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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ㅣ 성찰 시리즈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6년 12월
평점 :
신은 숨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 부르든 그렇지 않든지 관계없이 숨은 신을 찾는다. 이 책의 부제는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대한 고찰이다.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 사이. 그리고 삶의 과정은 '숨은 신'을 찾아가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본문의 구성을 크게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및 팡세)로 읽을 수 있다. 중세와 근대를 가로지르는 서양사 스케치로도 읽힌다. 본문 21장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데카르트로 변해가는 시대의 변화를 그린다.
성도들의 도시와 유사한 공동체가 이념의 도시이다. ...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혈연, 지연, 학연 혹은 이를 포괄하는 국가에 헌신한다. ... 불안에 가득찬 근대인들은 상위의 공동체에 스스로를 맡긴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리라고 착각한다. (p.100-. 일부 수정)
무한한 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또다른 유사 신을 필요로했다. 난 무신론자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요새는 이 또한 하나의 믿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무신론을 믿으면 남는 것은 유물의 세계. 하지만 앞서 근대 이후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국가를 비롯해 나의 신들을 곳곳에서 재확인하고 있지 않던가. 한국인에겐 서구에서 말하는 시민사회가 형성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나름 합리성의 절정이었던 유학은 성리학을 거치면서 교조적인 영향력으로 조선 후기의 시대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정치력을 유지했다. 일제를 거치고 해방을 맞이했다. 조선 후기와 일제 그리고 해방을 거쳐가던 이 시간대가 (과거 조선인이었던)한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근래의 관심사이다. 왕에서 총독을 거쳐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농민천하지대본을 외치다가 전쟁과 전쟁의 사이 사이에 수탈과 원조가 교차하면서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온 수출천하지대본의 사회가 되었다. 그저 많이 낳아 일손을 거들던 고사리 손들은 훗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말도 듣게 된다.
그래서 요즘 펄럭이는 태극기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신념 체계. 독재의 시기가 그들에게 과연 고통의 시간이었던가. 강력한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요즘 북한의 고통받는다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들의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 그들은 고통의 원인을 독재로부터 찾고 있을까. 강력한 보호를 원하는 국가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를 생각해본다. 미션스쿨을 나온 덕에 교회에 출석해야 했고, 신은 없다고 강력하게 확신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그려냈던 신은 없다고 아직도 확신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심쩍다. 드라마 속에서 지은탁은 행복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가까스로 이뤄낸 행복을 두고 자신을 희생하며 생명을 구한다. 그 장면을 보며 '신'이라는게 혹여 저런 거라면... 드라마 속에서 이 소식을 뉴스로 듣던 어떤 사람이 '천사가 아니었을까'라던 말처럼. 요즘은 내가 '신'을 무척 좁게 생각하는게 아닐까 곱씹어본다. 아주 잠깐씩. 저자의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신은 숨어 있다. 우리는 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신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다. 알지 못하니 갈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에서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멈춰 설 곳을 알지 못한 채 계속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비극적 전망이 아니다. 그저 가는 것이다.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p.149)
우리의 모든 탐구는 '숨은 신'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그것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에 있다.(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