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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욕심이 생겼어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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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욕심이 생겼어> '욕심' 에 대한 사소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담은 스케치 에세이다.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진 조그맣고 몰랑몰랑한 그림들과 짧은 에세이들이 모아져 있어서 부담 없이 읽기 좋고 선물하기도 좋은 책 같다.




작품을 만들 때도 본래 말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을 치워야 합니다. '그것들을 꼼꼼히 치우고, 맛 보여주고 싶은 정수만 퍼올리는 작업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하지 않을까?' 라면 가게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7


창작자로서의 가장 큰 욕심은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이 아닐까? 창작자라 말하기는 조금 멋쩍지만 나도 글을 쓸 때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큰데, 그럴 때 가장 어렵고 고민되는 점은 '무엇을 써야 하나' 보다는 '무엇을 빼야 하나' 인 것 같다. 보는 이의 입장으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혹은 보는 이의 상상에 맡겨야 하는 부분을 앞서 생각하고 취사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인 듯하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라면 가게에서 라면 국물에 올라온 기름을 퍼내는 걸 보고 떠올렸다니! 이 책의 저자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창작자다. 어디서 무얼 보고 있든 거기서 아이디어를 캐치해 내고 싶은 마음은 창작자로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욕심이니까.




"아까도 마셨잖아, 너무 많이 마시면 배 터져!"

아이도 지지 않고 세게 받아칩니다.

"배가 빵 터져서 죽어도 좋아! 그래도 난 바나나 주스 마시고 싶단 말이야!"


, 저 마음, 이해가 되더군요. '지금만 좋으면 된다'는 감각이 재미있습니다. 남의 집 아이니 그냥 마시라고 하고 싶지만, 만일 내 아이가 저렇게 졸라댄다면 절대 안 된다고 할 거다. 그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79


아이들이 사용하는 욕심의 언어가 너무 순수해서 웃음이 터졌다. 배가 터져도 좋다니. 어른이 된 나도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는 절로 느끼는 감정이다 (체면을 위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일단 지금은 눈 앞에 음식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기분. 내가 아는 그 맛을 또 맛보고 싶은 기분!


그러고보면 어릴 때 유난히 욕심부리던 것들이 한 개씩 있지 않을까. 내 경우에는 이게 먹을 것이었던 것 같은데, 세 살 버릇 여덟까지 간다고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요즘에도 나의 요만한 위장 크기를 생각 못하고 홧김에 디저트 여러 개를 시켜버리고는 한다. 그리고는 주문한 것 중 대부분을 남기고, 후회하고... 다음날, 그 다음날도 디저트 지옥에서 사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좋은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귀여운 그림과 글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나의 욕심'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인간은 생각보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주 많다고 하는데, 나의 욕심을 인지하고 나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할 때 ', 나 지금 욕심 내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내 행동의 폭의 넓어지는 것 같다. 무의식 상태일 때는 한 가지 뿐이던 선택지가 여러 개로 늘어나는 느낌? 예를 들면 디저트를 무의식적으로 이것저것 담다가도 아, 나 또 욕심낸다! 하고 생각하면 몇 개 정도는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건 그 순간에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욕심'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다들 자신의 욕심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인데, 이렇게 귀엽고 편안한 톤으로 욕심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감정이 양면의 동전같은 거지만 욕심은 유난히 부정적인 부분만 강조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모두 욕심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잘 살아보고 싶은 욕심, 좀 더 성장하고 있는 욕심 같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 어떤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 또한 ''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살짝 욕심이 생겼어>를 읽고 나서 나한테도 욕심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이전 작품도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다. 저자가 말한 '사람들이 살짝 욕심이 생겼을 때 짓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나도 지어보며... 온라인 서점을 켜야겠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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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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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는 사랑의 철학자라 불리는 에리히 프롬이 '삶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간은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책의 주제인 이 질문은 우리 인류가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와 통찰을 내포하고 있다. 50년도 전에 쓰인 글들을 읽으며 놀란 점은, 현대에 만연한 공통된 불행을 50년도 전의 학자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앞선 시대의 우려들이 이 시대에 들어 선명하게 실현이 되었다는 점에서 슬픈 감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물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 자체를 추구할 경우 사물은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사랑을 부수고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 즉 사물로 만들려는 성향을 띤다. 사물은 온갖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인간도 삶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 구매해야만 기쁨이 완전해진다는 속삭임이 쉬지 않고 소비자의 귀를 파고든다. - 42


