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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평점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는 사랑의 철학자라 불리는 에리히 프롬이 '삶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간은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책의 주제인 이 질문은 우리 인류가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와 통찰을 내포하고
있다. 50년도 전에 쓰인 글들을 읽으며 놀란 점은, 현대에
만연한 공통된 불행을 50년도 전의 학자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앞선 시대의 우려들이 이 시대에 들어 선명하게 실현이 되었다는 점에서 슬픈 감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물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 자체를 추구할 경우 사물은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사랑을
부수고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 즉 사물로 만들려는 성향을 띤다. 사물은
온갖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인간도 삶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 구매해야만 기쁨이 완전해진다는 속삭임이 쉬지 않고 소비자의 귀를 파고든다. - 42쪽
프롬은 인간이 삶을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날로 커지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욕심'을 든다. 점점 더 발전하는 기술이
깃든 사물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사물들이 필요하다고,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그 사물이 없던 이전의 상태가 결핍의 상태였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잊고 있는 것은, 특정 사물과 특정 기술이 없던
시대라고 해서 인류가 행복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리어 기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현대 사회의 인간이 정말 행복한 건지 의문이 든다. 프롬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반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전보다도 더 발달된 기술과 수많은 사물들을 생산하지만 강박과도 같은 결핍은 절대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이 만들어낸 사물들을 소비하고 소유하기 위해 아등바등거린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정리해보면 이 시스템에서 불안해지는 인간은 소비한다. 하지만 유혹당해
소비하는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가 수동적인 인간이며, 항상
받아들이기만 하고, 세상 그 무엇도 활동적으로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할수록 그는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그는 더 불안해진다. 그 결과 인간의
기계가 더 강력해질수록, 다시 말해 인간이 생산하는 것이 더 강력해질수록 인간은 더욱더 무력감을 느끼는
악순환에 이르게 되고, 그 모든 것을 절대 멈추지 않을, 끝없는
소비를 통해 보상한다. - 218쪽
그래도 인간이 완전한 소비자가 된 사회는 내적 활력이 부족해 사멸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괴테가 말했듯 희망이 없는 사회는 생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희망'이란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
부속물이 되는 목표가 아니라 인간적인 목표가 있다는 뜻이다. - 232쪽
프롬은 반복적으로 인간이 기계와 사물의 부속품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소비 이외에 인간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21세기의 인류는 프롬이 경고한, '완전한 소비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명품을 소비하기 위해 오픈런이라는 문화가 생겨나고
브랜드 있는 아파트에서 살지 않으면 놀림감이 되고 타고 다니는 차종으로 급이 나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소비만이 우리를 드러내는 유일한 지표가 된 것이다. 21세기의 인간을
'소비자' 외에 더 잘 표현할 단어가 무엇이 있겠는가. 비판
없이 몸집을 키운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가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되도록
움직이고 있다. 거대 기업이, 미디어가, 사회가, 구성원들을 더 불안하도록,
그래서 더 많이 소비하게 되도록 흐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소비의 노예가 되고
그럴수록 진정 이 삶을 통해 고민해야 하는 인간적인-철학적인 질문에서 시선과 관심을 거둔다. 내가 너무 시니컬하게 이 시대를 바라보는 걸까? 매일 쏟아지는 사회면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다. 살면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일하는 사례를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사실 사람들은 불안이 자신을 몰아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에서, 불안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따라서 단 한순간도 자신이 불안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일하고 또 일한다. - 243쪽
내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이유는 올바른 활동성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관조와 상반되지 않으며 자기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성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를 성공시키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생존하려면 지금처럼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된다.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 251쪽
내가 하는 생각들과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오로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불안함이 가장 큰 예시다. 나는 정말 불안한 걸까, 불안해지도록 강요된 걸까. 현대는,
특히 한국 사회는 멈춰서거나 방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반발로 욜로족이라는
것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이 시대의 욜로족이 과연 정말 그 의미대로 현재를 즐기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것은 계획없는 소비가 현재를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프롬은 책의 후반부에서
진정한 내면의 활동성과 분주함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다. 요즘 시대의 사람들은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분주할
뿐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만이 가득하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정체화 된 현대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우리는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이미 자리잡은 권태와 무기력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인지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이 책은 하나의 커다란 질문지 같다. 읽을수록 마음 속에 질문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좋은 책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학자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짧게 배운 것이 다였는데 이 책을 기회로 그의 깊은
사유를 느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 질문과 메세지를 담은 책,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