븐 호킹)

이 이야기를 우리 일상을 포함한 더 광범위한 의미로 풀이하자면, 사실이란 우리에게 허용된 지식이나 기술, 정치/문화적 환경의 능력범위에서 협의된 잠정적 사건의 기술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설의 반복된 검증을 거쳐 협의된 이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실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사실'이란 역동적인 지식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 있으며,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개방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의심과 수용이 만든 스펙트럼 위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이 시대가 허용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본 리뷰는 [흐름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옌스포엘 #사실은의견일뿐이다 #흐름출판 #도서협찬 #확증편향 #생존편향 #통계 #과학지식 #비판적시각 #독서 #독서기록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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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 - 홍성남 신부님의 인생 구원 상담소
홍성남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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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신부님처럼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다시 힘내고 일어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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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 - 홍성남 신부님의 인생 구원 상담소
홍성남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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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님의 [나를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

나는 우울증 환자다.

그들은 세상의 전부였고 내 삶의 뿌리였다. 내 몸에는 여전히 그들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됐다.

처음 5년, 그리고 다시 2년의 단절은 서로를 낯설게 만들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마치 공백(空白) 만큼의 거리가 존재하듯 길고 먼 시간은 우리를 갈라 놓았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은 5년 간 나를 괴롭혔다.
내 삶은 좀 먹은 과일처럼 듬성듬성 구멍나고 말라 비틀어져 생기를 잃었더랬다.

시간이 보약인지 아니면 그간의 노력으로 마음이 정화된 때문인지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신부님의 책을 만난다는 건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홍성남 신부님의
[끝까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꼭 만나고 싶은 책이었다.

신부님은 어린 시절의 솔직한 고백들과 자신을 억누르던 '괴물'과의 조우, 그리고 깨어남, 마침내 해방까의 일련의 과정을 자신의 깊숙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만 세상의 편견과 불안,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단단한 조언이 의지가 됐다.

자신에게 소홀한 많은 이들에게 "나를 사랑하라"고 선포한다. 자기 비난과 도덕적 강박이 만든 내면의 괴물과 싸워 이기라고 응원한다.

그가 전하는 생생한 증언과 깨닳음의 지혜는 읽는 내내 가슴을 전율시키지만, 진심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꾸밈없다.

특히 마지막 챕터에는 홍성남 신부님이 심리상담가로서 내담자들과 상담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묘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고민과 고통이 나의 경험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인데, 덕분에 이야기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만 이런가?" 싶었던 고통의 경험들이 어쩌면 많은 이들이 겪는 '보통의 감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를 다시 '보통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거나 지금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의 용기있는 고백을 통해 마음껏 울고, 위로받기를 추천 드린다.

"끝까지 나를 사랑하라!"
삶의 뿌리인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기본적인 규칙을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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