프롬은 인간이 삶을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날로 커지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욕심'을 든다. 점점 더 발전하는 기술이 깃든 사물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사물들이 필요하다고,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그 사물이 없던 이전의 상태가 결핍의 상태였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잊고 있는 것은, 특정 사물과 특정 기술이 없던 시대라고 해서 인류가 행복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리어 기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현대 사회의 인간이 정말 행복한 건지 의문이 든다. 프롬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반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전보다도 더 발달된 기술과 수많은 사물들을 생산하지만 강박과도 같은 결핍은 절대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이 만들어낸 사물들을 소비하고 소유하기 위해 아등바등거린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정리해보면 이 시스템에서 불안해지는 인간은 소비한다. 하지만 유혹당해 소비하는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가 수동적인 인간이며, 항상 받아들이기만 하고, 세상 그 무엇도 활동적으로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할수록 그는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그는 더 불안해진다. 그 결과 인간의 기계가 더 강력해질수록, 다시 말해 인간이 생산하는 것이 더 강력해질수록 인간은 더욱더 무력감을 느끼는 악순환에 이르게 되고, 그 모든 것을 절대 멈추지 않을, 끝없는 소비를 통해 보상한다. - 218


그래도 인간이 완전한 소비자가 된 사회는 내적 활력이 부족해 사멸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괴테가 말했듯 희망이 없는 사회는 생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희망'이란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 부속물이 되는 목표가 아니라 인간적인 목표가 있다는 뜻이다. - 232


프롬은 반복적으로 인간이 기계와 사물의 부속품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소비 이외에 인간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21세기의 인류는 프롬이 경고한, '완전한 소비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명품을 소비하기 위해 오픈런이라는 문화가 생겨나고 브랜드 있는 아파트에서 살지 않으면 놀림감이 되고 타고 다니는 차종으로 급이 나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소비만이 우리를 드러내는 유일한 지표가 된 것이다. 21세기의 인간을 '소비자' 외에 더 잘 표현할 단어가 무엇이 있겠는가. 비판 없이 몸집을 키운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가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되도록 움직이고 있다. 거대 기업이, 미디어가, 사회가, 구성원들을 더 불안하도록, 그래서 더 많이 소비하게 되도록 흐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소비의 노예가 되고 그럴수록 진정 이 삶을 통해 고민해야 하는 인간적인-철학적인 질문에서 시선과 관심을 거둔다. 내가 너무 시니컬하게 이 시대를 바라보는 걸까? 매일 쏟아지는 사회면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다. 살면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일하는 사례를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사실 사람들은 불안이 자신을 몰아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에서, 불안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따라서 단 한순간도 자신이 불안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일하고 또 일한다. - 243


내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이유는 올바른 활동성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관조와 상반되지 않으며 자기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성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를 성공시키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생존하려면 지금처럼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된다.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 251


내가 하는 생각들과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오로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불안함이 가장 큰 예시다. 나는 정말 불안한 걸까, 불안해지도록 강요된 걸까. 현대는, 특히 한국 사회는 멈춰서거나 방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반발로 욜로족이라는 것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이 시대의 욜로족이 과연 정말 그 의미대로 현재를 즐기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것은 계획없는 소비가 현재를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프롬은 책의 후반부에서 진정한 내면의 활동성과 분주함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다. 요즘 시대의 사람들은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분주할 뿐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만이 가득하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정체화 된 현대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우리는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이미 자리잡은 권태와 무기력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인지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이 책은 하나의 커다란 질문지 같다. 읽을수록 마음 속에 질문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좋은 책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학자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짧게 배운 것이 다였는데 이 책을 기회로 그의 깊은 사유를 느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 질문과 메세지를 담은 책,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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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명상 - 알아차림과 치유의 글쓰기
김성수 지음 / 김영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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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 자체가 목적인 책이 있는가 하면 활용해야 하는 책도 있다. <글쓰기 명상>은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글쓰기 명상'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왜 글쓰기 명상을 해야 하는지, 이게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어떤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이 중에서도 '어떻게'에 해당하는 챕터는 가장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 글쓰기 명상 자체에 대해 잘 인식한 후 직접 명상하는 체험을 가져볼 수 있다.

