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신학의 탐구 -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앤드류 린지 지음, 장윤재 옮김 / 대장간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신학을 공부할 때부터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하나인 ‘맙소사, 그것들은 단지 동물일 뿐이야!”는 그가 동물 신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몇 가지 대답을 한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을 옹호하는 ‘이성적’ 논거는 매우 튼튼하나, 왜 동물에 가하는 고통에 대해서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둘째는 기독교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충분한 기반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노예, 여성 등에 관해서도). 이것은 현대까지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잘못 해석한 결과임을 잘 알고 있다. 셋째는 지극히 저자 개인적인 고민으로서, 지구 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며, 동물은 어떻게 대우받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1장에서 저자는 종교와 동물보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물보호자들을 종교의 지지가 필요하고, 종교는 동물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보면 대부분 종교인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가 훨씬 강하게 들린다.


 그러나 2장에서는 동물에 대한 신학을 다루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감정적인 문제로 여기고 등한시해왔지만, 생각보다 이성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물 문제는 윤리적, 신학적, 영적 도전들이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한다. 윤리적 문제는 동물들의 착취를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것이 대해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성서의 모든 내용에서 동물에게 연민과 친절을 보이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은 있다. 신학적 도전들에서는 ‘신정론’에 관하여 획일적을 피조물의 한 종인 ‘인간’에게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현 신학을 비판한다.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는가?” 이것이 저자의 질문이다.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신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적 도전들에서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다스린다’는 지배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힘과 지배에 대해 성경은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힘을 가지신 예수는 섬기는 분으로 오셨다. 인간이 힘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3장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오해와 동물권에 대한 개념의 발전등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리고 동물권-신학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도하려고 한다. 


4장에서는 생태신학과 동물신학의 차이를 설명한다. 저자는 그 차이에 대한 기준들을 몇 가지 제시한다. 죽임에 대한 윤리, 고통의 문제, 동물의 경영, 생태신학은 자연속에 자연스럽게? 있는 ‘포식 체계’를 창조주가 만든것이라고 본다. 생태신학은 자연 전체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 생각속에서 은연 중에 야생 동물을 살상하며,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 동물신학은 지금의 자연은 타락했고, 각각의 피조물은 지각있는 존재들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동물신학이 자연 전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5장은 구약, 신약, 조직신학의 분야의 교수들이 동물신학에 대해서 비평한 논쟁에 대해서 저자가 대답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도 그가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등장한다. 피조물에 대해서 가진 인식을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보면 동물에게도 모든 피조물들이 존중속에 있어야 한다는 ‘신적 권리(theos-rights)’가 있다는 동물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저자 주장의 핵심이다. 


6장에서는 외경에서 예수와 동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을 선별하여 기독교인들이 동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문서들에는 동물들에 대한 예수의 모습은 지극히 윤리적이며, 동물들과 공존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강조된다. 


 8장은 초기 중국 기독교에 퍼져있었던 동물에 대한 관심과 채식주의를 다룬다. 저자의 생각에 초기 중국 기독교인들은 동물보호를 위한 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9장은 과연 동물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능한가를 논한다. 이곳에서 그는 동물들을 위한 장례식을 진행했고, 그와 관련된 책을 쓰기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언급한다. 또한 책이 출판된 후에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놀랄만한 ‘동물의 구원’을 주장한다. 그가 생각한 구원이란, 동물들이 살면서 겪었던 불평등과 고통을 보상받는 차원의 구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10장에서는 교회는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제안한다. 첫째는 성서 안에서 모든 동물 친화적인 요소들을 끌어내는 ‘동물성서’다. 둘째는 동물이라는 대의에 목소리를 내는 ‘동물신학’이다. 셋째는 동물을 보살피고, 동물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동물목회’다. 마지막 넷째는 동물들의 생명을 경축하고, 인생의 반려자가 된 것에 감사하며, 그들의 고통이 경감되기를 기도하고,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예배 즉, ‘동물 의례’다.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질문들이 생각난다.


Q1. 2장에서 저자는 동물권이 성서에서 간단히 도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보호에 대한 신학적 가치를 정립해 갈 때, 충돌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6장에서도 동일한 언급이 있다. 기독교 사상이 동물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적대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서들도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충돌이 생기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생략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Q2. 율법에 나와 있는 음식에 관한 법을 저자는 인간 중심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길까? 만약 창세기의 논지에 따라 ‘채식주의’가 중요하다면 율법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


Q3. 저자는 애완동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아끼는 사람들의 행동은 창조주의 섭리에 맞는 것일까? 아니면 지극히 인간을 위해 애완동물이 이용되고 있다고 평가할까? 


Q4. 예수께서 생선을 드시지 않았을까? 세례 요한도 메뚜기를 먹지 않았는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말을 빌려 개혁 운동의 세 단계(조롱하기, 토론하기, 받아들이기) 중에 동물 보호 운동이 토론하기의 단계에 와 있음을 좋은 징조로 여긴다. 나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에 대한 학대는 당연히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과 샬롬에는 모든 피조물의 회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동물신학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론 애완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진행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목회자로서 고민한적이 정말 많다. 저자의 말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토론을 통해 나은 방향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