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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평점 :
<꼬리>라는
책은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 문학가인 박수용 작가가 쓴, '꼬리'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에 대한 책이다. 꼬리라는 한 지역의 우두머리 수컷 호랑이가 노쇠하면서 인생의 전성기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던 시기에 대한 기록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호랑이라는, 우리와는 다른 종의 나이듦을 지켜보며 깊은 연민과 존경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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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실은, 자연이 준 역할을 마쳐가는 뼈다귀들이 걸어온 먼 길을
뒤로 한 삶의 말미에도 제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꼬리는 지금 뼈다귀 같은 삶의 마지막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꼬리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이해할까? - 58쪽
호랑이는 혼자 사는 동물이다. 이 때문에 삶의 말미에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늙음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다. 꼬리가 세월이 흘렀다는 걸 이해하지는 못해도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인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꼬리는 묵묵하게 자신의 몸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한다. 영역을 관리하고,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문명 안에 있으니 호랑이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말 많이 다를까? 혼자 살아가기로 결심했든 가족을 꾸리기로 결심했든, '늙음'을 정신적으로 견뎌내는 게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라는 점은 호랑이나 인간이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몇 입 베어 먹은 이빨 자국이 보였다. 삶에 대한 이 집착이 과연
나쁜 것일까? 만약 꼬리가 삶에 등을 돌리고 죽음으로 걸어간다면, 그
죽음에 대한 집착은 덜 나쁜 것일까?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 113쪽
꼬리는 노쇠한 몸으로 번번히 사냥에 실패하자 인간이 키우는 가축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민가에 내려와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면 인간이 고용한 전문 사냥꾼에 의해 사살당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그것을 막기 위해 꼬리가 민가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의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민가에 내려와 가축을 잡아먹으면
사람 손에 죽는다, 하지만 산에 계속 머무르면 사냥에 실패해 결국 굶어 죽는다. 과연 어떤 것이 덜 나쁜 죽음일까? 나와 저자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이 호랑이가 인간의 총에 의해 죽는 결말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걸 지켜보는 건 너무
슬프니까. 하지만 호랑이인 꼬리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잘
모르겠다. 어떤 게 더 자연스러운 죽음일까.
늙는다는 것도 불완전했고 늙어서 스스로 생활해 내야 한다는 것도 불완전했다. 자연이
그것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꼬리가 불쌍했다. 내가 그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 169쪽
그 이후로도 꼬리는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고 젊은 수컷 호랑이에게 영역을 빼앗긴다. 한 때는 우두머리로서 넓은 지역을 호령하며 멧돼지를 사냥해 먹던 호랑이는 자꾸만 말라갔다. 나도 깊은 연민을 느꼈다. 태어난 이상 늙어서 죽는 게 섭리인 걸
알면서도 덤덤하게 읽어 나가기가 힘들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가졌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꼬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모든 걸 혼자 견뎌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자연에서 태어났음으로 늙어서 죽게 될 운명인 나도, 꼬리의 삶의 궤적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알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나는 이 호랑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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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이
든 호랑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결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애초에 정해져 있다. 늙은 생명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당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주목해야 할 건 과정이다. 꼬리가
노년의 시기를 살아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이 호랑이에 관한 책이 아니라 '나이듦'에 관한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리막길조차 묵묵히 혼자서 걸어가는
호랑이의 뒷모습을 통해 나의 나이듦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약해지고 비틀거릴지언정 단단한 눈빛만은
잃지 않았던 꼬리처럼 늙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