글쓰기 명상을 하는 목적은 무얼까? 한마디로 답하면, 내면의 역동을 문자로 드러내는 일! 다시 말해, 자기 내면에서 어슬렁거리는 생각이란 놈을 하나씩 몸 밖으로 건져내는 작업이다. - 15

이 책을 따라 직접 글쓰기 명상을 체험한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우선 글쓰기 명상의 장점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이전까지 내가 알던 명상은 정자세로 앉아서 생각을 비워내는 일이라, 나처럼 '생각을 어떻게 멈추는데?'의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글쓰기 명상을 할 때는 '쓴다'라는 직접적인 행위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중구난방으로 뛰어놀던 생각이 한 길로 자리를 잡고 그 외에 잡다한 생각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또 머릿속에서 흐리멍텅하게 존재하는 수많은 갈래의 수많은 생각들이 활자로 적히는 순간 훨씬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 지를 글로 적어본 순간에야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리고 명상의 본질에 맞게 생각을 비워내는 효과도 있었다.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있던 생각이나 감정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좋은 걸 쓸 때도 그랬지만, 특히 나쁜 걸 쓸 때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면서 내가 조금 더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 명상을 체험하며 계속 든 생각은 우리 모두가 이 엉망진창 글쓰기를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맞춤법도 논리도 적용되지 않는 글쓰기, 그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부어내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찢어버림으로써 내 안에서 보내주는 작업을 모두가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특히 나처럼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생각 중독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더더욱 시도해봐야 한다. 내 머릿속에 월세도 안 내고 무단 거주하면서 끊임없이 내 활력을 갉아먹는 이 생각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가 직접 쓰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도 첫 글자를 적기 전에는 '이게 효과가 있을까?' 하고 의심했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자 묵혀둔 문장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 수많은 문장들을 마음에 묵힌 채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해묵은 문장들을 우리 몸과 마음 속에서 내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글쓰기 명상>이 분명 도움이 되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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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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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라는 책은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 문학가인 박수용 작가가 쓴, '꼬리'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에 대한 책이다. 꼬리라는 한 지역의 우두머리 수컷 호랑이가 노쇠하면서 인생의 전성기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던 시기에 대한 기록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호랑이라는, 우리와는 다른 종의 나이듦을 지켜보며 깊은 연민과 존경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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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실은, 자연이 준 역할을 마쳐가는 뼈다귀들이 걸어온 먼 길을 뒤로 한 삶의 말미에도 제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꼬리는 지금 뼈다귀 같은 삶의 마지막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꼬리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이해할까? - 58

호랑이는 혼자 사는 동물이다. 이 때문에 삶의 말미에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늙음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다. 꼬리가 세월이 흘렀다는 걸 이해하지는 못해도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인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꼬리는 묵묵하게 자신의 몸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한다. 영역을 관리하고,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문명 안에 있으니 호랑이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말 많이 다를까? 혼자 살아가기로 결심했든 가족을 꾸리기로 결심했든, '늙음'을 정신적으로 견뎌내는 게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라는 점은 호랑이나 인간이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몇 입 베어 먹은 이빨 자국이 보였다. 삶에 대한 이 집착이 과연 나쁜 것일까? 만약 꼬리가 삶에 등을 돌리고 죽음으로 걸어간다면, 그 죽음에 대한 집착은 덜 나쁜 것일까?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 113

꼬리는 노쇠한 몸으로 번번히 사냥에 실패하자 인간이 키우는 가축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민가에 내려와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면 인간이 고용한 전문 사냥꾼에 의해 사살당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그것을 막기 위해 꼬리가 민가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의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민가에 내려와 가축을 잡아먹으면 사람 손에 죽는다, 하지만 산에 계속 머무르면 사냥에 실패해 결국 굶어 죽는다. 과연 어떤 것이 덜 나쁜 죽음일까? 나와 저자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이 호랑이가 인간의 총에 의해 죽는 결말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걸 지켜보는 건 너무 슬프니까. 하지만 호랑이인 꼬리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잘 모르겠다. 어떤 게 더 자연스러운 죽음일까.

늙는다는 것도 불완전했고 늙어서 스스로 생활해 내야 한다는 것도 불완전했다. 자연이 그것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꼬리가 불쌍했다. 내가 그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 169

그 이후로도 꼬리는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고 젊은 수컷 호랑이에게 영역을 빼앗긴다. 한 때는 우두머리로서 넓은 지역을 호령하며 멧돼지를 사냥해 먹던 호랑이는 자꾸만 말라갔다. 나도 깊은 연민을 느꼈다. 태어난 이상 늙어서 죽는 게 섭리인 걸 알면서도 덤덤하게 읽어 나가기가 힘들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가졌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꼬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모든 걸 혼자 견뎌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자연에서 태어났음으로 늙어서 죽게 될 운명인 나도, 꼬리의 삶의 궤적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알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나는 이 호랑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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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이 든 호랑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결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애초에 정해져 있다. 늙은 생명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당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주목해야 할 건 과정이다. 꼬리가 노년의 시기를 살아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이 호랑이에 관한 책이 아니라 '나이듦'에 관한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리막길조차 묵묵히 혼자서 걸어가는 호랑이의 뒷모습을 통해 나의 나이듦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약해지고 비틀거릴지언정 단단한 눈빛만은 잃지 않았던 꼬리처럼 늙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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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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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전 세계적으로 21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아마 나처럼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제목만큼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원작의 내용 자체가 만만히 볼 수 있는 난이도는 아니다 보니 진입장벽이 느껴지는데, 다행히도!! 그래픽노블 버전의 <사피엔스>가 있었다. 오늘 리뷰할 책은 원작 <사피엔스> 2-농업혁명 내용을 다루고 있는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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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별 볼 일 없는 유인원들은 내가 놓은 덫에 빠지기 전에는 사냥하고 채집하면서 꽤 즐겁게 살았어요. 하지만 이후 나를 통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해야 했죠. 몇천 년 후, 결국 그들은 눈만 뜨면 나를 돌봐야 했어요. 낮이나 밤이나... " - 20

역사시간 때 개념적으로 배우는 농업혁명은 늘 설명이 비교적 짧고 긍정적인 면만 비춰져서 이런 이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원작 <사피엔스>를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밀이 이렇게까지 인간에게 도움이 안 됐다는 것을. 농업을 통해 한 곳에 정착하고 잉여식량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아이를 낳게 되고(즉 먹일 입이 훨씬 늘고) 이전까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던 모든 노동력이 밀 재배에만 사용되게 되었다니... 빽빽하게 모여살게 되면서 전염병이 시작되었다니........ .. 만화 속 밀이 너무 얄미운 얼굴로 얄밉게 굴고 있어서 더 충격이었다. 정말 밀에게도 표정이 있다면 (사실 밀은 아무 잘못 없지만)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아서 뭔가 울컥했다.

농업혁명이 인구수의 증가와 기술의 발달을 가져온 건 결과적으로 사실이지만, 정말 '정착'하는 삶이 우리에게 최선이었을까? 정착하는 삶이 인류종의 발전을 이끌었을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분리하고 억압하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요? 그들이 오염원이라는 믿음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심어 주는 거예요." - 193

위계질서와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다. 인간은 질병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존재를 혐오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특정 인간 집단을 혐오하게 만들 수 있다. 그들과의 접촉이나 교류가 어떤 종류의 해악을 옮겨온다는 거짓을 믿게함으로써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혐오에 대한 아주아주 흔한 변명이다.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사용된다. 어린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으로 특정 친구들을 놀리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그런 혐오적인 태도를 어디서 학습했겠는가, 당연히 어른들이다. 어떤 이들은 가난을 혐오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인간 집단 자체를 혐오한다. 그들과 접촉하면 자신에게 어떤 해악이 옮겨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면 인간 종이 정말 발전을 하긴 한 건지 의문이 든다. 이 꾸준한 방법이 늘 꾸준하게 먹힌다는 사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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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해서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 책들이 있다. (사실 많다) <이기적 유전자>, <종의 기원>, <,,> 등등... 나에겐 <사피엔스>도 그랬다. 이 그래픽노블 버전의 장점은 재미있고 쉽게 읽고 나서 책장을 덮으며 '원작도 한번 읽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또 꼭 그런 생각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그래픽노블을 읽고 나서 당당히 '나는 <사피엔스>를 읽어봤다!' 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 뿌듯해질 것이다. 원작이 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훌륭한 각색과 시각적 재미가 더했다는 점에서 정말 뛰어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작 <사피엔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분, 그게 아니라도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고 싶었던 분, 인류학-생물학-사회학 등 인간종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꼭! 추천드리고 싶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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